동남아에서만 하는 당신의 '인종차별'
지난 금요일에 어학원 수업이 끝나고 생수 배달과 오뚜기 카레를 사기 위해 몽키아라에 있는 한인 마트에 들렸다. 한인마트에 가는 날엔 마트 옆에 있는 김밥집에 들러 김밥이랑 떡볶이를 사 먹곤 하는데 그날도 시원한 식혜 한 잔과 주문한 떡볶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쿠알라룸푸르의 한식당에 가면 한국인만 있을 것 같지만, 현지인 손님이 훨씬 더 많다.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서양인들에 비해 매운 음식도 잘 먹고 아시아의 다양한 음식들이 들어와 있는 나라로 무슬림이 먹지 않는 돼지고기 종류를 제외하곤 한국 음식도 꽤 즐기는 추세다. 떡볶이를 기다리며 주변을 보니 말레이시안 손님으로 가게의 반 정도 차 있었다. 점심시간이지만 조용했고 나처럼 혼밥을 먹는 테이블도 있었다. 떡볶이가 나오고 기분 좋게 한 술 뜨는데 한국인 중년 남성 둘이 요란스럽게 들어왔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식사 주문 소리에 얼굴이 화끈해지면서 내가 지금 잘못 들었나 싶어 그들을 돌아봤다.
"칼국수 두 개' '빨리 알았어?"
내가 잘 못 들은 것인가? 씹고 있던 떡볶이를 입에 넣은 채 한참을 있었다. 설마 잘못 들은 거겠지... 주문한 칼국수를 기다리는 내내 시끄럽게 떠들던 한국 남성들은 중간중간 못 들어줄 수준의 한국 노래 가사를 흥얼거리는데 소란스러움에 주변 테이블에서도 흘깃거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그들이 주문한 칼국수가 나오자 둘 중 지저분하게 수염을 기른 한국 남자의 말에 아연실색했다.
"야! 김치 좀 더 줘! 빨리빨리"
이 가게의 오너는 자리에 없었지만 아마도 한국인 일 것이다. 한국인 사장이 하는 한식당에서 서빙을 하는 직원들은 유창하진 않아도 한국말을 알아듣는다. 더구나 한국의 예능과 드라마가 실시간으로 방송되고 꽤 인기가 있어 젊은 친구들 중에선 한국어를 간단히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 서빙하는 직원의 표정은 무표정했지만 언어가 명확히 통하지 않아도 느낌이라는 게 있다. 더는 부끄럽고 거북해 남은 떡볶이를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서둘러 가게를 나섰다.
한국에서도 이런 수준 낮은 이들은 많이 있다. 오죽하면 고깃집 사장이 '남의 집 귀한 자식'이라는 단체 티셔츠를 직원들에게 입혀 화제가 되었겠는가? 백화점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의 '갑질'관련 기사는 잊을 만하면 등장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데 이국땅에서 즐겨먹던 떡볶이를 먹으려던 즐거웠던 순간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반말 짓거리를 내뱉는 불쾌한 이들 덕분에 사라지고 그날이 한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우리는 몽키아라 김밥집에서 마주친 한국인들처럼 극단적인 경우까진 아니더라도 식당이나 카페에서 종업원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상대방에게 실망하거나 혹은 좋은 이미지로 보는 경우가 많다. 일상의 자연스러운 언행이 그 사람의 많은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내가 일련의 김밥집 사건을 떨추지 못했던 건 그들의 안하무인 태도에서 보이는 '인종차별' 때문이었다.
한국인들이 호주와 유럽에서 겪은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여행기나 유튜브를 통해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니하오, 칭챙총'만 검색해도 관련 영상이 유튜브에 한 페이지가 넘어간다. 보다 보면 아시안을 무시하는 그들의 태도에 분개하기도 하고, 간혹 가다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유투버가 맞짱을 뜨는, 그네들 언어로 '참 교육 영상'에선 그 어떤 예능도 주지 못하는 통쾌감마저 느끼지만 대부분의 영상은 주로 겪은 일에 더 강하게 대응하지 못한 아쉬움이 가득한 씁쓸한 내용이 주을 이룬다.
나의 지난 미생 시절 직업 상 유럽 박람회를 다니다 보면 '바이어'명찰을 달아도 전시회 부스에서 냉기가 흐르는 묘한 기분을 느낀 경험이 있다. 사유야 여러 가지이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국가들이 수입을 직접 하기 위해 박람회를 찾는 '바잉 트립'이기보다는 최신 트렌드 파악과 더불어 저가의 유사품 기획을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찾는 경우가 많다. 오랜 기간 박람회를 참여했던 유럽 브랜드들의 축적된 바이어 미팅 데이터를 기반으로 보았을 때, 중국과 한국의 바이어들은 산업 분야에 따라 반가운 손님이 아닐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늘 구정 연휴에 있던 2주간의 유럽 출장길은 갖고 있던 옷 중 가장 번듯해 보이는 슈트를 한숨을 내쉬며 여행가방에 쌌던 기억이다. 신입 사원 땐 유럽에서의 경험이라곤 에펠탑 사진 찍으러 간 배낭여행이 전부라 출장을 유럽으로 떠난다는 설렘에 선배들이 챙기는 컵라면이 보약인 것도 모른 채 촌스럽다며 풋내기 같은 생각을 했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현장에서 한 두 번 '인종차별'적인 상황을 겪고 나면 마음이 한 겨울에도 라지에타밖에 없어 으슬으슬 추웠던 유럽 호텔방 같았다.
나의 실수나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오는 문제가 아니라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영역인 인종, 국가, 피부색 등을 갖고 누군가에게 무시를 당하는 기분은 정말 간결하게 표현해서 더럽다. 시간이 흘렀고 세대가 바뀌어 요즘 바이어들은 우리 때와는 다른 대접을 받고 박람회의 큰 손들도 이제는 중국 회사들이다. 콧대 높던 명품 브랜드들이 앞다투어 메인 모델에 아시안을 배치하고 얼마 전 뮌헨으로 주재원을 떠난 친구 집은 방바닥에 온돌처럼 난방도 들어온다고 하니 유럽도 내가 알던 유럽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한국인들은 언제쯤 안 볼 수 있을까? 일부의 행위라 해도 왜 동남아시아에서만 유독 추태를 보이는 것일까? 줄 세우기 좋아하는 민족인 건 알고 있지만 어디서 GDP 순위는 안 가르쳐줘도 기가 막히게 아는데 문제는 해당 국가 국민을 대하는 태도 역시 그 순위대로 하는 건 줄 아는 것 같다. 먼 이국땅에서 같은 한국말이 들리고 만나면 반가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생기니 유럽 출장길에 느꼈던 마음만큼이나 씁쓸하다.
대학생 시절에 아직까지도 생각하면 쇼킹하고 웃음이 나는 경험이 있다. 지금 이런 일이 발생했더라면 핸드폰으로 찍힌 영상이 무수히 돌며 이슈가 되었겠지만 당시는 핸드폰이 막 보급되던 시점이라 소리 소문 없이 지나갔다. 해당 비행기는 한국 항공사에서 티켓팅을 하였지만 코드셰어로 미국 항공사였다. 한국에 론칭한다는 소문만 무성하던 스타벅스를 기내에서 서빙 해 주어 신기함에 카메라로 연신 찍고 있었는데 한 한국인 승객이 우유를 요청했다. 내 기억엔 커피가 너무 쓰다고 했던 것 같다. 대학생 때라 해외 경험도 적어 늘 젊고 예쁜 한국 승무원들만 보다 키가 남자 못지않게 크고 나이도 꽤 있는 미국 중년의 아주머니 승무원을 보니 외모에서 풍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신기했는데, 커피 프림 외엔 지급이 어렵다고 말해도 승객은 계속 유창한 영어로 우유가 분명히 있을 텐데 주지 않아 매우 불쾌하다며 이 건을 본사에 레터를 써 항의하겠다고 외쳤다. 나를 포함한 기내에 있던 대부분의 승객들이 불만을 제기한 승객의 짜증스러운 고성에 지쳐있을 찰나에 미국 승무원 아주머님이 그를 향해 낮은 음성으로 짧게 외쳤다. "shut up" 약간의 침묵이 흐른 뒤 그다음 부분은 단호한 어조의 영어로 몇 마디 더 하였는데 정확히 알아듣진 못했다. 항의하던 승객은 그 이후론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결코 사용해서는 안 될 표현이지만, 지난 주 몽키아라 김밥집에서 칼국수를 먹던 한국인 남성들에게 나는 정말 이 말이 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