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나 둘 Sep 16. 2016

여전히 설레이는 너는 프라하,

동행: 타국의 너와 나 / 2015_Europe, Prague.

Czech Republic, Prague. 여전히 설레이는 너는 프라하.


뮌헨에서 비엔나로, 악몽같던 시간들 속에서 멘탈이 흔들리는 몸까지 축나는 사태가 벌어졌다.

40여일이 되는 여정의 딱 절반이 되던 날, 뮌헨에서 나와 내 친구는 잊지 못할 거지같은 현실을 마주했다.


바젤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눈보라를 뚫고 뮌헨에 도착했었다.

2011년도에 처음 떠났던 배낭여행에서 좋았던 기억이 남았던 숙소에 똑같이 묵었고, 비슷한 공간에 머무르게 되었다. 하루 종일 이동하고, 중간 여정까지 끼고 돌아다녔던 하루였기 때문에 너무 지친 우리는 일찍 씻고 잠에 들었다.


누워서 잠에 들랑 말랑할 때, 친구가 전한 이야기는 악몽의 시작이었고 우리는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도망치듯이 비엔나로 떠났었다. 비엔나에서 우리는 모든 시름을 끌어 안았고 잠만 잤다. 화도 나고 찝찝한 기분을 이겨내려 애써 먹을 것을 찾아다니고 돌아다니다 결국 잠으로 그 시름을 털어냈었다.


비엔나의 마지막 날, 아침을 먹고 요기거리를 챙겨 소도시에서 기차를 갈아타 장장 6시간에 걸려 프라하에 도착했다. 도착하자 말썽이던 캐리어가 부서졌고, 숙소는 웬걸! 엘레베이터 없이 우리나라 3층 높이. 하하하하.


우울함을 못이겨 떠나와 도착한 호스텔에서 사람들과 밥을 나눠먹고 연예인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고 광란의 밤을 보냈었다. 근 3일 동안의 시름을 다 털어내려 발버둥치듯이.

처음 계획했던 프라하에서의 일정을 짧았다. 체스키를 가지 않고 베를린으로 넘어갈 예정이었으니.

2박 3일이었던 일정은 5박 6일로 늘어났지만, 우리는 그 결정에 대해 아직도 잘한 결정이라며 후회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사진들이 그리고 그 사진들 속 우리의 표정이 말해주지 않을까 싶다.


앞서 언급했듯, 나는 전공이 도시계획이라 길 눈이 밝은 편이고 한 번 걸었던 길은 대부분은 기억하는 편이다. 2011년에 왔을 때의 기억을 더듬으며 그 기억의 자취를 따라서 친구와 걷고 또 걸었다. 프라하에 머물었던 5박 6일동안, 우리 동네마냥 블타바 강변을, 구시가지를 걷고 또 걸었다. 하루는 까를교 오른쪽으로, 하루는 까를교 위로, 하루는 까를교 왼쪽으로, 하루는 종일 숙소에서 쿨쿨.


까를교 위, 악사의 손끝엔 모든이들의 시선이 걸려 있다


악사의 손 끝은 찬 공기로 금새 식어버렸지만 그의 열정은 쉽게 식지 않았다


우리는 여행을 다니면서 남들이 보기에 굉장히 까부는 행동을 많이 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연인인척하기 였다. 나는 머리가 길었고, 친구는 여행을 가기전 머리를 짧게 자르고 갔었기 때문에 외국인들의 오해를 불러오기 쉬웠고 이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를 나열하자면 포스팅 한 장을 꽉꽉 채울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아무튼, 우리는 블타바 강변을 거닐면서 '자기야, 여기 너무 예쁘다.', '자기야, 너무 좋다!' 등등을 남발하며 킬킬거리며 돌아다니기 일 수 였다. 괜히 '프라하의 연인'이 있는게 아니라며.


우리가 프라하에서 가장 좋아했던 장소는 단연 까를교였다. 프라하 성을 가지 않는 날에도 우리는 까를교 근처에서 서성거리며 오른편 강변과 왼편 강변을 매일 걸었다. 까를교 위에서 여유치 않은 주머니를 뒤져 내가 내는 값으로는 너무 부족한 공연들을 보면서 동전을 건내기도 했고, 낮에는 햇빛을 받아 더욱 붉게 빛나는 구시가지의 빨간 지붕을 보거나 멍하게 서서 강 옆으로 지는 노을을 바라보기도 했다.


알록달록 하지만 우리는 똑같은 빨간 모자를 쓰고 있어요


특색 넘치는 아무런 꾸밈이 없어도, 예전 모습을 간직하려 노력하는 흔적이 묻어나는 곳곳을 보고 있노라니 맘 한켠이 일렁이곤 했다.

내가 다시 이 강변을 걷다니, 나와 가장 친하고 닮은 친구와 이 곳에서 같지는 않더라도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일렁이는 맘과 두근거리는 설렘을 끌어 안고 이 곳에 서있다는 것만으로도 벅차오르곤 했다.


블타바강 오른편, 사람이 없어 한적했다


회색빛 아래 알록달록한 건물들이 늘어서 있어, 회색빛은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가 가장 좋아했던 장소 중 다른 한 곳은 프라하로 향하는 내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추천해 친구가 기대하고 와서 그 기대를 한 껏 충족시켰던 '카페 루브르'였다. 프란츠 카프카가 생전에 자주 찾았던, 100여년 동안 여전히 성황리 운영중인 이 곳.


2011년도에 처음 유럽 여행을 왔을 때에도 나는 체코를 굉장히 좋아했었다. 한 때, 좋아했더 사람이 늘 그리던 그 곳. 아름답고 늘 그리워하며 동경하던 그 곳에 발을 내딛었을 때의 설렘은 그 때에도 다시 찾은 이 때에도 여전했었다. 숙소에서 만났던 언니가 소개해줬던 이 곳. 2011년도의 나는 2015년도의 나보다 더욱 가난했었다. 모은 돈도 없었고 손벌리고 왔던 첫 여행이었기 때문에 돈 쓰는 법을 몰랐고, 아끼고 아끼려 버둥버둥했었다. 그리고 시간이 너무 부족했었기 떄문에 나는 이 곳에서 분위기에만 살짝 발만 담궜다가 다시 걷기 위해 돌아다녔었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체코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친구에게 무조건 가야한다며, 너도 만족할 것이라 칭찬을 늘어놓았고 결국 친구는 내 손을 잡고 '카페 루브르'로 향했다.


가장 유명한 카푸치노도 시키고, 멍하지 앉아서 사진도 찍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시시콜콜하게 이런 저런 사랑 얘기도 하고 킬킬거리기도 하고, 메모지에 다시 메모도 적어보고. 4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인 이 곳에서 시계 태엽이 다시 뒤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하기엔 (다른 이들도 동일하거나 비슷하게 생각하겠지만) 식당이나 카페와 같이 개개인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개개인이 원하는 니즈;Needs 를 충족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맛이나 분위기나 혹은 서비스가 개개인이 원하는 다양한 점을 한껏 충족시킨다면 그 곳이야 말로 미슐랭 별 부럽지 않은 좋은 곳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그럼점에 있어 우리의 니즈를 한껏 충족시키고 우리가 체코에서 3일을 더 있도록 만든 또 다른 이유인 '카페 루브르'.


럼이 가득했던 핫초코렛이 여전히 내 입안을 맴돌고 있는 기분이다. 달달하지만 지독히도 강했던,

여전히 잊을 수 없는.


사각이는 연필과 루브르의 메모지는 여전히 오는 이들의 손길을 사로잡는다


강변 레스토랑 위에 설치되어 있던 철사 조형물들


하나 둘, 조명이 켜지기 시작할 떄


블타바 강변을 거닐다 까를교의 양 옆 골목들로 들어서면 사람 사는 냄새가 가득한 골목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하나 둘씩 강변의 조명이 켜지기 시작할 때, 셔터를 누르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었던 시간들.


다시고 오고 싶을 것 같다며 소리내어 말하고 웃던 시간들.


우리가 프라하에 머무는 동안 놀랄정도로 매일 매일 밝은 보름달이 떴었다. 꽉꽉 단단하게 찬 둥근달, 밝게 빛나며 매일 매일 우리의 그림자를 좇던 달, 구름 사이에 숨었다가 짠-하고 밝게 빛나던 달.


시계탑 위, 보름달이 떴을 때


달을 잡았다.


안녕, 까를교.


우리가 프라하에서 설레이고 더 즐거웠던 이유중의 하나라면 숙소를 빠뜨릴 수 없는데 묵었던 첫 날부터 꿈같은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티비속에서 보던 사람이 내 앞에서 밥을 먹고 있다니! 지금 내가 꿈을 꾸는 건가, 하루 종일 너무 고단해서 내가 지금 잘못 보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첫 날. 새로이 만난 사람들과 밤새 놀고 해가 중천에 떠서야 일어나 마주했더 시간이 너무 편안해서 웃겼던 둘쨋날. 매일 저녁을 함께 나눠 먹고 맥주를 마시고 다같이 우르르 몰려나가 즐겼던 셋쨋날. 아파서 하루종일 내 집처럼 뒹굴었던 넷쨋날. 골골거리면서 돌아다닌 뒤에 푹신한 쇼파에 앉아 밀린 일기를 쓰며 맥주를 마셨던 다섯쨋날. 아침부터 짐을 싸고 이 것, 저 것 사들고 이미 익숙해진 목소리들과 얼굴들을 뒤로한 채 떠났던 마지막 날.


날카로운 이미지와 다르게 수더분했던 칼상,


호스텔에서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편안했던 그 곳이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사진속의 스텝은 스페인 친구 칼상, 스텝으로 머물렀지만 우리가 떠난 날 해고되었던 칼상. 속상해하고 화가 났던 칼상. 지금도 여전히 스페인 친구들과 프라하에 머물고 있는 칼상.


보는 재미가 있는 프라하의 건물들


까를교를 보며 한숨 돌리던 순간


존 레논 벽 한켠을 채우고 있던 그래피티.


밤에 둘러쌓인 프라하 성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야경, 블타바 강과 프라하 성.

알록 달록, 노란색이었다, 초록색이었다, 분홍색이었다가.. 색은 각기 다르지만 빨간 지붕만은 판박이었던 건물들. 매 시 정각마다 사람들을 끌어모으던 시계탑. 여전히 살아있는 것 같은 존 레논의 벽까지.


프라하, 너는 총 천연색으로 모든 사람들을 끌어들이지만 너의 가장 큰 아름다움은 그 모든 것을 포용하기 위해 매일 매일 다른 색을 입으려 노력한다는 것. 예전에도 그랬듯 어제를 기억하기 위해 오늘을 견뎌내 내일을 마주하는 것. 그게 너의 큰 아름다움이 아닐까.


그 아름다움이 여전히 나에게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설렘을 남기는 것 같아 내 마음은 여전히 일렁여.



.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 간다면, 단연코 나는 포르투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