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이름

조울증에 대해 아시나요?

by 보라

경조증이 오면 인간관계가 넓어진다.

오래전에 연을 끊은 한 친구가 보고 싶었다.

가수 김동률의 replay를 들으며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길이었다. 감정이 막 요동치는 이 노래를 부르는 그녀가 괜히 보고 싶었다. 내가 요청하는 노래라면 모르는 노래여도 화면 속 악보를 보고 불러주던 그 시절의 친구와 우리가 그리웠다. 잘 지내나, 다시 만날 수 있나 궁금한 마음에 괜스레 친근하게 연락해봤다. 그냥 해당 곡을 들어보겠다는 말로 짧은 3분 남짓의 대화가 끝이 났다. 이젠 먼저 연락해도 바로 만나자는 말이 돌아오는 시기는 지난건가? "우리 좋았잖아" 이런 말들로 마구 질척이고 싶지만 그런다고 관계라는 게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정도로는 나이를 먹었다. 그리고 이건 경조증의 흔한 증상이다. 만약 견딜 수 없어서 연락해버린 것이 헤어진 연인이었다면? 비극적이게도 안 좋게 끝난 악연의 누군가였다면?


나에겐 조울증이라는 까다로운 친구가 하나 있다. 이 친구의 키워드를 하나로 말하자면 ‘아련함’이다. 내 안에서 내 인생의 ‘응답하라 2022’를 찍어놓고 2년간 잠자는 시간 빼고 매 순간 재생했다. 문제는 거기서 나를 철저히 비난했다는 것. 이건 우울해질 때의 증상이다. 사람이 지금에 머물러있지 않고 과거의 한 시점을 끊임없이 회상하며 좋았던 기억만 떠올린다. 그 당시와 지금의 차이점을 따지며 일을 이렇게 만든 나를 심하게 자책한다. 내가 왜 나의 2022년을 그리워하나 오래 생각해봤는데, 높은 확률로 당시에는 나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서였다. 내게 직접적인 언어로 “너는 참 귀한 사람이야.”, "사랑해."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게 참 달콤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지금 내 곁에 그들이 없는 게 전부 내 잘못인 것만 같아 자책해보기도, 그런 인연을 다시 만들어보고자 애쓰기도 했었다. 그로부터 2년 정도 지난 지금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길지 않은 인생이었지만 살아보니 사람에게 의지하는 건 한계가 있다. 여러 단체를 거쳐 가며 22년에 내 곁에 있던 그들을 대체할 몇 명을 만들어 봤다. 그들을 무조건적으로 믿고 내 속까지 다 보여줘봤는데, 어떻게 그렇게 행동할 수 있냐며 도망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인간관계가 중요한 사람인 나는 만신창이가 된 채로 지금 속해있는 단체에 들어갔고 정착하게 되었다. 비결은 이거다. 결국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이야기라는 게 있었다. 인간관계를 넓히고 내 밑바닥까지 보여주고 싶은 충동이 거세지는 조증은 잠시 막을 내렸다. 어쩌면 나는 ‘그럴 수 있다.’, ‘별 일 아니다’ 말해줄 이를 찾아 헤맨 지도 모른다. 가장 최근에 한 상담에서 “그냥 00 씨는 그런 선택의 기로에 섰고 아주 작은 선택이었을 뿐”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 사건이 별 거 아니라는 말을 들었을 때 너무나 후련해졌다. 오직 이런 익명의 글쓰기, 상담, 병원에서만 가능한 그런 나만의 이야기들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벗어나게 되었다.


정신과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조울증을 겪는 사람들 중 조증 삽화 때 원래 도덕적으로 기준이 높은 사람인데 양다리를 걸치는 선택을 많이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는 당시 애인의 친구와 딱 하루 바람을 피웠다. 차차 풀 이야기지만 이건 조증이었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호르몬의 농간 같은 느낌이다. 생리하기 전 PMS 기간에 예민함과 식욕이 조절의 영역이 아닌 것처럼 조증일 때도 마찬가지로 조절할 수 없는 예민을 느끼고 그건 통제가 가능한 영역이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변명하듯 말하는 내가 난 조금.. 혐오스럽다. 당신은 어떤가.


몇 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3년을 우울증인 줄 알고 살다가 병원을 옮긴 후, 처음 조울증 진단을 받았을 때 난 마냥 후련했다. 정신의학과에서도 조울증을 진단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 보통 우울증인 줄 알고 있다가 조울증을 진단받는 경우가 많다. 난 우울증 약으로는 해소되기 어려운 다른 증상들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게 기뻤다. 그 후 내가 아는 거의 모든 SNS에 조울증을 검색하며 이를 앓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했다.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조울증을 앓고 산다는 건 실수를 반복하는 나를 안아주고 달래가며 살아간다는 것 일 텐데, 다들 잘 살고 있는 건지 선례가 많지 않았다. 특히 선생님의 말씀처럼 나와 같은 실수를 하고 그 후폭풍을 이렇게 오래 겪어가는 사람은 보지 못해서 내가 직접 사례를 남겨주기로 했다.


난 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너무 궁금하다. 나는 내 행동이 믿기지가 않고 내가 마치 피해자고 배신당한 사람인 것 마냥 하루하루를 지옥같이 살아왔는데 말이다. 최근에는 내가 당시에 사귀던 친구가 꿈에 나왔다. 난 현실에서는 그 친구와 대화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서, 꿈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친구를 붙잡고 정말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했다.


“내가 지금 이게 꿈인 걸 알아. 그렇지만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네. 너무 미안해. 네가 나를 더 이상 미워하지 않아도 될 만큼 나는 충분히 괴로운 시간을 보냈어. 네가 싫어서가 아니라 난 조증 상태였어. 항상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어. 혹시 아직도 내가 많이 미워? 정말 미안해.”


이런 말을 하다가 대답을 듣기 전에 깬 적이 있다.

의사 선생님 말씀에 의하면 나는 그냥 아파서 나답지 않은 행동을 하게 된 것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온 세상이 나를 비난하는 듯한 기분을 2년 동안 느끼면서 살았 다니. 억울하면서도 내 성격이 참 피곤한 것 같기도 하고.


나는 내 상태의 정도를 내가 일상에서 얼마나 우는 지로 판단하곤 한다. 내가 정말 상태가 안 좋을 땐 전혀 울지 못했다. 다들 내가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하는 순간에도 나는 웃음으로 상황을 넘겼다. 조울증 진단을 받았을 때도 나는 힘없이 웃었다. 조울증 약을 1년 넘게 복용한 지금은 시도 때도 없이 울컥한다. 이게 호전되는 과정이었으면 좋겠다. 그동안 못 운 걸 몰아서 우는 거라고 생각하고 싶다. 울어야 되는 총량을 다 채워서 울고 나면 그 다음에는 내가 나로서 살아갈 수 있겠지.


나는 조울증(양극성 장애)을 앓고 있는 20대 여성으로서 내가 조증 삽화, 우울 삽화 때 나도 모르게 저지른 실수들과 이를 수습해가는 과정에 대해 솔직히 담고, 적당한 불행함을 견디며 살아가는 모습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조울증 환자들이 우울증만큼 세상에 많이 가시화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