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걷다 떠오른 당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부던히도 미련하게 걸은 날이 있었다.
이유없는 노동으로 인해 발끝은 저릿해져 왔고 허벅지 근육은 팽팽하게 당겨 왔다.
그 날, 나는 나를 짓누르던 생각들을 털어 내고 남김 없이 지우고자 걸었다.
걷는 내내 나는 발 끝만 쳐다보며 걸었다.
그냥, 남김 없이 잊고 싶었다.
내가 이 길 위에 있다는 것도 잊고 싶었고
당신이 더이상 내 곁에 없다는 사실을 이 길 위에서 까맣게 태우고자 했다.
하지만 내 맘과 다르게 걸으면 걸을수록 당신과 손을 맞잡고 걸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축축하게 젖어가던 손바닥과 손바닥 사이의 느낌은 여전히 선명했고,
유달리 차가운 내 손의 온도를 끊임없이 데우기 위해 놓지 않던
맞잡았던 당신 손의 온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내 손은 여전히 그 온기를 그리워하고 있었지만
다시는 마주잡을 수 없음을 알기에 주머니 속으로 손을 숨겼다.
내 온기로도 충분할거라고 그렇게 나를 다독였지만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따가운 햇빛은 여전히 내 머리를 울리고 있었지만 내 마음의 공허까진 채우지 못했다.
둘이었어야만 했을까. 나홀로는 안되는 일이었을까.
언제까지 당신을 그리워해야하나하고 주머니 속 엄지손에 박힌 굳은 살만 애꿎게 긁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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