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한복이 모라고…
지난주 놀이 학교 알림장에 적힌 구정 연휴를 앞두고 한복을 입혀 등원시키라는 요청사항에 백일과 돌잔치 때 대여만 해 오던 아이의 한복을 비록 전문점 제품은 아니지만 온라인에서 처음으로 구매하고 한복에 맞게 조끼와 복건까지 준비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일찌감치 준비를 마쳤다. 쿠알라룸푸르에서 70일 만에 돌아와 놀이 학교에 등원한 지 2주 째인 요즈음 아침마다 엄마와 떨어지는 순간에 부리는 찜통은 여전하지만, 놀이 학교에 비교적 잘 적응해 다행이었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나면 노견과 커피 한 잔 마시며 산책도 하고, 밀린 집안일이며 중간중간 남편을 도와 클라이언트 미팅도 진행하며 하원까지 바쁘게 보낸다. 마흔에 갖은 아이는 노산이라는 주변의 우려와는 달리 이제껏 크게 아픈 일도 거의 없었고, 밥 도 잘 먹어 또래보다 키도 큰 편이다. 임신부터 출산까지 겉으론 태연한 척했지만, 실은 온갖 걱정으로 끙끙 앓았던 노산에 대한 두려움의 시간을 아이는 마치 보상하듯 건강히 자라주었다. 그런 아이 덕에 나는 내가 젊은 엄마들에 비해 체력적으로 힘에 부칠뿐 아이를 향한 시선은 좀 더 느긋하고 인내심이 있는 엄마라 자위했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전 날부터 아이에게 입혀보고 나 자신이 꽤나 살뜰히 아이를 돌보는 엄마 인양 뿌듯해 하며 잠든 나는 새벽 4시가 넘은 시간에 아이의 잔기침 소리를 듣고 침대 머리맡에 항시 두었던 기침 시럽에 습관적으로 손을 뻗어 불도 켜지 않은 채 아이에게 조금 먹이는데 잠결이어도 입에 따르는 순간 시럽이 아님을 직감했다. 깜짝 놀라 불을 켜고 보니 시럽이 아닌 비슷한 사이즈의 베이비오일이었다. 소량이긴 해도 아이는 몸에 바르는 베이비오일을 이 정신 나간 애미 덕에 먹은 것이다. 아이는 그대로 잠이 들었지만, 그 새벽에 해당 제품의 성분부터 온갖 검색을 시작했다. ‘아이가 이물질을 먹었을 때’,’ 베이비오일의 유해 성분’ 등 도무지 관련된 내용을 아무리 검색해도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없었다.
허기사, 누가 나처럼 정신 나간 엄마가 또 있겠는가 말이다. 스스로에게 얼마나 화가 났는지 끊임없이 ‘미쳤어’를 반복하며 또 한편으론 곤히 잠든 아이를 안고 응급실로 뛰어가야 하는 게 아닐까 전전긍긍하며 동트는 아침까지 떨리는 손으로 검색을 반복했다. 해당 제품은 미국 제품이라 ‘아마존(Amazon)’을 비롯해 미국 본사 사이트의 성분 표기, 유의 사항 그리고 화장품 유해도 분석 표를 보여주는 어플 ‘화해(hwahae)를 뒤져 사례를 찾고 찾아보니 나처럼 정신 나간 엄마가 미국에도 있었고, 그 집 아이는 미네랄 성분의 베이비오일을 섭취하여 응급실에 간 사례였는데, 병원에서 알려준 미네랄 오일의 위험 성분인 ‘탄산 수소(hydrocarbons)’가 천만다행히 우리 아이의 베이비오일에는 없었다. 합성보존제가 없는 무향, 무취의 식물성 100%로 나는 제품을 받고 유통기한이 짧다고 투덜댔던 게 떠올라 나 자신이 더 한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벽부터 아침까지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기분으로 스스로를 얼마나 자책하고 자책했는지 모르겠다. 아이가 이물질을 섭취 시 무리하게 구토를 시키지 말고 일단 물을 많이 먹이라는 내용을 보고 제시간에 기상한 아이에게 평소보다 물을 많이 먹였다. 아이는 컨디션도 여느 때처럼 좋아 보였고, 배가 아프다거나 특이 사항은 없어 밤새 까맣게 타들어 간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괜찮아? 네, 엄마 괜찮아요.
심각한 얼굴로 묻는 내게 해맑게 웃으며 괜찮다고 대답한 아이를 놀이 학교 등원과 바로 소아과로 가는 것을 갈등하다 지난주부터 사놓은 고운 아이의 한복이 눈에 들어왔다. 이 못난 엄마는 또 욕심이 나는 거다. 그래, 일단 등원시키고 놀이 학교에서 오전에 진행하는 세배 연습과 게임만 참가시키고 점심 전에 일찍 데리고 오는 거다. 밤새도록 안절부절 대며 검색을 뒤지고 아침에 바로 병원에 데려가겠다던 나는 어디 가고 아이의 컨디션에 또 아이를 예쁘게 한복을 입혀 보내 고픈 못난 욕심이 꿈틀거린 것이다. 한복을 입은 아이를 카시트에 태우고 차 문을 닫으려는 순간 나는 내 밑바닥을 보인 날이자 아이에게 최악의 엄마가 되었다. 아이는 고운 한복과 뒷좌석 그리고 나에게 분수 토를 하였다.
“너 정말 왜 이래!”
아이에게 괜찮냐고 먼저 물어봐야 할 엄마인 내가, 소리를 질렀다. 놀란 것도 있겠지만, 화를 낸 것이다.
아이에게 낸 화는 아니었지만, 나는 정말 최악이었다. 저 말은 아이가 나에게 해야 할 말이다. 내 잘못으로 먹게 된 오일이고, 내 불안감에 억지로 두 컵이나 먹인 물이고, 빈속에 등원시키는 건 또 걱정되어 조금 먹인 고구마가 그렇게 분수 토로 나왔던 것인데, 명백히 내 잘못인데 그동안 수 권을 읽어댄 온갖 육아 서적 속에 얻는 지식과 깨달음은 온데간데없고 거기 서 있던 나는 정말이지 최악의 엄마였다. 늦게 만나 귀하다며, 중년의 엄마라 느긋하다며, 인내심이 있을 거라고 자위하던 그 모든 게 얼마나 한심한 자만이었는가 말이다. 그 한복이 도대체 모라고 아이를 병원으로 데려갈 생각보다 중했냐는 것이다.
“엄마 미안해요.”
분수 토를 온몸에 묻힌 아이의 첫마디에 결국 나는 울음이 터져버렸다.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못나서 미안해.”
엉엉 울며 아이를 안고 집으로 다시 들어가 한참을 아이를 안고 울었다. 차 문도 열어 둔 채 말이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씻겨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힌 후, 아이와 소아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해 의사 선생님께 진료를 받고 아이의 상태가 괜찮다는 말씀에 비로소 정신을 추수 릴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도 오전부터 진을 빼 선지 잠이 들었고, 나는 아이를 눕힌 후, 분수 토로 얼룩진 한복을 손으로 빨고 소파에 앉아 커피를 내렸다. 그러고 보니 새벽부터 물 한 잔도 못 마시고 유난을 떨었다. 커피를 마시며 소파에 앉아 책장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심리학과 육아 서적들을 보고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20대 엄마에게도, 30대 엄마에게도, 마흔셋 이 못난 엄마에게도 육아는 똑같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