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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ko아줌마 Mar 26. 2020

"우리 개는 물어요."

아기와 강아지가 사는 집

납작한 코에 동그랗고 커다란 눈망울의 우리 집 반려견 구찌가 안짱다리를 뒤뚱거리며 산책을 나서면 종종 마주 오는 낯선 이들의 기분 좋은 미소가 느껴지곤 한다. 물론, 불편한 표정으로 한 발짝 빗겨 피해 가는 이들도 있고 좀 더 적극적으로 이름을 묻거나 쓰다듬으려는 이들도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 구찌는 순하고 귀여운 외모와는 달리 가족 이외의 낯선 이의 손길엔 사납게 돌변하는 사회성이 부족한 녀석이다. 그래서 늘 구찌와의 산책은 조심스럽다. 구찌는 집에서 배변 실수 한 번 없고, 헛 짖음이나 마킹도 없는 점잖은 녀석이지만, 선천적으로 척추가 굽어 30분 이상 산책을 하면 한쪽 다리를 절룩거린다. 올해 나이 13세, 견생으로는 노년의 삶을 살고 있고 육안으로는 여전히 반짝이는 예쁜 까만 두 눈동자를 갖고 있지만, 한쪽 눈만 제 역할을 하고 있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그러나 나쁜 견주는 있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바로 그 ‘나쁜 견주’가 나이기 때문이다. 구찌가 우리 집에 온 건 2008년도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텅 빈집 같은 집안 분위기가 몇 년간 지속되었다. 아버지는 나와 오빠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주셨고, 주말이면 직접 식사 준비를 하실 만큼 가정적이셨다. 부모님의 금슬도 유난히 좋았던 우리 집은 화목했고 집안엔 늘 온기가 돌았다. 오랜 암 투병 끝에 돌아가신 이후, 집에 들어서면 현관 앞 아빠의 서재에서 금방이라도 돋보기안경을 벗고 환히 웃으며 나오실 것만 같아 엄마와 난 아빠의 서재를, 아빠의 물건들을 정리하지 못한 채 몇 해를 그대로 지냈다. 나와 오빠 모두 사회인이 된 직후였고, 일상의 변화는 없었지만, 당시 집안의 분위기는 슬픔이 가득했다. 그 무렵 막연하게 ‘강아지를 키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다.


용인 구성리에서 만난 구찌
 
내가 스스로를 나쁜 견주라 칭하는 건, 구찌를 가족으론 만나는 준비 없이 그저 마음의 위안과 집안의 변화를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적응과 교육에 대한 지식은커녕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먹이지 말아야 할 음식부터 주의할 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맞아들인 것이다. 부하직원 복은 많았던 나는 퇴근길에 당시 신입사원이던 후배가 남자 친구에게 선배를 소개하고 싶다며 잠실에 살던 나를 태워 용인 구성에 있는 아귀찜 집으로 데리고 갔다. 식사 후, 근처에 있던 동물 병원 첫 번째 진열장 안에 있던 아이가 우리 집 구찌이다. 다른 아이들보다 제법 자라 등치가 컸던 납작한 얼굴에 온몸이 새하얀 녀석이 나를 보자 끊임없이 꼬리를 흔들었다. 진열장을 지켜보던 나에게 ‘이 아인 성격이 좋은데 왜 파양 당했나 모르겠다’하며 나에게 가게 직원이 슬며시 말을 건넸고 나는 그렇게 한차례 파양 된 경험이 있는 4개월 된 솜뭉치 같던 구찌를 데리고 용인 구성리에서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명품 브랜드 이름으로 오해들 하는데 그저 데려온 동네인 구성리의 앞 글자 ‘구’와 쎈 발음을 붙여야 잘 알아듣는다고 하여 ‘찌’를 붙여 이름이 구찌가 되었다. 결혼 후, 남편은 자신의 성을 붙이겠다 하여 집에선 김구찌라 불린다.


나쁜 견주의 구질구질한 변명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덜컥 데려온 강아지는 너무 작고 귀여운데 나와 엄마 모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저 데려온 곳의 직원이 감염의 위험이 있고, 사람의 손을 타면 병에 걸리니 최소 6개월은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말라고 하였다. 무지했던 난 이 직원의 말을 맹신하고 따랐다. 후에 알게 된 것은 구찌의 척추가 굽어 아이가 자주 한쪽 다리를 아파한다는 걸 알고 내가 다시 파양이라도 할 것이 걱정되어 한 조언이라 생각되는데 그렇게 집안에서만 자라고 본격적으로 야외 활동이 활발해야 할 시기에 나는 야근과 회식이 일상인 회사에서 별을 보며 퇴근하고 돌아와 TV 앞에 널브러지기 일쑤였고, 주말에 잠시 잠깐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때 그런 핑계를 대지 말고 조금 더 오래 눈 맞추고, 더 많이 함께 하고, 경험시켰어야 했었다. 반려견과 사람 모두 타고난 기질도 있지만 환경과 부모를 통해 길러지는 것들이 많다는 걸 육아 서적 이야기가 아닌 구찌가 성견이 된 후 보인 모습을 보며 수 없이 자책하고 깨닫게 되었다.


구찌가 두 살이 되었을 무렵, 나는 결혼을 하였고 구찌는 친정 엄마의 만류로 신혼집에 오기까지 6개월 정도 친정에서 지냈다. 그렇게 무지하고 못난 주인을 만난 덕에 사회성을 배워야 할 시기를 온전히 놓쳐버렸다. 그러던 중 구찌와 모처럼 올림픽공원 산책길에 우리 곁을 시끌벅적하게 지나가던 등산객 차림의 한 무리를 향해 구찌가 놀라 짖었고 이를 불쾌히 여긴 일행 중 한 중년 남성이 등산화 발로 걷어찼다. 너무 갑작스레 겪은 일이라 놀라기도 했고, 그들에게서 나는 지독한 술 냄새에 전의를 상실한 채, 시비를 따질 겨를도 없이 아파하는 구찌를 안고 병원으로 뛰어가야 했다. 그날 이후, 구찌는 눈도 다치고 가뜩이나 사회성이 없는 녀석인데 반가움의 표시로 손을 내미는 낯선 이들에게 사나운 모습을 보이는 강아지가 되었다.


구찌가 다섯 살 무렵, 개업 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나가던 남편의 권유로 일 년간의 휴직기를 갖고 때늦은 운전면허를 취득하며 부지런히 구찌를 데리고 돌아다녔다. 반려견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다는 전용 운동장과 다른 강아지들도 만날 수 있게 서울 외곽의 넓은 애견 놀이터로 꼬마 차를 타고 매일같이 길을 나섰다. 일 년 남짓, 마음의 여유를 갖고 구찌에게 집중하던 그 시간이 우리에겐 치유의 시간이 되었다. 나에겐 이직 후 겪는 스트레스도 대수롭지 않게 여길 만큼 심리적 맷집이 생겼고, 구찌도 한쪽 눈으로만 보다 보니 아른거리듯, 그래서 두렵게 보이는 타인의 손이 아주 가까이 다가오지만 않으면 입질을 하거나 사납게 달려드는 일이 점차 나아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사람이 아닌 강아지에겐 유순한 편이고, 사람 역시 구찌에게 손을 내밀지 않고, 관심을 두지 않으면 구찌도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있어 애견이 함께 갈 수 있는 카페를 가거나 주말여행을 위해 ktx 기차를 타면 조용하다는 칭찬을 받곤 했다.


구찌를 태우고 부지런히 달렸던 꼬마차

구찌가 10살이 되던 해에 이준이가 태어났다. 강아지와 사람 아이의 육아에 대해 같은 눈높이에서 비교할 수는 없지만, 구찌를 키우며 느낀 일련의 경험과 변화를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을 순 있었다. 먼저, 5세 이전에 구찌가 사람의 손길에 예민하게 된 건 신체적인 요인도 있지만, 가족 이외의 사람을 만나거나 손길을 느껴본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나와 한창 호기심이 많고 뛰어놀며 마음껏 경험할 나이에 집안에서 주로 지내며 아파트 단지의 보도블록을 걷는 게 전부였다. 낯선 이들도 따듯한 손길을 줄 수 있다는 경험을 해 본 적 없는 녀석에겐 집 밖은 늘 두렵고 무서운 곳이었다. 휴직기에 구찌와 강원도에서 부산까지 정말 많은 곳을 다녔고, 다시 회사 생활을 시작하고도 답답해할 구찌를 위해 출근 전, 매일 아침 산책과 주말 나들이는 빼먹지 않았다. 아주 많이 변화되고 개선되었지만, 나는 지금도 산책을 하다 마주치는 이들이 묻는 ‘물어요?’라는 질문에, ‘네, 죄송합니다. 우리 개는 물어요.’라고 답한다. 정말 구찌가 물지는 않더라도, 혹여라도 일어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구찌에게 오랜 시간 정성을 기울였지만, 배움의 시기를 놓치고 성견이 된 반려견의 행동교정은 아기 때라면 쉬이 할 수 있는 것들도 더디고 어려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견주가 함께 하는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많이 느꼈고, 이는 반려견과 아이의 양육에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무조건 온종일, 오랜 시간이 아니라 얼마나 반려견과 아이에게 눈을 맞추고 의미 있게 집중하며 지내는지가 중요하다는 걸 말이다. 그래서 퇴직 후, 노산 엄마라 불리는 나에게 온 아이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음에 감사했고, 아이는 생후 6개월 무렵부터 부지런히 외부 활동을 하였다. 구찌와의 산책도 늘 함께 하였고, 되도록 구찌와 함께 하는 경험을 많이 시키고 싶어 국내 여행은 아이와 강아지를 모두 데리고 여행을 다녔다. 잦은 외출과 여행의 경험 덕분인지 아이는 어디서도 잘 자고, 무엇이든 잘 먹는 아이로 자랐고 낯가림도 없는 예민하지 않은 아이가 되었다. 덕분인지 지난겨울 ‘70일간의 여행’의 장소인 낯선 이국땅 ‘말레이시아’에서도 즐겁게 적응하며 잘 지내다 돌아왔다고 생각한다.

구찌와 이준이

아이가 태어나고 많은 이들이 구찌와 함께 키우는 것에 대한 우려를 하였다. 당연히 들을 법한 이야기로 때로는 새겨듣고 때로는 섭섭하기도 했다. 구찌가 가족 이외엔 사납다는 걸 알고 하는 우려이기에 이해가 갔고, 우리 부부는 아이와 구찌를 어떻게 양육할지를 많은 시간 논의하였다. 무엇보다 반려동물과 아이를 함께 키우는 가정은 청결을 철저히 해야 하고 두 배로 부지런해야 하며, 그 어떤 상황에도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진, 반려견과 아이만 단둘이 두는 건 삼가야 한다. 많이들 묻는 질문이 ‘아이가 물린 적은 없나요?’이다. 당연히 있다. 이준이가 한참 기어 다닐 무렵과 걸음마를 막 시작했을 때, 고사리 손으로 구찌의 눈과 꼬리를 만지다 물렸다. 현장에 내가 있었지만,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너무 놀랐지만, 다행히 이빨 자국이 조금 남고 크게 상처가 나진 않았으나, 만일을 대비해 소독약 처리 후 바로 소아과에 데려가 항생제 연고 처방을 받고 집에 돌아오니 식탁 밑에 들어가 눈치를 보고 있는 구찌도 안쓰러웠다. 처음 구찌가 입질을 한 날, 이웃에 살고 있는 동물 병원 원장님께 상의를 드리니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반려견과 아이 모두에게 주의를 주라는 말씀을 지금껏 따르고 있다.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구찌는 기력은 많이 쇠했어도 낯가리는 성격은 여전하지만, 눈 뜨면 자신의 밥을 챙기고, 하원 하면 구찌의 이름을 목청껏 부르며 귀가하는 이준이와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다. 이준이는 날로 개구쟁이가 되어가고 있지만, 구찌에겐 간식도 항상 나눠 먹고 다정히 대한다. 물론 그 이면엔 사나운 행동을 보이면 주의를 받는 구찌처럼, 강아지에게 장난감을 던진다거나 간식을 뺏는 장난을 치려 할 때마다 이준이 역시 반복적으로 주의를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이와 강아지가 함께 사는 행복은 견주 이자 부모가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가르치고 노력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준이를 귀찮아하던 구찌도 언젠가부터 아이의 발밑에서 같이 잠들기 시작했다. 구찌는 다리가 불편한 것 외엔 아이의 등원 길을 함께 하고 매일 햇살을 받으며 짧은 산책을 즐기는 건강한 노령견으로 지낸다. 이준이는 얼마 전, 우연히 돌고래 사냥을 하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펑펑 울며 어서 엄마가 가서 고래들을 구해주라고 외칠 만큼 동물을 사랑하는 아이로 자라고 있다. 구찌가 이준이를 가족으로 서서히 여겼듯 이준이 역시 가르치지 않아도 반려견 구찌와 함께 살며 동물을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배우며 성장하고 있다. 아이들이 자라듯 나도 두 아이들을 키우며 일평생 해 본 적 없었을 희생과 양보라는 것도 조금은 해 가며 살아가고 있다. 지난 구정 연휴에 시부모님을 모시고 애견 펜션에서 생선 전 대신 삼겹살을 구운 여전히 철없는 막내며느리지만 말이다.

구정 연휴를 보낸 가평 애견펜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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