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유 Dec 15. 2020

살다보니 알게 된 것들 (1)

'돈'을 공부하고 '돈'을 모읍시다

마흔이 넘은지도 또 몇년이 흘렀다. 

얼마전 '만으로는 삼십대'라며 우길 수 있었던 시절의 사진을 우연히 봤는데, 이런 말 좀 낯뜨겁지만, 사진 속 내가 정말 앳되다는 생각을 했다. 정작 그때의 나는, 앳된 게 다 뭔가, "저 인생 살만큼 살았구요, 알만큼 알거든요?"라는 메시지를 심드렁하면서 찌뿌린 채 한껏 발산하고 있었는데. 몇 년 뒤의 내가 '어머, 저렇게 어리고 팔팔할 때가 얼마나 좋았는지!'라고 할 줄 그때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그러면 좀 더 '지금 이순간'을 즐길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없게, 더 힘껏 지낼 수 있었을 텐데. 


항상 지나고 나면 알게 된다. 물론 지나왔다고 해서 다 아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삶이라는 놈에 대해 '아주 쪼끔' 더 잘 알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L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글은 나이대로 쓴다. 한참 글을 잘쓰고 싶었던 학생들이 재잘거렸다.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나이 어리고 글 잘 쓰는 사람도 있잖아요. L선생님의 대답은 칼처럼 잘려나왔다. 없어. 재잘거리던 학생들이 순간 조용해졌다. L선생님이 나직하게 말을 이었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다 글을 잘 쓰는 건 아니야. 다만, 나이를 먹으면 글을 잘 쓸 가능성이 조금 높아지지. 그때 나는 '만으로는 삼십대'라고 우길 수 있는 나이였고 '살만큼 살았고 알만큼 안다'고 믿었으므로, 속으로 조금 으쓱했던 기억이 난다. 훗, 나는 글을 잘 쓸 가능성이 높다구! 

물론, 나는 틀렸다. 


시간이 흐르면서 매번 놀라곤 하는 사실들이 있다. 하나는, 지금 이전의 나, 그때의 나는 늘 생각보다 젊었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모르는 것, 배워야 할 것들이 여전히, 너무나 많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세상에, 지금보다 젊은 나는 그것도 몰랐단 말인가? 

젊은 내가 몰랐던 것, 지금의 나도 여전히 잘 모르며 영원히 배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주제 중, 요즘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은 '돈'이다.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돈에 대한 가치관을 제대로 세우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돈을 모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나는 비로소 느낀다. 

그리고 나니, 내가 돈을 벌 수 있을 나이는 성큼 사라져있다. 


돈이 중요하다는 데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동의하겠지만, 왜 중요한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차이가 큰 것 같다. 나의 경우는 '도전' 때문이었다. 평생 한가지 일만 하고 살 게 아니라면, 평생 한 회사만 다닐 생각이 아니라면(또한 모두들 아시다시피 이런 것들은 내 맘대로 되는 일도 아니다) 계속해서 나 자신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나 자신이 업그레이드가 되어야 새로운 기회도 보이고 새로운 시작도 하지 않겠는가? 아웃풋을 계속 생산하기 위해서는 인풋이 필요하기 마련이고 내게는 그 인풋이 공부였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일을 한다는 것은 계속해서 내가 가진 무언가를 소진시키기를 요구했고, 소진된 것들이 있었던 그 자리를 메꾸지 못하면, 내가 그토록 경멸하는, '능력도 없이 자리만 꿰차고 앉아 아랫세대의 등골을 빼먹는 꼰대'가 어느 순간 되어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느날 문득 결심을 한다. 

몇년 뒤 새로운 공부(뭐라 불러야 할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서 일단은 '공부'라 지칭한다)에 도전하기로. 


그리고 나니 내가 현재 가진 돈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공부를 하는데는 돈이 필요하고, 그 공부를 제대로 끝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그 공부를 끝낸다해도 돈을 어떻게 얼마나 벌지 전혀 알 수 없다는 리스크가 존재하고, 그리고, 나는 3년의 시간을 내야 했다. 3년간 휴직을 하고, 학비와 그 기간의 생활비를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기회비용이 엄청났다. 40-50대에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은 그러하다. 생애사이클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40-50대에 가장 많은 돈을 벌기 때문에, 40-50대에 그걸 포기하고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건 가장 많은 기회비용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젊을수록 기회비용이 적다. 실패도 덜 두렵다. 젊은 나는 더 많은 도전을 했어도 괜찮았을 것이다.)


얼마나 모아야 하는지, 얼마를 써야 하는지를 계산하고 계산하고 또 계산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돈이 아쉬웠다. 조금만 더 빨리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면 이 도전이 조금은 더 쉬웠을 것이다. 어쩌면 더 많은 도전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나는 내가 남의 시선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독립적이고 쿨한 인간이라고 믿어왔다. 그리고 계산하고 계산하고 또 계산해본 나의 돈은, 내가 남의 눈을 아주 많이 신경을 쓰는 인간임을 보여주었다. 생각보다 많은 비용이 실질적 필요보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데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생각하는 그런 인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내게 필요한 무언가를 하기 위해, 내가 필요로 하는 그런 인간이 되어야 했다. 


가장 아쉬운 것은 '스스로 일하는 돈' '내가 잘 때도 돈을 벌어주는 돈'을 만들어놓지 못한 것이다. 월급이외의 현금흐름을 조금이라도 만들어놓았으면 이렇게 마음이 불편하진 않았을 텐데! 그동안 나는 예,적금 이외의 재테크를 해본 적이 없고, 그걸 자랑으로 알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한심하다. 금융문맹이 어떻게 자랑스러운 일이 된단 말인가? 올해 적은 돈이지만 처음으로 주식을 사봤다. 개인재무상태표와 개인현금흐름표도 만들어보려고 한다. 아직 초보수준이고 배워나가고 있지만 어쨌든 시작했으니 절반은 한 거라고 믿고 싶다. 

그래서 성장하고 싶은 모든 여러분께, 

재무계획을 세우세요. 

빌 게이츠였던가, 그도 비슷한 충고를 했다. 잘 살고 싶나요? 재무계획을 세우세요. 


신기한 것은, 돈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곧 내 인생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더라는 사실이다. 그것도 아주 장기적인 안목으로. 나는 나이먹고 뭐하고 살지, 내인생의 시즌2를 어떻게 만들까 고민하다가 돈 공부를 시작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모든 일에는 trade-off가 있다. 뭔가를 얻으려면 뭔가를 버려야 한다. 나는 원하는 삶을 살고 싶어서 새로운 도전을 계획했고, 그 도전의 기회비용을 계산하다보니 '돈'이 아주 많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 얻고 싶으면 대가를 치뤄야 하고 그 대가에는 많은 경우 돈이 포함된다. 

현재 나는 재무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데 분주하다. 조금 더 일찍 시작했으면 좋았겠지만(아, 정말 너무나 아쉽다!) 지금이라도 시작한 게 한편으로 다행이다. 쓸데없는 비용을 찾아내 지우고, 당분간은 소비와 지출을 잘 통제해보려한다. 사실 절약은 모든 재테크의 기본이다. 어느 책에선가 이런 말이 있었다. '우리가 버는 돈은 세후고 쓰는 돈은 세후다'라고. 1000원 더 버는 것보다 1000원을 아끼는 게 이득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내가 잘 때도 돈을 버는 작은 시스템을 만들어보려고 하는 중이다. 하다보면 늘지 않을까. 뭐든 공짜는 없으니까. 


그리고 보니, 나는 오래 살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아주 오래 살아야 하는 세대인 것이다. 죽음의 시기를 내가 선택할 수 없으니 어쩌면 나는 꽤 오래-애초의 내 기대보다 과하게 살게 될 수도 있겠다. 

그러면, 그때까지 나는 뭐하고 살아? 뭐 먹고 살아? 

- 결국 다시 이 질문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