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팔도에서 모이는 몽키아라의 엄마들
나는 성격은 소심하고 낯을 많이 가리는데 타고난 목소리는 크다 보니 외향적으로 보이는 인지 부조화의 캐릭터이다. 큰 목소리에 둥근 얼굴의 외모는 대부분 털털한 성격에 두루두루 잘 어울리는 사람일 거라는 인상을 주는데 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소수의 사람과 오붓이 만나는 걸 좋아하는 나에겐 여럿이 모이는 단체 회식자리와 동창 모임은 늘 불편했고, 그러다 보니 내게 적잖은 호의를 표했던 모임에 본의 아니게 실망을 준 경우도 있다. 나에 대한 타인의 오해를 탓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봐도 내 목소리와 과거의 직업 상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양한 거래처와 수 없이 많은 미팅을 해 오며 몸에 밴 말투가 있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아주 좋게 해석하면 호텔리어들의 몸에 밴 단정하고 젠틀함 같은 것처럼 말이다.
인간관계에 있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나름의 철학은 많은 사람을 아는 것보다 오랫동안 관계가 지속되는 걸 추구하고 그로 인해 나에게 버팀목과 같은 지인들이 지금까지 있어왔다 생각했기에 머리가 굵고 나서 사회에서 만나는 이들과는 거리를 두고 지켜보려는 편인데 문제는 이게 주책맞게도 여지없이 깨지는 상황이 앞서 다른 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사투리를 쓰는 이들을 만나는 것이다. 지역이 경상도이건 전라도이건 그건 중요치 않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에겐 사투리 특유의 구수함과 적재적소에 기가 막히게 표현되는 어휘들로 표준어로는 도저히 주지 못하는 해학과 통쾌함이 있어 나는 사투리를 맛깔나게 쓰는 사람을 좋아한다.
12월의 첫 주가 지나면서 지금 이곳 몽키아라에는 방학을 맞아 전국 각지에서 쿠알라룸푸르 한 달 살기 혹은 그 이상의 기간을 지내기 위해 찾은 엄마와 아이들이 날로 늘고 있다. 지난달 까지만 해도 어학원에서 만난 주재원 엄마들이 많았는데 주재원 엄마들은 또 남편들이 연말 휴가를 맞아 인근 발리와 호주로 여행을 떠났고, 그 빈자리를 한 달 살기 엄마들이 채우고 있다. 말레이시아에는 일본 회사의 진출이 활발해 늘 등, 하원 길은 일본 엄마와 한국 엄마들이 그룹을 지어 아이들을 기다리며 담소를 나누곤 한다. 성격대로 서먹했던 나는 늘 아이 또래의 엄마들을 만나면 띠동갑 정도가 나이 차이가 나다 보니 우아하진 못해도 점잖으려 노력하는데 비슷한 또래의 사투리를 사용하는 엄마들을 만나고는 봉인 해제되어버렸다. 같은 말을 해도 사투리로 받아치는 상대의 리액션에 신이나 방언 터지듯 수다를 떨고 만다.
각기 다른 지역에서 왔지만 아이들에게 다양한 경험과 영어에 대한 자신감 향상을 위해 왔다는 공통분모가 있고 더운 날씨와 상시 가동되는 에어컨 덕에 다들 한 번씩은 냉방병이 지나가서인지 아이들 건강에 대한 이야기, 유치원과 어학원 적응기, 먼저 다녀온 관광지와 식당 추천 등 소소한 이곳 생활의 이야기를 사투리를 맛깔나게 쓰는 한국 엄마들과 흥겹게 나누고 집으로 돌아오면 피로한 마음에 공진단을 먹인 듯 든든해진다. 20대에 미국으로 이민을 간 친구가 해줬던 향수병은 단기 어학연수 애들이 주로 걸린다는 이야기가 무언지 조금 알 것 같다. 이곳에 온 지 40여 일째 되니 슬슬 한국의 콧등 시린 겨울 공기와 바글바글 끓는 청국장도 그립고 말로는 걸거친다 하지만 감정의 희로애락을 나눴던 남편의 빈자리도 느껴지기 시작할 즈음에 알게 된 몽키아라 엄마들 덕분에 다시금 힘을 낼 수 있어 인간은 사회적 동물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정스러운 전라도 사투리의 주재원 엄마들도, 늘 명랑해 마주치면 웃음 나는 대구에서 온 엄마들도, 그리고 드디어 언니라 부를 수 있는 나잇대로 마음의 빗장을 열어젖히게 만든 부산에서 온 유쾌한 엄마들도, 마지막으로 곧 몽키아라 생활에 합류할 엄마들 모두 이곳 쿠알라룸푸르에서 아이와 더없이 좋은 경험과 즐거운 추억 많이 만들고 건강히 지내시라는 인사로 내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