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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ko Sep 14. 2020

'개모차'를 향한 불편한 시선

노견과 산다는 건

"쯧쯧쯧…

요즘 개 키우는 사람들은 왜 저렇게 유난을 떠나 몰라…

아주 개 팔자가 상 팔자야 "


해 질 녘 놀이터, 아이들이 미끄럼틀 사이로 소란을 피우는 사이 혀 차는 소리가 귓가에 스쳤다. 순간 개모차를 밀고 앞서가던 일행이 이 소리를 들었을까 걱정이 되어 쳐다보니 다행히도 못 들은 모습이었다. 소리가 들린 쪽을 돌아보니 놀이터 주변 벤치에 삼삼오오 앉은 엄마들이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 달려가 한바탕 쏘아보며 말조심하라 소리치고 싶었지만, 길어진 가정보육으로 바깥 외출이 줄어 답답해하던 아이와 친구네 집에 놀러 와 기분 좋게 바람 쐬러 나온 자리인 데다 함부로 말을 늘어놓는 이와 말을 섞어 무엇 하나 싶어 지나쳤지만 그날 밤 씁쓸함에 뒤척이며 쉬이 잠들지 못했다.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취향의 사람을 좋아하기 마련이다. 더구나 또래의 아이가 있어 육아 고충을 나누거나 같은 견종의 반려견을 키우는 경우 금세 친근함을 느낀다. 요즘 자주 만나는 앙이네가 그랬다. 우린 둘 다 미운 네 살의 엄마이자, 13살 노견을 키운다. 늘 밝고 선한 앙이 엄마는 나이는 나보다 어리지만 요리와 육아 등 매사에 배울 점이 많은 언니 같은 친구다. 그런 앙이 엄마를 쏙 빼닮은 예쁜 딸은 우리 개구쟁이 아들의 좋은 친구이기도 하다.

우리 아이들 그리고 우리집에 놀러 온 앙이

보석처럼 빛나던 까만 눈동자는 뿌옇게 변했고, 풍성했던 털이 줄어 검버섯이 핀 등이 듬성듬성 난 털 사이로 보이는 노견과 산다는 건 쉽지만은 않다. 사람도 나이가 들면 몸 이곳저곳이 고장 나듯이 반려동물들에겐 그 시간이 좀 더 빠르게 찾아온다. 무엇이든 문제없이 잘 먹던 뽀시래기 강아지가 노령견이 되면 조금만 기름지거나 자극적인 음식을 먹어도 병원행이 다반사고, 의료보험도 없어 2차 동물병원에서 검사와 입원이라도 며칠간 하고 나면 꽤 큰 금액이 지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반려동물과 함께한 세월 동안 그들에게서 기쁨과 위로를 받았고 그들은 가족과 가족을, 때로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따듯한 공감대로 이어주었다. 그리고 태어나서부터 반려동물과 함께 자란 노령견 가족의 아이들은 제일 먼저 ‘책임감’에 대해 일상에서 어렴풋하게나마 배우게 된다.


지난달, 강원도 고성의 한적하고 탁 트인 바닷가에서 즐겁게 여름휴가를 보내다 마지막 남은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부랴부랴 서울로 내달린 건 우리 집 노견 김구찌 때문이었다. 검진 결과는 췌장염이었다. 다행히 조기에 치료를 받고 완치되었지만, 선척적으로 굽은 등에 디스크 지병이 있어 예민하고 사회성이 떨어지는 녀석을 낯선 병원에 두고 나오며 참 많이 울었다. 여행지에서 들뜬 마음에 기름진 바비큐를 소화기관이 쇠약해진 녀석에게 조금 건넨 것이 문제였기에 자책하고 또 자책했다. 비슷한 시기에 앙이는 갑자기 다리의 신경이 마비되었다. 전 날 까지도 잘 먹고 잘 놀던 앙이가 하루아침에 걷지 못하게 된 것이다.


18년 간, 외항사를 거쳐 국적기의 베테랑 승무원으로 전 세계를 누비던 앙이 엄마는 앙이를 돌보며 장기 휴직에 들어갔다. 서울 곳곳의 대형동물병원과 인천의 유명하다는 한방 병원까지 걷지 못하는 앙이를 위해 안 가본 곳이 없다고 한다. 이미 한번 파양의 아픔을 겪은 앙이를 데려와 정성껏 키워낸 앙이의 가족들은 일어서질 못해 수시로 손이 많이 가는 대소변 처리부터 답답해할 앙이를 위해 매일 개모차에 태워 잠시라도 바깥공기를 쐬게 해 주며 정성껏 돌보고 있다. 고생이 많다 안부를 건네면 늘 ‘언니, 저보다 앙이가 얼마나 답답하겠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런 엄마를 보고 자라서인지 앙이네 집 네 살 딸아이도 고사리 손으로 앙이 다리에 찜질을 해 주며 아픈 반려견을 돌본다. 그런 앙이네 가족을 보며 앙이가 꼭 다시 일어설 수 있기를 바란다.


‘펫코노미(pet+economy)'와 '펫팸족(pet+family)'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만큼 국내 반려동물 시장 규모는 날로 성장하고 있다.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은 호텔 업계도 속속들이 ‘펫 프랜들리’를 선언하고 동반 투숙이 가능한 펫 전용 객실을 도입하는 추세이다. ‘한국 농촌경제연구원(KREI)’에 따르면 올해 이러한 ‘펫코노미’ 시장 규모가 3조 원을 넘어섰고, 2027년에는 배로 늘어날 것이라 예측했다. 규모의 성장과 언론에서 다루는 이야기만 보자면 반려동물들에게 천국일 것 같지만, 어두운 이면도 증가해 지난해에만 13만 5천여 마리의 유기 동물이 발생했다. 이들 중 절반에도 못 미치는 동물들에게 재 입양의 기회가 주어지고, 남겨진 동물들은 턱없이 부족한 보호소의 수용 한계로 안락사’ 처리된다. 안타깝게도 아직 우리나라는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이 시장의 규모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살다 보면 사연 없는 사람이 없듯이 누구나 저마다의 희로애락을 겪으며 살아간다. 우리 가족이 우연히도 같은 연령의 아픈 노견을 키우기에 앙이와 앙이 가족의 심정을 조금 은 알 수 있지만, 반려동물과 살지 않는 가정에서 유모차를 탄 강아지를 보는 시선은 당연히 생소할 수 있다. 그런 시선에 일일이 찾아가 ‘이 강아지는 걷지도, 일어서지도 못 합니다.’라고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리 집 노견 역시 유모차를 가끔 이용한다. 아직은 걷는데 문제가 없지만, 장시간 외출 시 관절에 무리가 온다. 그럴 때 유모차가 유용하고, 실내 공공장소에서 반려동물을 유모차 혹은 이동가방에 넣을 것을 필수 사항으로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니 ‘개 팔자가 상 팔자’라 여기며 강아지를 ‘개모차’에 태우는 것 자체를 불편하게 바라보는 건 지양해 달라 부탁하고 싶다.

우리 집 노견 김구찌와 아들

그리고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족들 역시 노력해야 한다. 노견과 산책을 하다 보면 치우지 않은 반려동물의 분변에 동물을 키우는 나 역시 화가 나는데 그렇지 않은 이들이 느낄 불결함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동물에게 선뜻 다가서는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들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지만 견주 역시 반드시 외부 활동에는 목줄 착용을 의무화해야 한다. 반려동물을 좋아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과도 함께 살아가는 사회인만큼 펫 매너는 필수이다. 반려동물 인구 천만 시대, 네 사람 중 한 사람은 반려동물과 함께 지낸다. 우린 이미 존중과 배려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적용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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