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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둘 Sep 28. 2016

그저 스위스라서 좋은 거겠죠.

동행: 타국의 너와 나/ 2015_Europe, Switzerland.

Switzerland, Basel and Luzern, 자연이 예쁘고 조용하면 술맛도 좋나요? 스위스라서 좋은 거겠죠.


프랑크푸르트에서 바젤로 넘어오면서 비슷한 듯, 다른 듯. 알쏭달쏭 한 생각을 계속했다. 언어가 비슷하지만 다르고 같은 것 같으면서도 지역별로 다른 것을 알기까지는 조금의 시간이 걸렸다.

스위스는 알다시피 살인적인 물가를 가지고 있는데 이 살인적인 물가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밑도 끝도 없을 것 같다.


아무튼, 우리의 여정은 바젤을 베이스캠프로 하고 스위스의 주요 도시들을 둘러보기로 했다. 첫날은 바젤, 둘째 날은 로잔과 베른, 세째 날은 루체른과 취리히. 네째 날은 다른 도시로 이동이 우리의 목표였다. 하지만 계획은 틀어지라고 있는 게 아닌가? 우리의 계획은 첫날부터 깨질 조짐이 보였고 확실히 깨진 건 둘째 날 저녁이었다.


시민들의 발을 이어주는 바젤의 초록 트램


11년도에 루체른과 취리히만 갔었기 때문에 일부로 베이스캠프를 바젤로 잡고 움직였다.

바젤, 베른, 루체른, 취리히의 경우 철도를 이용하면 1시간에서 2시간이 덜 거리는

거리에 있기 때문에 어디를 베이스캠프로 삼고 돌아다니느냐가 가장 중요한 관건이라고 생각된다. 우리가 바젤을 베이스캠프로 잡은 이유는 내가 가본 적이 없고, 도시의 관광객 유치를 위하여 관광객들에게 모빌리티 티켓을 제공했기 때문에

두 말없이 베이스캠프로 결정하고 이동했다.


바젤의 첫인상은 굉장히 조용한 도시, 라는 것. 초록색 트램이 온 동네를 누비는 곳, 그 어떤 도시보다 조용한 곳, 호스텔이 너무 먼 곳, 이라고 느꼈다.

아, 그리고 하나의 컬처 쇼크?라고 해야 되나 아무튼 바젤 중앙역은 전 역사에서 흡연 가능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깐 웃고.

이 것 때문에 깜짝 놀랐었지만 나중에는 피는구나. 짜식들. 담배 참 좋아해. 이러고 넘어가게 되긴 했지만 누구든지 처음 바젤 중앙역에 도착한다면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우리가 묵었던 호스텔은 백팩 호스텔이었고, 바젤 중앙역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다. (기억으로는 호스텔이 없었...여기뿐....후..)

아무튼, 건대입구에 생긴 커먼그라운드 200여 개의 컨테이너 박스를 가지고 만든 복합 문화 쇼핑공간인데 백팩 호스텔은 커먼그라운드처럼 다양한 복합공간이 얼기설기 뭉쳐져 있는 곳이었다. 낮에는 아이들이 뛰놀고 저녁에는 어른들이 모여 식사도 하고 토론도 하고, 파티도 열고. 굉장히 자유분방한 곳이었다. 처음에는 이런 곳에 호스텔이 있다고..?라고 했는데 나중에는 골목골목이 너무 예쁘고 편안하다고 해야 하나, 굉장히 맘에 들었다.


호스텔 스텝도 친절하고, 모빌리티 티켓도 주고 길 건너에는 경찰서가 있고 걸어서 5분 거리에는 은행과 coop이 있고. 중앙역에서 거리가 조금 먼 것을 빼면 나한테는 백 점짜리 호스텔이었다. 아 그리고, 더 좋았던 건 처음에 혼성 도미토리를 예약했는데 제이크 질렌할 닮은 스텝이 여성전용으로 바꿔주었다.

(나중에 이게 정말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했다. 허허)



낮이든 밤이든 사람 사는 냄새 물씬 나던 호스텔 앞





길 건너에는 경찰서가 있다네


                            

첫날, 쿱에 가자마자 보드카가 섞인 맥주를 사서 강변을 걸었다. 셔터를 누르고 한 모금 마시고

또 셔터를 누르고 손을 호호 불고 다시 한 모금 마시고 사진을 찍고.




밤의 강가는 언제나 아름답다

                                                                              

스위스의 도시답게 강을 끼고 있던 곳.

알자스 지방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던 그곳.

너무 조용해 항상 잠들어 있는 도시 같았지만 잠들지 않았던 그곳.



                     

바젤이 굉장히 좋았던 건, 다른 도시들에 비해 내세울만한 볼거리나 액티비티가 적기 때문에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하여 다양한 시도를 한다는 점이었다. 도시 내 교통수단을 묵는 내내 공짜로 이용할 수 있고, 어딜 가나 설명이 잘 되어 있고 쉽게 쉽게 갈 수 있었다. 또 관광객들에게 친절했고 처음 보는 동양인에게도 웃으며 인사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 가장 즐거웠었다.



Hello, My Basel.


밥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 터라 알딸딸한 상태로 호스텔에 돌아와 내일은 뭐할까 하고 얘기하고 있을 때, 난도를 만났다. 미국에서 온 난도는 독일에서 유학 중이고 중간에 있는 방학을 이용해서 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를 보자마자 안녕, 한국에서 왔니 하고 우리와 계속 놀자고 했던 난도에게 우리는 피곤하다며 잘 거야.라고 하고 줄행랑쳤다. 왜냐하면 난도는 흡사 해리포터의 해그리드와 같았기 때문이었다. 엄청 큰 키에, 큰 덩치에. 사실 좀 무서웠다. 크크.

                                                                                                                    

아무튼 그를 뒤로하고 밤을 보낸 뒤 우리는 로잔으로 향했다.

로잔을 가는 길은 이게 스위스구나, 역시 스위스구나.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게 했다.

눈이 쌓였지만 푸르른 곳, 녹지 않는 눈으로 덮인 산 꼭대기들.



로잔으로 향하는 길에, 간이역에서.


눈송이가 날리고 어깨위로 내려 앉을 때,


로잔에 도착했을 때, 오는 내내 날씨가 좋지 않아 걱정을 했다. 그래도 왔으니 둘러보고 가자며 열심히 언덕을 오르고 있을 때 눈발이 휘날리기 시작했다. 금방 멈추겠지, 잠깐 오겠지. 했지만 웬걸.. 눈이 그치지 않고 몰아치기 시작했다. 속이 상했다. 아침부터 준비해서 설렘을 가득 안고 온 곳에서 눈보라로 눈을 뜰 수도 없고 설상가상 우산도 없어 눈으로 온몸이 뒤덮여 가는 그 순간이 너무 황당하고 속이 쓰렸다. 왜지, 왜 이럴까. 날씨가 나쁘지 않다고 했는데. 너무 속이 상했다. 올라가며 뜨거워지던 그 설렘은 5분도 안되어 차게 식어버렸다.



베른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눈발은 더욱더 거세지고 있었다


눈은 쉬이 그치지 않았다


                                                    

흩날리는 눈보라에 눈을 뜰 수도 없어 다시 역으로 돌아가면서 우리는 말이 없어졌다. 바로 앞에 있는데, 조금만 더 걸어가면 볼 수 있는데. 우리는 그 조금을 가지 못하고 다시 돌아와야 했었고 큰 아쉬움으로 남을걸 알면서도, 쓰린 속을 부여잡고 다시 기차를 알아보고 베른으로 향했다.


베른은 다르겠지, 베른은 괜찮을 거야.

라고 생각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로잔보다 더 심한 눈보라가 치고 있었다.


정말 안 되는 날이다, 술 당긴다. 이 생각만 가득가득 들었다.


더 속 이상했던 건, 나가서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었던 눈보라가 치는 그 순간마저도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에 볼 수 없다는 허망감이 더욱더 속을 상하게 했다.



눈발이 날리던 베른의 중앙역

                                                                                                          

우리는 베른에서 다시 바젤로 돌아왔다.

돌아온 바젤은 눈도 오지 않고 맑기만 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며 우리 둘은 화가 났고 밥이나 먹자 하고 또 라운지에 앉아 죽치고 있었다. 어느 순간 난도가 들어왔고 오늘은 뭐했냐며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서 우리는 로잔과 베른에 갔었는데 눈이 와서 돌아왔다고 우울하다고 했다.

난도는 그래서 오늘 저녁엔 뭐할 건데?라고 물었고 우리는 오늘도 피곤해서 잘 거야.라고 했다. 난도는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난색을 표하면서 자기가 스텝에게서 알아온 좋은 클럽이 있으니 가자고 했다. 자신이 묵는 마지막 날인데 안 놀 수 있냐며 우리를 꼬드겼고 우리 셋은 트램을 타고 다리 앞에서 내려서 다리를 건너서 동네를 한 바퀴 돌아 돌아 바에 들어갔다.

오 마이 갓. 여기 정말 클럽 맞나요? 동네 선술집이잖아요.. 우리 셋은 할 말을 잃고 웃다가 폭풍 음주를 즐겼다.


맥주 500리터 원샷하듯 쏟아붓고, 보드카 샷 원 샷샷샷. 술맛이 이렇게 좋았나. 이 동네는 너무 조용하고, 다리 밑도 아름답고. 내가 영어를 하는지, 한국어를 하는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정신이 없어도 마냥 즐거운 시간이었다. 12시쯤이 되어 돌아가자고 트램을 타러 가는데 친구가 화장실이 가고 싶다고 했다. 마침 나도... 아무튼 난도가 그럼 주변에 아이리쉬 펍이 있으니 화장실도 갈 겸, 한 잔 더하자고 해서 우리는 또 그래(!!)하고 신나서 갔다.


아이리쉬 펍이 종말을 예고할 줄은 상상도 못 하였지.


들어간 아이리쉬 펍은 바보다는 연령대가 다양했었다. 들어가기 전에 만난 노신사, 안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다가 만난 멋쟁이 할아버지 3인방. 그리고 전통의상을 입고 우리에게 처음 만난 한국인이라며 맥주를 사주던 할아버지.

우리와 함께 즐기던 사람들.

멋쟁이 할아버지들은 우리에게 한국에서 왔냐며, 그 전날 먹은 한식을 자랑하고 예쁘다며 술을 사주고 같이 춤도 추고 함께 광란의 밤의 서막을 열었다. 전통의상을 입은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처음 만난 한국인이라며 신기해했고 우리에게 계속 맥주를 사줬다. 난도는 난도대로 우리에게 데낄라를 제공하고 할아버지들은 맥주를 제공하고. 우리는 정신없이 마셨다. 웃고 떠들고, 내가 영어를 하는지 뭐라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그냥 너무 즐거웠다.


그리고 꽐라가 되었다. 개가 되어 바젤 거리를 걸어 다녔다. 네발로 안 걸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침대에 부딪혀 뒤통수에 혹이 났으며 다음날 오후 1시에 일어나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잠들기 전부터 아침에 일어나서까지 나는 오바이트 분수대였다.



한국인을 처음 본다고 하셨던 할아부지,

                               

다음날 오후 1시에 일어났을 때,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다. 속은 속대로, 뒤통수는 뒤통수대로. 핸드폰엔 불이 나있고. 루체른은 가야 한다며 둘 다 씻지도 않고 부랴부랴 준비해 루체른으로 향했다. 향하는 내내 몸에서 진동하는 술냄새에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창을 통해 보이는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서 힐링된다.. 하면서 동시에 숙취에 허덕였다.



루체른으로 향하는 길, 바젤만 빼고 전 지역에는 눈이 왔나보다


오랜만이야, 루체른!


가족이 더 예뻐보였던 것은 같이 아름다운 것을 보고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었다


눈 모자 쓴 카펠교




처마 끝에 살얼음이 달리고, 해는 구름끝에 달리고


루체른 중앙역 앞 호수 전경, 눈 덮인 산이 너무 예뻤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퇴색되지 않는 기억 속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데



빈사의 사자상, 괜시리 마주할 때마다 맘 한켠이 뭉클해지곤 했다


루체른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카펠교 또한 여전히 아름다웠다.

여전히 강과 산으로 둘러싸여 모든 이들을 편안하게 했고 여전히 조용하고 고즈넉했다.

숙취는 계속 우리의 뒤를 따라붙었지만 우리는 앞에 있는 풍경과 아름다움을 보면서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나, 그림과 같다며 계속 사진을 찍었었다.


속이 좋지 않아 하루 종일 굶다 유명한 식당에 가서 술 섞인 퐁듀로 인해 속이 다시 뒤집혔지만 루체른에서 먹은 스위스 여행 중 가장 사치스러웠던 식사는 만족스러웠고 우리는 니글거린다며 스타벅스로 향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다시 폭풍 수다를 떨었다.


너는 속 괜찮냐, 나 혹 어떡하냐. 나 어제 너무 개였다. 쪽팔린다 등등.

강을 보면서 또 술 생각이 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겠지만 오늘은 도저히 못 마시겠다며 커피로 대신하고 떠나왔다.


밤이 내려 앉은 카펠교


                                                                                                                                                               

카펠교 건너편에서 사진을 찍고 있노라니 카메라 앞으로 와 사진을 찍어달라며 포즈를 취하던 아이.

카메라가 신기했던지 숫자를 세자 굳었지만, 자신의 모습이 담긴 디스플레이 창을 보곤

환하게 웃으며 뛰어가던 아이.


여전히 가슴 먹먹하게 하는 빈사의 사자상이 있는 루체른, 어딜 가나 강을 끼고 하얀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호반의 도시들. 조용하게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던 바젤, 눈 속에서도 아름다웠던 로잔과 베른까지.


우리의 시간은 계속, 조금 더 빠르게 흐르고 있었지만 흐르는 시간이 무색하게 멈춰있던 곳,

바쁘게 걷던 우리가 천천히 발걸음 끌며 걷게 만든 곳,

매 순간 입이 벌어지던 자연 속에서 눈을 뗄 수 없던 곳,


스위스라서 좋았네.

그 모든 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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