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찌 대리의 영업력

SNS의 영향력과 '팬심 소비'

by miko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우리가 상반기는 정말 바쁘잖아, 그래서 신규 상담도 모두 홀딩 중인데…”


“웅, 알지 근데 왜?”


“조사 의뢰 건으로 신규 상담이 들어왔는데…”


“정말 업무 과부하라서 그러니 정중히 거절하면 되잖아.”


“아니 나도 그렇게 설명했는데… 그게 참 도저히 거절하기 어려웠어”


요 며칠, 클라이언트사와 미팅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내 피곤할 터인데, 점심도 거른 채 일 하고 있다면서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남편은 통화 내내 중간중간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성격 급한 내가 어서 거절하지 못 한 이유를 답하라 재촉하니 답을 들은 나도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진행이 어려울 것 같다고 답하니 갑자기 의뢰인이 다급히 김구찌 대리를 1년 반 전부터 팔로워 해왔대. 어쩌겠냐 김구찌 대리 팬이라는데…”

김구찌는 올해로 13세가 된 우리 집 노견이다. 납작한 얼굴의 페키니즈로 선천적으로 등이 굽어 산책을 나가면 왼쪽 다리를 절곤 한다. 한쪽 눈도 잘 안 보이다 보니 성격도 예민해 산책을 나가면 늘 다른 개들과 만남에 주의를 해야 하고, 아이들이 다가오면 ‘우리 개는 꼭 물어요’라고 답해야 한다. 구찌는 종종 남편과 함께 회사에 출근해 ‘김구찌 대리’라는 직함을 갖게 되었다. 우리 회사는 반려동물 동반 출근이 가능해 지금은 실장님과 직원들의 반려견 쇼핑이, 장만두, 김토리, 생강이 등 동시에 출근하니 다소 소란스러워 순번을 정해 출근하고 있다.

결혼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적적했던 집에 활기를 불어넣어 준 김구찌는 회사 후배들과 아귀찜을 먹으러 용인 구성까지 갔다 엉겁결에 데려와 이름이 ‘구찌’이다. 결혼 후, 남편이 구찌에게 김 씨 성을 부여해 주었고 10년 간 아이가 없던 시절에도, 개구쟁이 아들이 3세가 된 지금도 구찌는 여전히 서열 2위 자리를 지키며 우리 집에 사랑받는 존재이다.

‘인스타그램’이라는 소셜 미디어가 생기던 직후부터 나는 구찌와의 추억을 그곳에 기록해 나갔다. 산책을 하거나 간식을 먹는 모습, 무릎 위에서 잠든 모습, 함께 드라이브를 나선 모습 등 일상에서 함께하는 구찌와의 찰나를 그렇게 담아갔다. 코가 납작한 같은 견종들과 안부도 공유하고, #강아지와갈만한곳,#애견동반카페 등 공유의 시대답게 나 역시 많은 정보를 타인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얻었고, 안부를 묻고 하트를 보내던 반려견이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소식을 접하면 내 일처럼 슬펐고, 아는 것이라곤 강아지 누구 엄마, 혹은 언니일 견주에게 진심을 담아 위로의 말을 전했다.

얼마 전 유통사의 임원인 옛 선배가 도대체 인스타그램에서 왜들 그리 물건을 사고파는 거냐 내게 물었다. 무슨 마케팅을 해야 하는 거냐며, 왜 아줌마들은 그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다. 현직을 떠난 지 벌써 3년이 넘는 내게 연락한 이유는 그가 실제로 아는 이 중 그나마 팔로워가 가장 많은 이가 나라는 거다. 이 질문은 내 마지막 직무이던 지상파 TV의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사업화하는 팀에서 근무하던 시절에도 종종 받았던 질문이다.

일선을 떠난 지 오래고 지금은 아이 엄마로의 시간에 충실하기에 도움이 안 되겠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 답하겠노라 운을 띄우고 답을 하였다. 고객은 경제력은 아니어도 취향만은 상향 평준화되었고, 누군가 나에게 이게 최고이니 사라고 하는 듯한 마케팅 자체를 혐오하는 시대이며 인스타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이들에겐 기업에선 하기 힘든 ‘팬심 소비’가 적용되는 것 같다. 엄격한 정량적 기준으로는 잣대를 댈 수 없는 말 그대로 ‘팬심 소비’ 말이다.

수많은 정보를 제2의 피부와 다름없는 스마트폰을 통해 검색하면 누구나 알게 되는 세상이다. 예전엔 꽤 높은 비용을 지불하고 열람하던 경제연구소 등의 전문기관 자료를 지금은 누군가가 친절하게 요약하여 블로그에 올리는 세상이며, 그 블로그 세상을 지나 내가 궁금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볼 수 있는 인스타그램의 세상에 오니 나와 비슷한 취향의 사람들이 내가 궁금한 곳을 먼저 다녀와주고, 어디서 사진을 찍어야 하는지 알려주고, 내가 좋아하는 걸 같이 좋아해 주니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은, 실제론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이지만, 내 친구같이 친근한 이들의 일상이 궁금해 늘 소식을 알고 싶은 사이버 세상 속 사람들이 인스타에서 ‘인플루언서’ 라 불리고 그리고 그들이 제품을 판매하면 '팔이 피플’이라고들 칭한다.

사람들은 면밀하게 가격 비교를 하며 가장 최적의 구매로 이어지는 이성적 가치 소비를 하는 듯 하지만, 실제로는 감성적 소비를 하는 이들이 많다. 조금 지난 신조어 중 ’ 예쁜 쓰레기” 그리고 어감을 조심해야 할 “시발 비용’이라는 단어가 있다.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퇴근하던 중 ‘올리브영’이나 ’ 롭스”등의 스트리트 뷰티숍에 들어가는 내 자신을 발견한 이들이 있을 것이다. 당장 급하지 않은 뷰티 제품들을 둘러보다 집에 있지만, 하나 더 쟁여 두는 용도로 혹은 발라보니 순간 예뻐 보여 구매로 이어지고 집에 와선 당최 어디에 두었는지도 모르다 일 년 지나 화장대 서랍 구석 어딘가에서 또르르 굴러 나오는 립스틱 같은 것 들 말이다.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의 애니메이션 ‘달빛천사 OST’ 제작 펀딩에 26억이 단숨에 모였다. 통상 문화콘텐츠 펀딩에 1억 모으기가 힘든 게 현실인데 2004년 방영되었던 애니메이션의 시청자에서 지금은 대학생과 사회 초년생이 되었을 이들이 추억의 애니메이션 음반 제작에 선뜻 돈을 지불한 사례는 이성적 소비로는 설명이 어려울 것이다.

‘팬심 소비’의 이해를 완전히 같지는 않아도 가장 쉽게 설명하자면 K-POP사례를 들 수 있다. 인기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장에 가면 굿즈라 불리는 응원 도구와 아이돌의 이미지가 활용된 제품을 판매한다. BTS와 같은 세계적인 그룹이 경우 월드 투어 시, 판매되는 굿즈 수익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콘서트가 끝나면 응원봉을 흔들 일이 당분간은 없을 것이지만, 팬들에게 그런 건 구매를 주저할 사유가 되지 않으니 말이다.

많고 많은 세무, 회계 회사 중, 오늘의 의뢰인은 내 세금을 얼마나 줄여주고 우리가 일을 프로페셔널하게 하는지가 중요한 것보다 늘 친근하게 봐 오던 페키니즈 김구찌네 집이 세금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던 중, 마침 의뢰할 일이 생긴 것이다. 그럼 이왕이면 내가 좋아하는 김구찌네 회사에 맡겨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인스타그램에서 수영복을 팔던 그 언니가 오늘은 또 떡볶이를 파는데 너무너무 맛있어 보인다. 언니는 표현도 정말 재미있게 설명해서 나도 모르게 그 언니의 떡볶이를 결재하고 나도 그 떡볶이 사진을 또 올린다. 왠지 나만 아는 ‘찐 맛집’ 레시피 같다. 소비 선택의 기준이 바뀌었다. 기업이 상대해야 할 경쟁자는 유사 기업이 아니라 너무도 많은 개인으로 변화되었다. 대형 유통사들이 장사하기 정말 어려워졌단 이야기다. 선배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선배, 한심하고 시간 많아서 그거 올리는 것도, 들여다보는 것도 아니에요. 직접 하진 않더라도, 종종 들여 다 보세요. 사람들이 재미있으니 거기 있는 거잖아요. 그리고 그곳은 원래 공식적으로 자랑하는 곳이에요. 삼시 세끼 김치만 먹다가 어쩌다 좋은 식당 가면 사진도 찍고, 기억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인데 거기가 그런 거 원 없이 해도 되는 곳이잖아요. 그게 오늘 끓인 라면이어도 또 그걸 좋아하는 이들이 거기 있어요. 보다 보면 또 보여요. 아! 셀카는 올리지 마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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