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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 Oct 09. 2020

스물 다섯의 나에게

운동해, 영어공부해, 인간관계에 집착하지 마

스물다섯,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


스물다섯이 되었을 때 반오십을 살았다며,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라는 싯구를 끄적였다. 바깥으로 파란 하늘이 보이는, 5층의 대학원실 내 자리에서였던가. 

그때 나는 내가 정말 늙은 줄 알았다. 인생에서 알아야 할 건 이미 다 알았다고, 내가 인생에서 더 이상 새로이 느낄 감정은 없다고 믿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것보다 5층까지 계단을 뛰어올라가는 일이 더 좋았는데도!

(타지 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냥 엘리베이터는 교수님 전용이라고 생각했다.)

늦게까지 찬 소주를 들이부어도 아침이 되면 눈이 반짝 떠지는데도!

(숙취가 뭐예요? 먹는 건가요?)

삼십분 후에 나만큼이나 어린 남자친구를 만나 만두를 먹고 영화를 보러갈 거였는데도!

(남자친구는 나보다 네 살 많았다. 어른인 척 했지만 그도 고작 이십대였다.)

참 귀엽고도 오만했던 시절이었다.  


마흔이 불혹이라고? 누가 그래? 


'이만하면 됐'고, '알만큼 안다'고 믿었던 스물다섯을 넘어, 

질풍노도의 삼십대를 건너 어느새 마흔을 훌쩍 지나고 나니, 

'한참 부족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기다리고 있었다. 

불혹이라던 마흔을 지나면, 정말로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적어도 나는, 아니었다.  

(그런 사십대를 보내는 분이 계시다면 감축드린다. 부럽습니다.) 

몰랐었다, 내가 늘 미혹되고 흔들리는, 약하디약한 풀잎같은 존재라는 걸.  

스물다섯의 나는 갑옷을 입고 세상에 나가 싸우는 전사가 될 줄 알았는데! 

그 전쟁의 끝은 승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내게는 갑옷도 없었고 나는 전사도 못 되었으며, 인생의 크고 작은 고비마다 나는 무릎이 꺾여 신음했다. 


스물 다섯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


오늘 문득, 스물 다섯 살의 나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해줄까 생각했다. 


운동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말은 '운동하라'는 것이다. 몇년전부터 체력이 예전같지 않음을 절감한다. 눈이 침침하고 오래 집중하기 어렵고, 조금 무리했다 싶으면 드러눕는다. 독서량이 많이 줄었다. 요즘 MBA공부를 일과 병행중인데, 지난 봄 중간고사 기간에 레포트 몇개 쳐내고 나서 허리 통증으로 일주일 넘게 고생했다. 유난스럽다 싶어 주변에 말도 못했다. 뭐 얼마나 대단한 레포트를 써 냈다고... 

읽고 쓰는 것은 내 인생에서 제일 좋아하는 일인데, 그 일에 '근력'이 필수적이라니. 읽고 쓰는 일 뿐만이 아니다. 인생사 모든 일에는 '근력'이 필요하다. 인생사 무슨 일이라도, 꾸준히 해내기 위해서는, 잘 하기 위해서는, 아, 정말이지 절박하게 근육이 필요하다. 포기하지만 않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데, 근육이 부족한 가녀린 내 몸은 자꾸 포기하고 싶어지잖아. 그래서 스물다섯의 나야, 너는 마흔을 넘기면서 매사 에너지 뿜뿜하는 근육튼튼한 여성이 되고 싶어질 거야. 그러니 지금부터 근육을 만들어서 체력이 네가 하고자 하는 일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하렴. 만약 네가 근력을 키우기 위한 노력을 지금부터 시작하지 않는다면, 너는 삼십대부터 골골거리며 건강검진때마다 '마른비만' 소리를 듣게 될 거야. 그리고 삼십대 중반의 어느날 지하철 계단을 헉헉거리고 오르는 자신을 발견하고서는 이건 아니다 싶어 필라테스를 시작하게 돼. 필라테스는 구원처럼 왔지만, 스물다섯의 나야, 그걸로는 늘 부족하단다. 왜냐면, 사회생활을 하면 일주일에 한번 필라테스를 하는 시간을 내기도 쉽지 않고, 너에게는 바탕이 되어줄 근육은 이미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지. 그러니 언제라도 네가 기댈 수 있는, 그래서 조금만 움직여주면 다시 불끈불끈 살아날 너의 힘의 기본을, 가장 활기찬 시절에 만들어 놓기를. 


영어공부해!

두번째로는 '영어공부를 하라'고 꼭! 꼭!  말해주고 싶다. 

나는 리스닝과 스피킹은 (매우) 약하고 리딩과 라이팅은 (상대적으로) 나은 전형적인 대한민국 시험용 영어교육 세대다. 발음기호랑 문장의 5형식, 문법을 공식처럼 외우던... 시험성적은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살아있는 언어로서 영어는 완전 꽝이었다. 

취직을 하고 나니 너무 바빴고, 영어공부는 꿈도 꾸지 못하는 시간들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그리고 마음 속깊은 곳에 '영어컴플렉스' (영어울렁증?)는 계속 자라나고 있었다. 휴가차 떠난 런던여행에서, 스타벅스에 들어가 터질 듯한 심장을 부여잡고 '아이스 카페 라떼'를 주문한 뒤 '뜨거운 카페 라떼'를 받아서, 레스터 스퀘어 벤치에 앉아 마셨던 것은 안비밀. 아이스라고 말했는데, 아이스라고 분명히 말했는데... 

그래서, 스물다섯의 나야, 너는 어느 순간 깨닫게 돼. 영어를 잘 못해도 사는 데 큰 지장이 있는 건 아니지만, 영어를 잘 하면 세상이 더 넓어지고 더 많은 기회가 생긴다는 걸. 마흔이 된 나도 스물다섯의 내가 가진 어떤 기질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자꾸 더 큰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진다는 걸. 안주하는 타입이 못되는 건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잖니. 나이가 들면 안정을 추구하게 되는 사람도 많다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스물다섯의 나야, 네가 가진 호기심과 도전정신은 마흔이 되어도 수그러들지 않는단다. 

그래서 너는 영어학원을 다니고, 인터넷 강의를 듣고, 영어공부법을 유튜브로 뒤져보면서, 마흔이 넘어서야 비로소 영어공부를 네 루틴에 포함시키게 돼. 물론 의욕에 비해 실력은 한참 부족하고, 왜 더 일찍 본격적으로 영어공부를 하지 않았을까 매일매일이 아쉬워. 더 반짝거리던 시절에 영어를 더 열심히 해놓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면 마흔에 만날 세상이 훨씬 더 넓고 다채롭지 않았을까. 

스물다섯의 나야, 네가 굳이 시간을 쪼개 영어공부를 하지 않아도 너는 마흔이 넘어서 결국 영어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되긴 해. 그때라도 시작할 수 있어서 다행이긴 하지. 인생에서 너무 늦은 일이란 없잖아. 그래도 미리 영어에 익숙해져 있다면, 마흔쯤에 새로운 외국어 하나를 더 배울 수도 있지 않을까? 


인간관계에 집착하지 마!

마지막으로, 스물 다섯의 나에게, '사람관계에 너무 애쓰지 마라'라고 전해주고 싶다. 

인간관계, 그건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닐 때가 많고, 내가 인위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처럼,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중요성을 믿게 될수록, 역설적으로 인연은 물 흐르듯 순리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어찌해보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스물다섯의 나야, 너는 그때 네 주변사람들과의 관계가 너무 중요했잖아. 어떤 이들과는 친구가 되어야 했고, 어떤 이들과는 절교를 해야 했고, 어떤 남자와는 사귀어야 했고, 어떤 남자와는 헤어져야만 했지. 그때 너는 네 의지대로 세상이 흘러간다고, 그리고 흘러가야 한다고 믿었으니까 사람과의 사이마저도 '~해야 한다'는 결정이 매번 필요했었어. (물론 모든 사이는 그 결정대로 흘러가지 않았지만. 그게 정말 큰 스트레스였지.) 그런데 그때 네가 집착했던 많은 관계들이 불과 일이년만 지나도 기억도 안 나게 된다는 걸 너는 몰랐잖아.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이 네 곁을 지켜주기도 하고, 네가 그토록 의리를 지키려 노력했던 관계들이 네 등을 찌르는 칼이 되기도 한다는 걸, 너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돼. 그리고 뒤늦은 후회와 배신감을 지내는 일은, 언제라도, 누구에게라도 결코 녹록지 않지. 

인생에서 고통을 피할 수는 없어. 그건 불가능할 뿐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아. 그래도 스물다섯의 내가, 조금이라도 덜 아팠으면 좋겠다. 유유상종이라고, 결국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게 되어 있으니까. 너무 애쓰지 않아도,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면, 내가 더 나아지는 사람이라면, 좋은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어. 스물다섯의 나야, 많은 좋은 사람들이 네 인생에 나타날 거야. 나쁜 관계에 집착하거나, 인위적으로 사람 사이를 통제하려 애쓰면 오히려 그 기회를 줄이게 돼. 

나를 깎아내리는, 결국은 아무것도 아닐, 우정과 사랑, 혹은 그 어떤 이름의 감정에 시간과 에너지를 덜 소모하기를. 그 시간에 책을 읽고 영어공부를 하고 운동을 하기를. 그렇게 혼자 충분해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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