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회사도 꼭 필요한 사내 문화
쿠알라룸푸르에서 지내며 매일 등원 길에 만나 안면을 트고 어느덧 커피 한 잔 나누는 사이가 된 J는 외국계 기업의 파이낸스 팀장이다. 그 직위에서 쉽지 않았을 육아휴직을 감행한 강단 있는 그녀와 이런저런 사회생활 이야기를 나누다 이직에 대한 생각과 지금 내가 남편의 회사를 돕고 있는 사내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16년 간 4번의 이직으로 지금의 밀레니얼 세대의 평균 이직 횟수에 해당하는 경험을 한 나에게 J는 이직의 어떤 점이 좋았냐는 질문에 "전혀 좋은 점은 없고, 회사와 사람을 보는 눈을 얻었다"라고 답했다. 나는 인사 전문가도 아니고, 특별히 능력이 출중했던 회사원은 아니었으나 그간의 조직 생활과 이직을 통해 얻은 경험을 기반으로 남편의 회사에 변화를 준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이직'에 대한 이야기는 비속어를 접속사만큼 넣어 써야 할 만큼 녹록지 않았다. 국내 취업 포털 사이트에서 10대 기업으로 분류된 기업에서 이직을 거치며 내린 결론은 경력직 직원에 대한 해당 기업이 원하는 부분을 정확히 인지하고 입사해야 그나마 문제가 덜 발생하더라이다. 경력직 직원을 충원하는 사례 중, 가장 무난한 케이스는 담당자 공석에 따른 충원 혹은 규모가 커져 추가 인력이 요구되는 경우이다. 이 같은 경우는 이직을 통해 입사한 경력직 직원이 꼭 필요한 경우이고 대부분 과장 이하급 충원으로 비교적 원만하게 적응할 수 있다.
각설하고 내가 겪은 최악의 경력직 충원과 사내 조직 문화 사례를 딱 하나 꼽자면 바로 해당 기업이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신사업에 대한 채용이다. 대부분 신사업의 경우 아무리 네임 밸류가 높은 대기업일지라도 경험이 없기에 해당 분야의 전문 인력을 뽑아 놓고도 정작 결제자는 그 업에 무지해 끊임없이 상사를 가르쳐가며 업무를 해야 하는 난관에 봉착하는데 그나마 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도 진행하기 어려운 신사업을 경험해 본 적 없는 이들의 무지에서 비롯된 끊임없는 비판적 사고 그리고 자칫 상사를 무시하고 가르치려 든다는 오해를 불러일으켜 흔히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려 한다'라는 비난을 받는다. 어떠한 비난에도 그저 묵묵히 일을 추진하면 그나마 본전이지만, 경우에 따라선 해당 업무의 내막이 보여주기 식 사업을 해야 하는 기업도 있다. 예전 모 기업이 서울 시내 비싼 땅을 두고 준공 허가가 나지 않아 10년 간 굴삭기를 하루에 한 번 가동하는 것으로 준공 허가가 날 때까지 부지 유지를 했다는 풍문처럼 기업은 주식, 유동성 자금 보유 등 각자가 갖고 있는 다양한 사유와 명목으로 매 년 신규 사업 계획서를 그럴듯하게 작성하고 실행은 마치 굴삭기처럼 하기를 바라는 경우도 허다하다.
여기에 최악의 조합은 바로 가족적인 분위기로 지낸다는 공채 위주의 기업으로 외부 경력직 충원을 소수만 진행해 사실상 없다시피 하는 경우인데 서로의 자질구레한 가족사까지 알고 지내며 그 안에서 또 졸업한 대학과 고등학교로 소 모임을 만들고, 주말엔 그들끼리 산을 오르고 공을 치며 암묵적인 카르텔을 갖는 문화이다. 이런 회사는 특유의 텃세로 경력 입사자들이 업무 적응보다 사내 분위기 파악에 정신없이 치이는 결과를 만들고, 진행하는 신 사업은 결코 성공할 수 없음이 불 보듯 뻔한 이야기이다. 또한, 가족적인 분위기가 갖는 문제 중 가장 위험한 요소는 사내 부정행위에 대해 관대하다는 것이다. '좋은 게 좋은 거다'라며 유대감이 강해 조직원끼리 감싸고돌아 부정행위가 만연해진 사내 문화는 도덕적 불감증과 상대적 박탈감으로 열심히 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만연한다.
무엇보다 신 사업은 그 분야의 전문가가 전무한 곳으로 사막에서 우물파기와 같은 험지인데, 어떻게든 진행을 시켜 성과가 조금 보이면 가족적인 분위기의 기존 직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게 된다. 회사의 발전과 미래를 위해 새로 온 이의 성과를 원하는 애사심이 투철한 직원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하여, 성과는 축소되거나 기존의 직원과 셰어를 해야 하는 경우와 고생 끝에 다 만들고 나면 기존 직원이 가져가는 일도 빈번하다. 물론 그렇게 해서 신사업은 대부분 실패로 끝나지만 말이다.
경력직 채용 공고를 살펴볼 땐, 어렵더라도 해당 직원의 역할이 무엇인지 최대한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험 없는 신사업을 책임 없이 떠 넘기기 위한 충원이거나 회사 내부 분위기 쇄신 용 총알받이 신규 충원 등 적절치 못한 사유로 입사 뒤 때 늦은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서다. 특히, 가족적인 분위기를 언급하는 기업의 폐단을 이직을 통해 경험한 결과 대부분 발전적이지 못한 '고인 물' 문화라는 것이다.
이런 경험을 밑거름 삼아 샐러리맨 생활을 마감하고 남편의 일을 돕게 되면서 이 '고인 물' 텃세 문화를 없애기 위해 제일 먼저 한 일은 복리후생을 전면적으로 개선하는 것이었다. 남편이 운영하는 작은 회사는 고객사의 세금과 회계를 대행하는 곳이다. 고시생이던 남편과 연애시절 유통사에 근무하며 백화점 등의 오프라인 상권 매출이 급격히 줄고 전자상거래 시장의 규모가 빠르게 성장해 나가는 걸 목도하고 이 분야에 전문성을 갖기로 한 노력에 직원 한 명으로 시작했던 작은 사무실은 지난 10년 간, 15명의 직원을 책임지는 회사로 성장하였다.
고객사의 확대에 따라 직원이 한 명, 두 명 충원하던 때의 회사는 회사라고 부를 수 없는 작은 사무실이었고, 분위기는 말 그대로 가족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분위기로 다섯 명, 여섯 명 늘어갈수록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가족적인 분위기라는 말속엔 여러 뜻이 담겨있다. 우리가 살면서 가장 함부로 말을 나누는 상대는 슬프게도 가족이다. 이는 늘 살을 맞대고 사는 혈육이기에 다소 심한 말이 오가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관계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사회에서 만난 타인과의 관계를 내 엄마, 혹은 내 동생에게 말하듯 한다면 과연 그 관계가 지속될 수 있을까? 친하다는 이유로 익숙하다는 이유로 서로에 대한 존경심과 예의가 무너지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관계가 된다.
개업 5년 차를 지나며 남편의 회사는 급속도로 성장했고, 직원도 두 배로 늘어났다. 급작스레 늘어난 신규 직원들과 기존 가족처럼 지낸 직원들과의 마찰은 예상보다 심각했고, 처음엔 강단 있는 모습을 보이지 못한 남편의 탓만 해 오다 우연히 사내 비품과 신용카드 사용 내역에서 실망감을 넘어선 문제가 발생하였고, 이를 계기로 회사에서 휴직을 받은 상태였던 나에게 남편은 처음으로 조언을 구하기 시작했다.
나는 제일 먼저 작은 회사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검토했다. 우리는 타이틀이 거창한 기업도 아니고, 급여가 동업계와 비슷한 수준으로 재직자의 입장에선 그저 그런 회사 중 하나이며, 임금 인상 또한 기준 없이 진행되었고, 인원이 늘었음에도 파트 별로 조직을 체계적으로 운영하지 못하고 나이와 입사 순서를 우선시하는 원시적인 조직 문화였다.
하여, 우리는 우선적으로 급여를 동업계 최고 수준으로 책정하고 나는 내가 근무했던 대기업의 복리후생을 모두 녹여 가족과 국내 및 해외여행 시 경비 지원, 매 월 도서구입비 5만 원, 취미활동 수강비 , 연 간 문화생활비, 연 간 해외 워크숍, 업무 관련 자격증 취득 시 연봉 외 연간 120만 원 매 년 추가 지급 등 여느 대기업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강화하였다. 이에 따른 경비는 회사에 대한 재 투자 개념으로 생각했고 대신 저녁 식사 및 술자리 회식 비용의 지원을 모두 없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타 기업들과 다르게 만든 제도는 월요일과 금요일 연차 사용 장려와 반려동물과 동반 출근을 허용하고, 매 월 반려동물의 의료비(사료와 사상충 약)를 지원하는 정책이다.
처음 복리후생을 만들 당시, 이 모든 혜택을 적용하는 조건으로 저녁 회식을 전면 금지시켜 퇴근 후, 술자리로 이어지던 문화에 익숙했던 기존 직원들의 반발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밀어붙인 이유는 세 가지이다. 저녁 회식자리에서 불거지는 끼리끼리 문화가 텃세를 만들기에 이를 근본적으로 없애겠다는 것과 샐러리맨 생활 동안 가장 불합리한 경험으로 눈치를 보며 사용하던 주말 연휴를 낀 연차 사용은 내가 반드시 만들고 싶은 정책이었다. 마지막으로 반려동물 지원 정책은 동물과 함께 지내는 이들의 마음 한 구석에 선함과 책임감이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든 정책으로 지내온 지난 3년 간, 회사는 그 어느 때보다 인사관리도 안정적이고 수익도 큰 폭으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정말 신기하게 우리가 만든 복리후생에 맞춘 듯 신규 입사한 직원들은 모두 강아지, 혹은 고양이를 키우고 있고 최근 입사자의 경우 반려동물을 지원하는 복리후생을 사유로 입사하였다. 사내에서 반려동물들과 함께 근무하며 직원들의 유대도 더없이 좋고, 분위기도 한결 유연하다. 지금은 우리 15명 중 과반수가 넘는 직원이 반려동물 가족이다.
기업의 문화라는 게 꼭 대기업과 같은 규모의 조직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작은 강소 기업일수록 직원들의 빈번한 이직과 텃세, 경직된 사내 분위기는 고객에게 신뢰를 잃고 성장하지 못하며 이는 결국 기업의 수익 저하로 이어진다. 수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은 영속적이지 못하다. 가끔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우리는 주로 반려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20대 젊은 직원과도 이제는 어엿한 회사의 중간관리자로 성장한 30대 과장들과도 연령을 초월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코드가 있다는 건 친밀감 그 이상이다. 퇴근 후, 무의미한 험담과 패거리 문화로 메워진 술자리에서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는 '고인 물' 문화의 시대는 주 52시간 근로기준법에도 맞지 않고 우리가 지속적으로 충원해야 할 밀레니얼 세대가 가장 기피하는 문화이다. 시장 규모는 늘지 않은데 트렌드는 빠르게 급변하고 있는 현실에서 살아남을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그 어느 때 보다 각 기업의 상황에 맞게 조직문화를 변화시키고 검토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