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셸(Seychelles)’, 부드러운 어감의 명칭에 왠지 향긋한 꽃 내음이 날 것만 같은 이 낯선 나라를 포털에서 검색하면 '마다가스카르'와 '모리셔스'의 북쪽 인도양에 위치한 115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곳으로 '내셔널 지오그래픽 (National Geographic)' 선정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세계 최고의 해변 TOP 10 중 1위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영국 로열패밀리와 데이비드 베컴 부부 등 유명 스타들의 휴가지이나 국내에선 두바이 경유를 포함한 14시간의 긴 비행이 소요되는지라 주로 신혼여행지로 검색된다. 나는 마흔이 넘도록 지구 반대편 지상낙원 ‘세이셸(Seychelles)'에서 태어난 사람과 친구가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첫 만남은 이랬다. 주말 아침에 해장국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은 늦은 아침을 먹고 인근 호텔 지하 아케이드에 있는 서점에 갔다. 서점 동화책 코너에 보글보글 이국적인 헤어스타일을 한 우리 아들 또래의 귀여운 여자아이와 엄마가 책을 고르고 있었다. 아이들은 마스크를 한 채 서로를 호기심 어리게 쳐다보았고 애 엄마들이 갖는 특유의 동지 의식은 만국 공통어인지 아이 엄마와 나는 짧은 인사를 나누었다. 그사이 토익 고득점과는 별개로 영어 울렁증의 소유자인 애 아빠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경제 서적 코너로 빠르게 사라졌고 우리 아들은 슬슬 여자아이에게 다가가더니 제 손목에 찬 2천 원짜리 플라스틱 장난감 시계를 여자아이의 손목에 채워주는 게 아닌가. 아이의 돌발 행동에 나도 외국인 아이 엄마도 웃음이 터졌다. 아이들 세계에선 그 시간도 안 맞는 플라스틱 시계가 롤렉스 이상의 가치인지 마주 보고 웃으며 이내 손을 잡고 서점을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능청스러운 아들 덕에 아이 엄마와 나는 연락처를 주고받았고 우리는 서로의 SNS로 연락을 이어가며 친구가 되었다.
아이 엄마의 이름은 '줄리아'이다. 처음 그녀를 서점에서 보았을 때, 남편과 나는 아프리카 대륙의 미인의 정석이 그녀가 아닐까 하는 대화를 나누었을 만큼 눈에 띄게 화려한 스타일링에 눈이 참 예뻤다. 앞서 다른 글에서 언급했듯 나는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아니다. 일상의 대화는 가능하지만 여전히 잘하고 싶은 사람에 가깝다. 친구가 되는 것에는 국경과 언어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걸 작년 이맘때, 쿠알라룸푸르에서 70여 일 간 지내며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서로가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요인이 되었다.
임신과 함께 퇴사를 한 후, 쇼핑몰 등에 회원 가입을 할 때면 직업란에 무엇을 적어야 할지 몇 초간 망설이곤 했다. 00 대리, 00 과장 등 늘 남이 정해준 직함으로 살아온 것이 익숙했고 '회사원’이라는 호칭을 16년간 써 오다 '전업주부'라 적는 게 어색했다. 가끔 남편의 회사 일을 비 정기적으로 돕기에 ‘이사’라 적힌 그럴듯한 명함은 있지만, 그 직함을 회사 밖에서 사용해 본 적은 많지 않다.
아이를 품은 후, 즐거운 추억이 가득한 충만한 유년기를 만들어 주겠노라 다짐하며 이 길을 선택했다. 누워만 있던 아이가 스스로 일어나 걷고 달리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눈에 담으며 소리 내어 웃을 만큼 큰 행복도, 사람들 앞에서 얼굴이 빨개지도록 민망한 순간도 지나며 아이는 성장했고 내 전업주부로서의 시간도 4년이나 흘렀다. 그러는 사이 사회생활하며 스크롤을 계속 내려야 할 만큼 빼곡하게 쌓였던 연락처의 인간관계는 소멸되어 갔다. 회사원에서 아이 엄마라는 길로 바뀌어 가는 과정은 마치 긴 연애를 아쉬운 이별로 정리하는 것과 같았다. 오랜 시간 함께 출장을 다녔던 캐리어에 쌓인 먼지만큼 내 커리어도 바랜 것 같았고 전업주부의 삶은 으레 인간관계도 단조로울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그것이야말로 편견이었다. 직장 생활도 전업주부의 삶도 모두 어떠한 삶의 태도를 지니느냐에 따라 천자 만별이고, 인생은 우리 아들이 시계를 처음 만난 친구에게 채운 일 만큼이나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다. 아이를 통해 새로운 세상이 열리기도 하고, 자주 가는 단골 식당의 손님들과 같은 음식을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사이버 세상에서 우정을 나누다 현실 세계에서 만나 더없이 친해지기도 한다.
흔히들 세상 밖으로 나선다는 걸 비행기를 타고 먼 곳으로 떠나는 것이라 여기지만, 내 집 문을 열고 나서는 그 순간부터 우린 세상 속에 들어서는 것이다. 그 세상에서 편견이라는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낯선 모든 것들에 대한 두려움에 방어막 같은 목폴라를 한껏 끌어올려 누구도 다가서지 못하게 무장한다면 보이는 세상은 정말이지 어둡고 답답할 것이다. 서점에서 줄리아와 눈을 마주쳤을 때, 내가 어색함에 피해버렸더라면 나는 평생 마다가스카르에 펭귄이 산다고 여기며 살았을 것이다.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을 통해 본 ‘마다가스카르의 펭귄’이 내가 아는 그 지역 유일한 지식이었건만 그곳엔 정작 펭귄이 살지 않고, 아프리카에선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에서만 서식한다고 한다. Penguins of Madagascar, 2014) 보글보글 귀여운 웨이브가 부드럽게 일렁이는 줄리아의 딸 일리니는 그리스 사람인 아빠와는 그리스어를 엄마와는 프렌치 어를 그리고 우리 아들과는 영어로 대화한다. 호텔리어인 아빠의 근무지를 따라 스리랑카에서 태어나 그리스에서 백일을 보내고 두바이에서 두 돌 생일을 치렀다니, 전 세계를 집으로 여기며 사는 엘리니는 어쩌면 피부색과 언어가 달라도 친구가 되는 데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엄마 뱃속에서부터 알고 있었으리라.
지난 주말 저녁에 줄리아 가족과 식사 시간 동안 아이들은 내가 가방에 비상용으로 들고 다니던 일회용 밴드를 갖고 깔깔대며 놀았다. 분명 의사소통이 명확하지 않을 터인데 중간중간 언어를 미소가 대신하는 듯했고, 일회용 밴드 하나로 병원놀이도 했다가 이내 손가락에 둘러 반지도 되고, 머리에 붙이기도 하며 한참을 재미있게 놀았다. 아이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모든 게 경이롭고 신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의 관심을 지구 반대편 '세이셸'까지 넓혀 준 것은 그간 쌓은 스펙과 커리어가 아니라 낯선 이에게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약간의 용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