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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ko May 18. 2020

조선 시대에도 배달음식이 있었을까?

‘효종갱(曉鐘羹)’과 '구독 경제'

경제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연일 보도되는 뉴스로 '코로나 19' 장기화에 따라 경제 전망이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뉠 만큼 급변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전 세계가 경제 위기라 할 만큼 코로나라는 변수를 만나 항공업과 여행업 등은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고, 선진국이라 불리는 미국과 독일에서 생필품을 사기 위한 줄 서는 모습과 사재기 문제에 관한 기사는 이젠 놀랄 일이 아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교육을 최우선으로 받고 자라 배려하는 생활습관이 몸에 밴 일본에서도 휴지와 마스크의 사재기로 진열대가 텅 비어 있다 하니 사재기는커녕 아이를 재우고 집안 정리를 마치고 난 후 잠자리에 들기 전 편안히 누워 다음날 아침에 당장 마실 우유도 간편히 주문하고 새벽에 신선하게 문 앞에서 배송받는 한국의 배송 문화와 배달 음식 문화는 우리가 자부심을 갖고도 남을 일이다. 이 생태계를 만든 건 우리 모두이다. 한국의 뛰어난 IT 기술과 물류 시스템 그리고 아무리 좋은 플랫폼이 나온들 쓰지 않으면 무용지물인데 이를 잘 애용하고 있는 국민들. 그중에서도 매번 식사를 준비하기 버거운 1인 가구 거주자들의 배달 음식 사랑과 휴교령 시행에 따라 매일같이 삼시 세끼 아이들 식사를 준비해야 할 주부들이 없었다면 이토록 찬란히 발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이 배달 음식, 새벽 배송에 대한 고민과 실행을 이미 100여 년 전부터 해 왔다는 걸 주말에 가족들과 식사를 하며 알게 되었다. 5월은 크고 작은 가족들의 경조사가 있어 지난 주말에 필동에 위치한 ‘한국의 집’에서 점심 식사를 하였다. 이곳은 충무로의 빌딩 숲 사잇길 골목에 시간이 멈춘 듯, 고즈넉이 자리 잡은 ‘한옥’이다. 문화재청 산하의 공공기관인 ‘한국문화재재단’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한국의 음식과 공연을 통해 전통문화를 알리고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들에겐 전통 혼례를 치를 수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금번 달 특별 메뉴로 ‘효종갱(曉鐘羹)’이라는 생소한 명칭의 음식이 있어 주문을 해 보았다. 음식의 맛은 된장 맛이 약하게 느껴지는 갈비탕 국물에 각종 야채와 보양에 좋은 전복을 뭉근히 끓여 심심하고 담백한 맛으로 아이와 연로하신 부모님 모두에게 좋은 음식이었다. 가족들과 음식을 나누며 식탁 위에 간단히 적힌 음식의 유례를 읽어 보고 호기심에 집에 돌아와 관련 문헌을 찾아보았다


조선 시대 배달음식의 시초 ‘효종갱(曉鐘羹)’

'한국의 집'에서 먹은 구절판(九折板)과 효종갱(曉鐘羹)

'효종갱’에 관한 기록은 조선 후기의 각종 놀이와 풍속 등의 내용을 담은, ‘해동죽지(海東竹枝)에 있다. 조선 후기 관청에서 문서의 기록과 관리 등의 업무를 맡았던 서리 출신의 서예가 ‘최영년’(1856~1935)이 저술한 책으로 연날리기, 제기차기 등 지금까지도 내려오는 전통 놀이를 비롯해 각 지역의 특산물과 명물 음식이 기록되어 있다. 그중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은 ‘효종갱(曉鐘羹)’이라는 해장국이 유명했다 쓰여 있는데, 이 명칭은 새벽 효(曉), 쇠북 종(鐘), 국 갱(羹) 자를 써 새벽종이 울릴 때 먹는 국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는 배추와 콩나물, 송이와 표고버섯, 소갈비, 해삼, 전복을 토장(된장)에 푹 끓여 항아리에 담아 솜에 꽁꽁 싸 메어 새벽종이 울릴 때쯤 양반집으로 배송되었는데, 문헌에 따르면 그때까지도 국 항아리가 식지 않고 따뜻해 해장에 더없이 좋았다고 한다. 기록에는 없으나 전날, 사람을 보내 주문을 했을 수도 있겠으나 전복 등의 귀한 재료를 미리 준비하여 만들고 도성 밖, 남한 성에서 지금의 서울인 '한성(漢城)'까지 달구지에 실어 배달을 했다는 건 여러 양반집에서 정기적으로 배송을 받았다고도 추측해 보는데 이는 요즘 경제 용어에서 가장 핫 키워드인 ‘구독 경제’의 시행이기도 하지 않을까 하고 즐겁게 상상해 본다.


‘쿠알라룸푸르’에서 만난 한국 정수기 광고 간판


포털 사이트에서 ‘구독 경제(subscription economy)’를 치면 내로라하는 기업들의 성장과 시장 확대 가능성 적용 사례가 무수히 나열되고 있다. 다 아는 용어를 조합한 것처럼 흔히 ‘구독’이라는 용어에 우리가 이미 경험해 본 신문과 우유의 정기 배달 서비스에서 코로나와 함께 전 세계가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가입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넷플릭스(Netflix)’와 ‘구독 경제’ 사업성의 확대 범위에 금액과 카테고리의 제한이 없다는 걸 알 수 있게 해 준 '현대자동차'의 하이엔드 브랜드 '제네시스'구독 서비스인 '제네시스 스펙트럼'까지 우리는 이제 ‘소유’보단 공유를 통한 ‘경험’을 소비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흔히 한국의 글로벌 기업을 꼽으라면 삼성과 LG를 꼽는다. 물론 두 기업 모두 명실공히 각 분야의 슈퍼 기업이다. 뉴욕에 처음 갔을 때,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찾는 타임 스퀘어에서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들의 광고판 사이에 꽤 크고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두 기업의 광고판을 마주친 순간 국뽕을 한 사발 마신 듯 자랑스럽다.


그런데 이 경험을 작년 두 달 반 동안 거주했던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 도로 곳곳의 뜻밖의 기업 광고판에서 느끼곤 했다. 그것은 바로 우리에겐 정수기 회사로 잘 알려진 국내 실물 ‘구독 경제’ 시장의 일인자 ‘코웨이’였다. 살아보기 전까진 왜 삼성이나 LG의 광고판보다 코웨이의 간판이 많이 보이는지 알 수 없었다. 말레이시아에서 코웨이 정수기는 점유율 1위다. 말레이시아는 동남아시아의 다수의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석회수(hard water)’이며 설사, 석회수가 아니더라도 노후화된 수도관의 문제로 집집마다 자체 정수 필터를 장착해야 한다.


80년 대 국민학교를 다녔던 세대는 기억할 것이다. 동네에 한껏 머리엔 뽕을 넣고 곱게 화장 한 방문판매 화장품 아줌마가 온 날이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한 집에 모여 누워 팩을 붙이고 한쪽에선 물건 팔러 온 이에게 국수라도 말아주던 정이 있던 시절을 말이다. 그 특별한 방문 판매 문화를 코웨이는 ‘한국형 관리 서비스’라는 명칭으로 계승하였고, 여기에 업계 최초로 ‘마시는 물도 식품’이라는 발상의 전환으로 말레이시아에서 정수기 할랄(HALAL) 인증을 획득하며 국민의 대다수인 무슬림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시장을 확대하는 데 성공했다. 내가 거주하던 ‘몽키아라’ 지역은 쿠알라룸푸르 지역에서도 비싼 부동산 가격의 부촌으로 한 달 살기를 하는 한국 엄마들이 많이 찾는 지역인데 이곳의 고급 헤어숍과 식당에 가면 어김없이 코웨이의 정수기를 만날 수 있다. 최근에는 정수기 고객을 기반한 렌털 매트리스 사업도 확장일로라고 하니 안정적이고 반복적인 수익원에 시장의 확장성까지 있어 기업들이 ‘구독 경제’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경제 용어라고 하면 딱딱하고 외워야 할 것 같지만, 우리는 이미 다 경험하고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이 활용하게 될 것이다. 글로벌 코스메틱 기업의 신상품 테스트 마켓도, 할리우드 영화의 최초 개봉관도 한국이다. 왜 우리 시장의 반응을 주목하는 것일까? 전 세계가 그리고 우리 역시 경제 성장은 어둡고 비관적이지만, 작은 반도의 나라의 기업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우린 어쩌면 세계의 트렌드를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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