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바람을 피우다

조증의 증상 중 하나인 비정상적인 애정 관계

by 보라

조울증이란 간단히 말해 우울증이 계속되다가 가끔 조증이 발현되는 것이다. 1형과 2형으로 나뉜다는 세부 지식은 일단 뒷전으로 하고.

자신이 조울증이라고 깨닫는 경로에 대해 알아보자.

1. 보통 먼저 우울증 진단을 받는 경우가 많다.

2. 그 후 의심 증상은 다음과 같다. 6시간 이내로 줄어든 수면 시간, 잦고 충동적인 소비, 높은 예민도 등을 보이면 병원에서는 경조증을 의심하곤 한다.

물론 이 두 줄만으로 진단 내릴 순 없고 모든 진단은 의사의 말을 들어야 하지만 말이다.

조증의 증상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내가 주목하고 싶은 건 비정상적인 애정 관계이다. 원래 도덕적인 기준이 높은 사람이 조증이 오는 시기에는 바람을 피우거나, 불륜 관계를 맺거나 비정상적인 성적 관계를 맺는 경우가 아주 흔하다고 한다. 충동성이 높아지는 시기라 그런 것으로 추측되는데, 나 역시 그런 관계를 수차례 맺어봤다. 학원 내의 친했던 친구들 사이에서 바람을 피우고 관계를 신중하게 맺지 않았던 일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즈음 있었던 일이다.




1년 넘게 관계를 이어나가던 애인이 있었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커다란 크기의 사랑을 줘서 애정이 고팠던 당시로서는 '마음에 들었던' 만남이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몰랐던 비밀 연애였다. 그를 만날 때의 나는 참 빛났다. 나도 나를 사랑하고 학원 내의 많은 이들이 나를 사랑했다. 그렇게 찬란했기 때문에 사건이 터져 내가 완전히 사라졌을 때 더 처참했다. 내겐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느냐, 우선 나를 좋아하던 A가 있었다. 나는 당시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곳도 글과 관련된 학원이었고, 게시판에 걸려있던 나의 글을 보고 처음 인사하며 네 글이 참 좋았다고 말했던 게 첫인상이었던 사람이었다. 그 후 친해지며 온갖 다정한 말들로 나를 좋아해 줬고 나도 그 끌림이 좋았다.

몇 달이 지나 어느 술집에서였나, 그는 내게 고백을 했다. 강렬한 도파민에 휩싸인 나는 그를 끌어안았고 나도 네가 좋은 것 같다고 했다. 그 강렬한 끌림은 당시 내가 하던 연애보다 더 '진짜' 사랑일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었다. 나는 어려서인지, 정신이 온전하지 않아서인지 '진짜' 사랑을 꿈꾸고 있었다. 어쩌면 그냥 철이 없었던 것일 수도 있겠다. 나는 다시 말하지만 비밀 연애 중이었고, 모두가 알았지만 아무도 몰랐다. 아는 사람은 다 알았지만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기에 모르려면 충분히 모를 수 있었다는 뜻이다. 우리는 사귀는 사이가 되었지만 내 죄책감으로 일주일을 넘어가지 못했다. 이게 첫 번째 실수였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은. 여기서 나는 어떠한 교훈도 얻지 못한 채 반년이 흐른다.


여전히 난 애인과 변함없는 관계를 맺었다. 그러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겨울즈음 내가 이별을 말했다.

"너를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아."

당시 나의 우울증을 알고 있던 애인은 헤어진 이후에도 힘이 들거나 외로우면 닿는 나의 연락을 잘 받아줬다. 누가 먼저 제안했는지도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헤어진 뒤에도 우리는 '친구' 관계로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전애인과 나와 동시에 친하던 B가 있었다. 당시 직장 생활을 하며 자취를 하던 나는 어떤 특정한 일을 계기로 B와 매일 전화를 하는 사이가 된다. 그 무렵 조울증이 심해졌던 나는 병환을 자각하지 못한 채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누워만 있을 정도로 우울하다가 그와 전화를 하는 오후 8시만 되면 과하게 들뜨는 양상을 띠게 된다. 그러던 와중 전애인과는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고, 어느 날 일은 이렇게 벌어진다.


헤어졌던 전애인과 만났던 어느 시점에 나는 B에게 고백한다. 네가 너무 좋다고, 그렇지만 너는 그런 마음이 아닌 걸 아니까 날 거절해 달라고. 그러나 고민하던 B는 나의 고백을 받아준다. 당연히 내가 아픈 것도, 사귀는 사람이 있을 거란 것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왔을 답변이다. 나는 그가 받아준 것에 당황하고 당시에는 또 도파민이 돌지만 다음날 이야기를 꺼낸다. 사실 나는 우리의 친구인 그와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너랑은 사귈 수 없을 것 같다고. 거짓말이다. 사귀는 와중에 고백을 했다는 사실은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결국은 몇 달 후 진실이 밝혀진다.


그리고 나는 그 후로 셀 수 없이 많은 시간을 쭉 자책하고 괴로워했다. 사실 우울증 증상엔 과거를 떠올리며 그 안에 갇혀있는 것도 포함되기 때문에, 나는 잠깐 현실에서 눈만 감았을 뿐인데 그 안에 갇혀서 발버둥 칠 수밖에 없었던 순간들도 수없이 많았다.

그 순간들을 한번 들여다보자.



작가의 이전글초록의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