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만하면 뉴스 기사로 보게 되는 백화점 진상, 갑질에 관한 기사가 2020년 새해에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서울 모 백화점 보안요원 에게 콜라컵을 던지며 반말 짓거리를 해대는 여자의 볼썽사나운 모습은 지상파 tv보다 빠른 일반인의 스마트 폰을 통해 유튜브 영상으로 삽시간에 퍼져 이슈가 되었다. 관련 기사의 댓글을 읽다 보니 사회가 그래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예나 지금이나 문제를 일으킨 자에 대한 질타는 여전했지만, 눈에 띄는 댓글들은 백화점은 보안 요원들에게 어떠한 대처를 해 주었냐는 것에 대한 질의가 많았다. 대중의 눈이 개인의 흉한 행각만을 비난하는 시선에서 문제의 장소가 된 백화점 유통기업이 과연 기업에 속한 근로자에게 힘이 되어주었느냐에 대한 댓글이 많았던 것이다. 보안 요원의 경우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리고 파견 형태의 도급직원 등 다양한 고용 형태를 띠지만 대중은 모두 그 기업의 구성원이라고 생각하기에 해당 사건에 대한 관심은 기업의 사후 처리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초 특가, 초저가 등 ‘가성비’만을 따지던 소비 시기를 지나 점점 더 많은 대중이 기업과 브랜드를 선택함에 있어 선한 영향력의 가치를 반영하기 시작했고, 그 요소에는 과거의 불우이웃에게 성금과 연탄을 전달하는 연말 행사에서 공정 무역을 통해 만들어진 운동화, 장애인 고용을 통해 사회적 약자가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비누, 일제 식민지 시절 독립운동 후원기업의 라면 등 보다 광범위해졌으며, 더불어 기업이 기업 구성원에게 행하는 모든 것들이 평가되기 시작했으니 선한 소비로 나아가는 대중의 의식을 엿볼 수 있었다.
백화점, 홈쇼핑, 대형 마트, 온라인 샵 등 우리가 유통사로 칭하는 기업은 고객과 접점에 있기에 갑질과 진상이라 불리는 블랙 컨슈머들에 관한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 홈쇼핑 사업 초창기엔 침구류와 의류 등, 사용 후 반품하는 사례는 너무 많아 진상 축에도 들지 못하였지만, 지금은 지속적인 반품 불가 요소를 테이터 화 하여 상당 부분 시스템적으로 개선되었다. 또한, 감정노동자에 대한 시민의식도 향상되어 상담원에게 폭언을 일삼던 이들이 줄어드는 추세이다. 그렇다면 위에 언급한 유통사를 모두 경험한 나에게 가장 '진상 중 상 진상'을 꼽으라고 묻는다면 나는 단언컨대 내부 직원이라고 답하겠다.
“0% 마진에 해줘”
상품을 담당하는 MD혹은 바이어에게 가장 많이 요구하는 진상 짓거리는 ‘0% 마진에 해줘’였다. 홈쇼핑과 백화점의 경우 상품 담당자가 시스템에 접근해 상품의 마진이라 불리는 수수료율을 수시로 교체할 수 있었다. 경쟁사에 대응하거나 매출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일자에 맞춰 프로모션 쿠폰과 할인을 수시로 걸어야 하기에 이 권한은 바이어가 갖고 있다. 유통사가 통상 25~35% 정도의 수수료율을 가져가는 것에는 상품에 대한 판매 공간, 마케팅, 물류, 인건비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마진과 객단가가 모두 낮은 식품군이나 저가의 생활용품을 담당하는 경우엔 위의 사례로 스트레스를 받을 일은 없으나, 명품 시계, 가방을 포함한 잡화류를 담당 하는 경우는 위에 요구 사례가 매 달 있었다고 보면 된다. 루틴 하게 주어진 업무 외에 ‘0% 마진’까진 아니어도 바이어가 유두리 있게 가격을 내려주는 '직원 가' 구매로 요구는 늘 있어왔고, 이 문제로 나는 회계 감사를 통해 평범한 샐러리맨에게 중대한 범죄자가 된 듯한 비참한 기분에 사로잡혀 지내야 했던 중징계를 받았다. 명품 시계와 잡화를 담당하던 바이어 시절, 결혼 시즌만 다가오면 만성 소화불량과 두통에 시달렸다. 자식의 혼수를 준비하려는 유통 사 임원들의 사돈의 팔촌까지 연락을 해 왔고, 직접 문의가 오는 경우와 팀장을 통해 가능 여부에 대한 문의도 없이 탑다운으로 바로 떨어지는 임직원의 결혼기념일이나 자녀의 혼수 준비로 골머리를 앓았다. 이미 수년 전부터 위와 같은 직원의 0% 마진 거래는 시스템적으로 불가능하게 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내가 근무하던 2009년에는 사내 임직원들의 진상 만행은 흔한 일이었다.
흔한 진상 짓거리로 그저 싸게 해 달라는 요구에서 좀 더 다채롭게 스위스 여행을 다녀와 사모님이 사 온 B사의 구두가 신어보니 사이즈가 맞지 않아 같은 브랜드 중 다른 제품으로 바꿔 달라는 요구가 모 그리 어려운 일이냐며 역정을 내는 이도 있었다. 어차피 팔면 되는 것 아니냐며 말이다. 구매와 통관 히스토리가 없는 제품을 동네 구멍가게도 아닌 대형 백화점과 온라인 쇼핑몰에서 말이다. 그들의 부당한 요구에 사내 윤리에 위배되어 어렵다고 답하면 내가 더 잘 안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거절하는 내게 태도가 뻣뻣하고 싸가지가 없다는 이야기로 윽박지르기 일쑤였고, 팀장에게 직원 교육 똑바로 시키라 화를 내면 그 화는 배로 커져 네가 상사 알기를 뭣같이 안다는 폭언과 쓸데없는 동향 파악 보고서 작성 등의 업무 폭탄으로 이어졌다. 팀장이 무조건 처리하라 던진 부당 업무에 G사의 가방을 “0% 마진”보다도 더 싸게 구매해야 하는데 구매 기록이 남으면 안되니 일단 나의 개인카드로 긁고 현금을 전해주겠다는 요구도 수 차례 있었다. 당시는 앞서 다른 글에서도 주인공인 최악의 팀장 ‘천박이’와 근무하던 시절이라 이를 거역할 시, 하루하루가 고난의 행군임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기에 "오늘도 무사하기를" 모토로 하루살이와 같이 살던 나는 그의 지시를 따르는 비겁함을 택하고 말았다.
그렇게 나는 회사의 윤리에 위배된 일들을 수 차례 행하였고, 결국 회계 감사 시 문제가 된 ‘0% 마진’ 상품 중 몇몇 바이어들은 구매 금액이 적어 서면 경고에 그치고 고가의 명품을 담당하던 내가 가장 큰 징계를 받게 되었다. 그 일은 내가 사회생활을 하며 처음으로 크게 자존심에 생채기를 낸 일이었고, 나는 내가 담당하던 카테고리와 부당행위를 지시한 팀장에게 환멸을 느끼며 패션 상품을 담당하지 않는 조건으로 이직을 하였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명품 쇼케이스와 패션쇼를 참관하고 화려한 상품을 셀렉 하는 이면에는 얼굴도 모르는 임원 자녀의 혼수를 준비해 줘야 하는 구차한 시간이 많았고, 때로는 임원들이 싸게 구매하고도 변심하여 사용감이 느껴지는 제품을 업체에 억지로 떠넘겨 교환해 주는 그들의 저열한 행동에 발맞추는 못난 짓을 해야 했다.
“왜 그때 부당 업무 지시를 신고하지 않았느냐?”
당시의 보수적인 유통 기업에 팽배했던 ‘그 나물에 그 밥’ 문화 속에서 갓 대리 직급을 달은 내가 연배와 직급이 높은 그들 앞에서 사실을 고한다며 긴 이야기를 늘어놓을 분위기가 아니었다. 또한, 바이어들 사이에서 ‘직원 가 할인’은 만연되어 있었고, 그렇게 내부 직원들은 '진상중의 상 진상'이 되었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언급할 수 없었다. ‘아는 놈이 더한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결국 위의 행위는 정의로운 의인의 출현으로 개선된 것이 아니라 직원할인 금액의 한도가 직급별로 바뀌었고, 회계와 물류 시스템이 개선되어 지금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이후, 대형 마트 바이어를 거쳐 지상파 방송사의 프로그램을 사업화하고 협찬을 진행하는 업무로 직무가 변경되었다. 입사 후, 첫 번째로 맡은 일은 이미 기획 단계에 들어간 업무에 협찬을 끌어오는 일이었다. 중국의 유명 포털사와 공동 기획하는 건으로 인기 프로그램의 팬들이 한국을 방문하는데 항공권과 숙박을 협찬하는 건이었다. 새로운 직무에 방송사 경험이 없던 나는 의욕을 불사르며 알고 있는 모든 인맥을 동원해 국내 유명 호텔과 대학원 졸업 이후 연락도 거의 없이 지냈던 모 항공사 임원인 동기 언니에게 사정을 절절하게 이야기하고 협찬을 무상으로 끌어냈다. 무사히 프로그램 제작을 마친 이후 나는 뜻밖의 전화를 한 통 받게 되었다.
“이 과장이 모 항공사 임원과 친하다지? 이번에 방송 세미나를 가는데 항공권 업그레이드 좀 알아봐.”
이건 또 무엇인가… 회사와 직무가 바뀌어도 그들은 어디나 존재했다. '진상중의 상 진상' 내부 임직원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