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PD의 드라마 글쓰기 (2)
드라마 vs. 영화?
드라마 쓰기와 영화 쓰기는 뭐가 다를까?
이 질문은 소재의 선택, 설정, 플롯 등 이야기를 구축하는 모든 과정과 전략을 관통하는 매우 중요한 질문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간과되고 심지어 무시되는 경향이 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차이를 잘 알고 있는 작가를 거의 본적이 없다. 그 차이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작가는 더더욱 없다.
그 덕분에 '어차피 다 비슷비슷한 거 아니야?'하며 쉽게 드라마쓰기에 도전할 수 있을 수도 있겠지만
(여튼 쉽게 용기내어 도전할 수 있게 한다는 건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그 때문에 '아니, 뭐가 문제라는 거지?'하며 (지난 글에서 그토록 강조했던) '끝'을 찍지 못하고 시행착오만 반복하다가 지쳐나가떨어지기도 쉽다.
(드라마 고유의 문법을 모르면 자신이 쓴 대본에 주어지는 피드백과 평가를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게 아니더라도 피드백과 평가를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정말정말정말 힘든데!)
어떤 작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요, 머릿속에서 길게 쓸 수 있을 것 같으면 드라마로 쓰구요,
이야깃거리가 적게 생각나면 영화 시나리오로 써요."
그럴까? 이야깃거리의 많고 적음, 혹은 이야기의 길이가 영화와 드라마의 핵심적인 차이일까? 두시간짜리 영화를 열여섯시간으로 늘리면 16부작 미니시리즈가 되는 걸까?
물론 사람마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다르니 그 작가는 실제로 그런 식으로 작업을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마도 짐작컨대, 길고 짧음/많고 적음이라는 표현 뒤에는 영화와 드라마를 구분하는 그 작가만의 느낌-우리가 흔히 '삘'이라 부르는-이 놓여있을 것이다.
어떤 영화감독은 나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영화는 사진에서 비롯했고, TV드라마는 라디오로부터 발전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가 화면의 미장셴 등 비주얼적 요소가 중요하고, 드라마는 소리로 듣는 대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TV화면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게 커졌고, 영화도 TV로 보는 경우가 너무 많으며(넷플릭스를 보라), 언젠가부터 영화와 드라마는 같은 카메라를 사용하여 촬영하기 시작했다. 영화 특유의 질감을 만들던 필름은 사라졌고, 영화와 드라마 사이에 더 이상 기술적 경계는 없다.
다음 편이 중요하다
드라마가 영화와 구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연속물'이라는 점이다. (단막드라마는 예외로 하자. 단막드라마는 그런 의미에서 영화와 가장 유사한 드라마의 형태이다.) 이 말인즉슨, 다음회가 보고 싶어지게 만드는 것이 드라마 작법의 핵심적인 기술이라는 뜻이다. 흔히 말하는 웹소설의 '절단신공'과 비슷하다. 1회는 2회를 보고 싶게 만들어야 하고 2회는 3회를 보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전편은 다음편의 거대한 예고편이라고도 볼 수 있다. 조금 과장하면, 1회가 너무 완벽하게 완결성을 갖춰서 보는 이가 카타르시스 쫙 느끼면서 다음회 내용에 괘념치 않으며 후련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잠들 수 있게 한다면, 그 1회의 이야기가 아무리 훌륭하다고 한들 그것은 망한 드라마다. 잊지 말자. 1회는 2회를 보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 2회는 3회를 보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 3회는 4회를, 4회는 5회를... 그렇지 못하면 실패한 드라마다.
그렇다면 무엇이 다음회를 보게 만드는가?
그건 바로 '궁금증'이다.
적의 함정에 빠진 주인공은 풀려날 수 있을까? 여주가 남주를 부르고 여주가 돌아보았다. 그들은 무슨 말/행동을 할까? 따귀를 때릴까? 키스를 할까? 주인공의 뒤에서 칼을 든 괴한이 다가오고 있다. 주인공은 알아차릴 수 있을까? 남주가 짐을 싸고 여주는 남주의 집으로 오고 있다. 둘은 만날 수 있을까? .....
어떤 식으로든 다음회를 보게 만들어야 한다는 이유로 엔딩에서 '떡밥'을 투척한다. 다음회에서 그 떡밥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 밝혀져 사람들에게 배신감을 느끼게 하더라도 일단은 던지고 본다. 물론 잘하는 짓이라고는 할 수 없다. 다만 그만큼 절박하다는 것이다. 당연히 전회에 던져진 궁금증이 너무나 아귀가 맞게 딱 해소가 되면서 새로운 의문과 긴장이 생겨나면서 엔딩이 나고 그 다음회가 또 궁금해지고 하는 게 제일 좋겠지만.
어쨌든 다음회를 보게 해야 한다는 지상명령 때문에 '엔딩은 일단 쎄게 때려. 그 다음에 해결하자구.'하고 말하게 되는 일도 부지기수고, 극본공모 심사평이나 극본 모니터링 보고서에 '엔딩이 약함'이라는 문구도 흔히 들어간다.
이때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건물이 폭파되고 칼을 목에 겨누고 총이 발사되고 괴물에게 쫒기고 하는 식의 엔딩만이 '센' 엔딩이 아니라는 것이다. '세다, 약하다'를 판단하는 기준은 '감정'이다. 인물이 그저 지긋이 어딘가를 바라보기만 해도 그의 마음속에서 폭풍같은 감정이 일고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보는 이들이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충분히 강력한 엔딩이 된다. 그 폭풍같은 감정이 향할 다음 회가 궁금해질 테니까.
미드 <로스트>에서 매 엔딩마다 던져지는 허걱하는 '떡밥'에 감탄하며 정주행했던 시절이 있었다. 뒤로 갈수록 그 엄청난 떡밥을 회수하지 못해 lost라는 제목대로 스토리가 길을 잃었다는 아쉬운 평가가 나오기도 했지만 J.J.에이브럼스는 명실상부한 '떡밥의 제왕'이었다. 훌륭한 떡밥을 제때 던지는 것- 그것은 이야기의 본질과 리듬에 대한 탁월한 감각이 없으면 나올 수 없는 능력이며, 여전히 내가 갈구하고 연마하는 능력이다.
첨언하자면, 보통 한국의 미니시리즈가 주2회 방송, 16부작의 형식을 취하기 때문에, 홀수회의 엔딩보다 짝수회의 엔딩이 더 강력할 필요가 있다. 1회의 다음회인 2회는 바로 다음날 방송된다. 그러나 3회는 6일 뒤에 방송된다. 1회의 엔딩은 다음날 방송하는 2회의 시작까지 사람들을 유인하는 정도면 되지만, 2회의 엔딩은 한주 뒤에 사람들이 다시 그 드라마를 보기 위해 모일 정도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를 기다릴 정도의 유혹과 한주를 기다릴 정도의 유혹의 크기는 당연히 다르지 않겠는가. 그래서 보통 두개 회차를 하나의 세트처럼 보고 홀수회의 사건과 감정이 짝수회에 더욱 키워지고 강화되어 터지는 방식으로 플롯을 구성하는 경우가 많다.
이중플롯이 필요하다
드라마는 연속물이라는 특성 때문에 한 회차가 독립되고 완결된 이야기 구조를 가지면서 동시에 전 회차가 거대한 하나의 이야기로서 완결되어야 한다. 쉽게 말하면 각 회별로 시작-중간-끝을 가지면서 전체 또한 시작과 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3회는 그 자체로 완결된 서사(시작-중간-끝)가 있되 전체 서사 속에 '시작'부분에 해당된다. 각회는 그 회만 봐도 충분히 이해될 수 있어야 하며, 동시에 전체 플롯의 한 조각을 담담해야 한다. 이러한 이중 플롯은 드라마만의 특징인데, 각 회차별 완결된 플롯과 전체 회차를 관통하는 거대 플롯의 부분- 이 두가지 중 한가지라도 빠져서는 안된다. 당연히 치밀한 계산이 필요하다. 치밀한 계산에는 이야기를 회차별로 분배하는 것, 각 회의 중심사건을 정하는 것, 각 회의 엔딩을 정하는 것, 전체플롯을 밀고 가는 거대한 사건을 구축하는 것 등이 모두 포함된다.
16부작을 예로 들어 살펴보면, 1~4회는 시작(1막), 5~12회는 중간(2막), 13~16회는 끝(3막)이다. 일반적으로 시작:중간:끝은 1:2:1의 비율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이 중 8회는 16부작 전체의 가운데로서 '이야기의 엔진을 하나 더 추가'하여 극 후반부의 동력을 올리는 미드포인트에 해당된다. 이제 당연히 여러분은 4회 엔딩이 거대플롯의 1막 끝에, 8회 엔딩이 미드포인트에, 12회 엔딩이 2막의 끝에 해당되며, 13~16회 안에 클라이맥스가 배치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4회, 8회, 12회 엔딩은 그 이야기의 힘을 판단하기 위해서 특히 중요한 기준이다. 처음엔 재밌었는데 갈수록 힘이 빠져 용두사미가 되는 드라마들은 이 전체 플롯에 대한 계산이 없었거나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거대 플롯을 구성하면서 동시에 각 회별로 다시 시작-중간-끝을 가진 플롯을 거미줄처럼 엮어 짜내야 하는데, 위에서 말했듯이 다음회를 보게 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각 회차의 끝은 완벽한 종결이 아니라 다시 펼치기 위한 일단수습의 느낌으로 보아야 한다.
물론 모든 드라마의 개성과 리듬이 다르므로 이를 영원불변의 공식처럼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상업적으로 성공한 드라마들은 대체로 이런 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성공한 영화도 그러하다. 플롯포인트가 1:2:1의 3막구조 비율에 맞춰 거의 정확하게 들어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두가 알고 있지만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그러나 너무나도 중요한 두가지를 덧붙이려한다.
하나는, 스토리에 대한 기본적 지식을 갖추는 것은 항상, 여전히, 중요하다. 여러분이 스티븐 킹처럼 타고난 천재 이야기꾼이 아니라면. 그리고 우리는 대부분 천재가 아니기 때문에. 3장 구조가 뭔지, 클라이맥스가 뭔지, 주인공이 갖추어야 하는 자질이 무엇인지, 이야기적 사건이 뭔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예전 어떤 워크숍 자리에서 작법서 한권 안 읽은 작가 지망생들이 너무 많아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드라마를 남들보다 좋아하고 많이 보았다는 사실은 누군가를 드라마 작가로 만드는 데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한다. 작가를 작가로 만들어주는 것은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 그 이외의 방법은 없다. 자신이 쓰고자 하는 글이 어떤 것인지 아는 일은 어쩌면, 드라마쓰기의 맨 앞에 놓여있는 것이다.
두번째는, 이야기를 밀고 가는 것은 인물의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라는 것이다. 시놉시스에서 회별 플롯을 쓸 때 인물이 '생각했다' '느꼈다' '알게 되었다' '놀랐다' '깨달았다' 등의 표현이 많이 나오는데, 이는 이야기에 아무것도 더해주지 않는다.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생각해보라. 주인공이 놀라운 어떤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드라마에 어떻게 보여질 수 있을까? 결국 우리는 주인공의 행동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우리의 주인공은 벌떡 일어나고 어디론가 달려가고 엉엉 울고 술을 퍼마시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책상 앞에 앉아 검색을 하고 집안의 기물을 깨부수고 소리를 지르고 밤거리를 헤맬 것이다. 드라마대본은 영상으로 보여져야 한다. 그것이 그 글의 목적이자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