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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ko Apr 17. 2020

포노 사피엔스 엄마의 육아

엄마는 스마트폰 중독

아이가 하원을 하면 매일 두 시간씩 꼬박 공원과 놀이터 등지의 야외활동으로 보낸다. 아주 춥거나 더운 계절엔 실내 아쿠아리움과 미술관 혹은 박물관으로 향한다. 그렇게 저녁 시간 직전까지 아이와 눈을 맞추고 최선을 다해 몸으로 놀아주고자 노력을 한다. 그런 아이와의 일상을 사진으로 담아 SNS에 담는 것 역시 게을리하지 않는다. SNS를 통해 육아를 보고 있노라면 나는 정말이지 최선을 다해 육아의 길을 가고 있는 참된 부모의 모습으로 보인다. 그런데 실은 내가 이렇게 ‘두 시간’이라는 시간을 지정하면서까지 야외활동을 반드시 지키는 데엔 부끄러운 이유가 있다. 그건 바로 나의 스마트폰 중독 때문이다.


다급하게 올 연락도 없는 바쁘지 않은 인생 이건만 왼손엔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쥐고 통장 잔고보다 핸드폰 배터리가 부족하면 불안해하는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인 내가 엄마가 되어 아이를 기르고 가르치는 과정을 통해 내 자신의 부족한 민낯을 매일 대면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이나 주식을 하는 것도 아니요, 단톡 방에서도 자꾸 나가 지인들이 원성이 자자하건만 스마트폰이 신체 반경 1M 이내에 없으면 일단 찾고 보는 인간이 바로 나이다. 이런 내가 아이에게 어찌 유튜브를 금지시킬 수 있겠는가?


샐러리맨 시절 매일 아침 침대에서 눈을 뜨면 환율을 확인하는 것을 시작으로 주요 일간지의 헤드라인과 사설을 꼼꼼히 읽으며 이슈 점검을 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16년간 지속해온 습관이 몸에 배어 아직도 그 타령이다. 그것이 당장 눈 뜨면 아이를 씻기고 아침밥을 챙겨 옷을 입혀 놀이 학교에 보내는 일상에 무슨 도움이 된다고 매일 등원 길에 혼이 빠지는데도 말이다. 당장 아들 녀석이 오늘 씌운 모자가 마음에 드네 마네 하며 집어던지는데 그 바쁜 아침 시간에 실물경제의 하락을 개탄하며 향후 성장 카테고리 시장을 예측해 보는 건 도대체 무슨 주접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여기까지 보면 마치 경제와 사회 흐름에 꽤나 관심이 많은 깨어 있는 엄마로 보이겠지만, 그 이후 시간은 또 육아 용품을 핑계로 해외 직구부터 로켓처럼 빠르게 오는 일상용품까지 쇼핑 삼매경과 짬짬이 보는 웹툰으로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않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책 읽기엔 취미가 있어 독서하는 시간이 폰을 만지작 대지 않는 유일한 시간이다.  


수많은 육아 전문가들과 서적을 통해 아이에게 미디어의 노출을 최대한 자제하라는 메시지를 그토록 듣고 보았음에도 내 두뇌엔 도통 새겨지지가 않고 여전히 아이가 없던 시절의 습관이 고쳐지지 못했다. 아이가 돌이 지나 한창 걸음마에 재미가 붙을 무렵 또 어김없이 잠자리에서 아이를 재우며 한 손으로 스마트폰을 통해 뉴스를 읽다 아이 얼굴에 스마트폰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놀라며 잠에 깬 아이는 울고 보채다 이내 잠이 들었지만, 나는 그날 밤 자책을 거듭하며 특단의 방법을 찾기 위해 고심했다.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노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미 찾아온 시점이었다. 식당과 비행기를 타서 아이를 조용히 시키기 위한 가장 손쉽고 빠른 방법으로 손에 뽀로로 영상을 쥐여주는 것이 벌써 시작되었던 것이다. 여기에 부모인 나 역시 손에서 폰을 떼지 못하는 못난 꼴을 지속적으로 보인다면 아이도 고스란히 배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두려움이 스쳤다.


고칠 수 없다면, 줄여 보자.

자주 찾는 남산 공원, 디뮤지엄 미술관
36개월 미만은 무료인 아쿠아리움, 우리집 테라스

부모도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다. 엄마 이기전에 의지가 약한 인간이기에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기로 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아이와 시간을 지정하여 그 시간만큼은 무조건 야외 활동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루 두 시간씩 집중해서 아이와 놀아주는 시간을 계획하게 되었다. 저녁 식사 전까지 신나게 뛰어노는 걸 규칙적으로 진행하니 아이는 덩달아 밥도 더 잘 먹고, 잠도 푹 자는 아이가 되었다. 유튜브는 야외 활동을 마치고 깨끗이 씻고 난 후, 저녁 식사를 하며 엄마와 함께 한두 시간을 보게 했다. 아이에게 일상의 규칙이 생겼고 집 밖 외출이 어려울 땐, 집에 딸린 테라스에서 흙장난을 하거나 나무 블록을 갖고 놀게 했다. 그리고 놀이 학교 수업이 없는 주말 오전은 반려견의 산책을 돕게 하며 집이 아닌 공간에서의 시간 할애에 노력하였다. 처음엔 야외 활동에 대해 억지로라도 무조건 진행한다며 시작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아이와 떠난 길 위에서의 시간 동안 아이를 향한 시선이 좀 더 길어지고 집에서 보다 긴장하게 되니 더 많이 눈을 맞추며 놓치고 지나갔을 아이의 새로운 모습도 보게 되었다. 세상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들이 많은데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오롯이 담는 시간이야말로 그런 것 같다. 이것이 스마트폰에 중독된 엄마인 내가 취한 방법이다.


얼마 전 하원길에 마주친 놀이 학교 선생님께서 우리 아이에게 엄마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신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순간, 뿌듯함과 동시에 기쁨의 겸손을 떨려는 찰나에 그런데 엄마는 핸드퐁(아이는 아직 핸드폰을 퐁으로 발음한다)도 좋아해요.라고 했다고 한다. 민망함이 밀려왔지만 아이는 본 것 그대로를 말한 것뿐이니 부끄러움에 할 말을 잃고 서 있었다. 이내 선생님께서 엄마가 왜 핸드폰을 좋아하시는데?라고 물으니 엄마 핸드퐁엔 본인 사진이 많아서 그런 거란다. 아이들은 정말이지 어메이징 한 존재들이다. 애미의 허물을 그리 아름답게 감싸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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