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PD의 드라마 글쓰기 (1)
요새 보면 드라마 작가를 지망하시는 분들이 도전할 만한 공모전이 참 많다. 일단은 좋은 일이다. 잘 쓴 이야기가 컴퓨터 하드 안에 잠겨서 잊힐 일은 없다고 봐도 될 테니까. 쓰고 싶은 사람은 그냥 쓰면 된다. 이야기가 담긴 파일을 보낼 곳은 넘치도록 많다. 좋은 이야기는 반드시 어디에선가 발탁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쓰고자 하는 많은 이들에게, 그리고 좋은 드라마를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행운의 시대다. (부디 모두에게 행운이 있기를!)
내가 써도 저것보단 잘 쓰겠군!
그러나 한편으로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 글쓰기'를 쉽게 여기는 듯해서 아쉽다. 이것은 '드라마'와 '글쓰기' 양 측면에 모두 해당되는 것 같다.
'드라마'는 어디에서나 쉽게 접할 수 있다. 살면서 드라마 한 편 안 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누구나 자신의 인생드라마 한편쯤은 쉽게 거론할 수 있다. (드라마와 담을 쌓고 사는 내 친구도 인생드라마를 물으니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하얀 거탑>을 자신있게 꼽았다.) 모두가 자신이 드라마를 '꽤 잘 알고 있다'라고 생각하고 그렇기 때문에 도전하기 위한 심리적 장벽이 낮다. '내가 본 드라마가 몇 갠데!'로 자신감 뿜뿜이 되고, 만듦새가 허술하거나 전개가 마음에 안 드는 드라마를 보면서 '내가 써도 저보다는 잘 쓰겠네!'라고 주먹을 불끈 쥘 수 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글쓰기는 대단한 장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펜과 노트만 있으면, 컴퓨터만 있으면, 스마트폰만 있으면 글을 쓰고 고치고 저장하고 다시 불러올 수 있다. (컴퓨터가 내 소유가 아닐지라도 거기에서 내가 쓴 글은 완벽히 내 것이다.) 쓰고 싶은 내용만 있으면, 쓰겠다는 결심만 있으면, 우리는 언제라도 글을 쓸 수 있다.
드라마 글쓰기는 진입장벽이 낮다.
소프트웨어적 측면과 하드웨어적 측면 양자 모두에서 그러하다.
드라마는 정말로, 누구나 쓸 수 있다
진입장벽이 낮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좋은 일이다. 드라마는 정말로, 누구나 쓸 수 있다. 성별, 나이, 직업, 사는 곳... 어떤 인구통계학적 요소도 당신이 드라마를 쓰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심지어, 드라마는 정말로, 누구나 '잘' 쓸 수 있다. 성별, 나이, 직업, 사는 곳... 어떤 인구통계학적 요소도, 드라마를 쓰는 당신을 유리하게도, 불리하게도 만들지 못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드라마를 쓰는 당신을 조금이나마 더 유리하게 만드는가?
당신은 어떤 무기를 들고 '드라마 글쓰기'라는 운동장에서 선수로 뛸 것인가?
드라마PD로 꽤 오랜시간 살아오다 보니 남이 쓴 드라마대본을 읽고 심사하고 평가하고 모니터링할 일이 자주 있다. 그럴 때마다 비슷한 감상을 느낀다. '드라마를 쓰고 싶은 사람이 정말 많구나'라는 것, 그러나 '드라마를 잘 쓰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라는 것.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정보'와 '공부'와 '연습'이 놀랍도록 부족한 상태로 드라마를 쓰기 시작하는 것 같다. 이는 앞서 말한 낮은 진입장벽과도 관계가 있고, 그에 더하여 자기가 쓴 글이 어느 수준인지를 객관화하기가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쓴 이야기가 (다른 대본들에 비해서) 재미있는지, 잘 짜여진 건지를 내가 판단한다는 것은 보통수준의 냉철함을 갖지 않고서는 쉽지 않다. 누구나 자기가 쓴 이야기는 재밌다.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누가 내 글을 읽고서 지루하다거나 재미없다고 말하면, 마음 깊은 곳이 슥- 베어지고 피가 점점이 배어나오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너무나 그 의견을 무시 또는 폄하하고 싶어진다.
'너만 재미없는 거야, 어떻게 이게 재미없을 수가 있어?' 이렇게.
한예종에서 시나리오 전문사 과정에 재학 중이었을 때 교수님은 학생들의 과제를 보시고 작은 한숨과 함께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이게 재밌나?"
쳇. 자존심에 슥- 상처가 난다. 아닌 척 한다. 교수님이 이 이야기의 재미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믿고 싶다. 내가 어젯밤 얼마나 혼자 재밌어했는데! 나는 반문한다. 과장된 여유로움도 함께.
"재밌지 않나요?"
교수님의 말투에서 '너같은 애들 많이 봤어'와 '너는 이게 정~~~말 재밌니?'가 같이 들린다.(환청인가)
"뭐가 재밌나?"
네? 뭐가... 재밌냐고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인정하기 싫었을 뿐. 그저 공개적인 자리에서 '내 글의 수준'이 공식적으로 밝혀져버린 게 창피했을 뿐. 돌이켜보면, 그 당시 내가 쓴 이야기는 '정보'도, '공부'도, '연습'도 부족했다. 그 부족함을 인정하면서 나아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내가 지금 '그때보다는' 나은 이야기를 쓸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더 많은 정보와 공부와 연습이 더해져 '지금보다는' 더 나은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많이 읽고, 많이 써라
단,
'전략적으로' 그렇게 하라
이쯤되면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 묻고 싶으실 것이다. 서설이 길었다.
우선 드라마 글쓰기를 위해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두 가지 원칙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 글쓰기에는 정답도, 공식도 없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 것임을 밝혀둔다.
첫번째 원칙은 많이 읽으라는 것이다.
뻔한 말이어서 죄송하다. 그렇지만, 많이 읽지 않고서 잘 쓸 수는 없다. 이것은 진리다. 많이 읽지 않으면서 잘 쓰기를 바라는 것은, 뭐랄까, 한편으로는 게으르고 다른 한편으로는 뻔뻔한 태도다.
다만 드라마글쓰기를 전제한다면, 많이 읽기-를 두가지 측면에서 실천해야 한다. 하나는 뭐든 가리지 말고 많이 읽으라는 것이다. 인풋의 양이 많아질수록 좋은 아웃풋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자명하다. 닥치는 대로 많이 읽어내는 것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무조건 도움이 된다. 드라마의 내용은 특정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드라마란 '삶에 대한 어떤 모방'이며, 모든 이야기는 결국 인간본성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읽는 모든 것은 어떤 식으로든 '인간'과 '인생'에 대한 것일 수밖에 없다. 인간의 삶이라는 거대한 영역 속 어떤 지점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 스토리를 만든다. 작가의 생각의 깊이가 그가 창조하는 세계의 크기이다.
다른 하나는, 자신이 읽는 것 중 반드시 드라마대본과 시나리오를 일정비율 이상 포함시키라는 것이다. 이때 훌륭한 작품만 엄선해서 볼 필요는 없다. 다양한 수준의 작품을 읽어야 자신만의 기준이 생겨난다. 그런 의미에서 함량미달의 작품도 조금은 접해볼 필요가 있다. 뭐가 문제인지, 어떤 점이 안 좋은지, 다른 사람이 쓴 이야기는 자기가 쓴 이야기와 다르게 객관적으로 볼 수 있(고 보아야 한)다.
드라마 대본은 드라마로 만들어짐을 전제하고 쓴 글이다. 글 자체로 읽히기 위해 쓴 글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의외로 이 부분에 대한 인식과 학습이 취약한 경우가 많다. 영상화를 목적으로 한 글은 그것만의 고유한 문법을 가진다. 이 문법을 익히는 유일한 방법은 많이 보는 것 뿐이다. 이미 드라마화가 된 대본을 구해서, 드라마도 보고 대본도 보고 하면 글이 영상이 되었을 때 어떻게 느낌이 달라지는지, 따라서 글 속에 어떤 요소들을 녹여내야 하는지를 가늠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을 딱딱 찝어서 가르쳐주는 교과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감'을 익힐 수 있을 뿐이다. 이건 왠지 그래야 할 것 같고, 이건 왠지 이상한 것 같고... 보여짐을 위한 글쓰기의 특별한 문법과 리듬을 스스로 납득하고 체화해야 한다.
아래는 영상화를 전제로 한 글쓰기가 어떤 것인지 가늠해볼 수 있는 사례다. 몇년 전 내가 썼던 시나리오의 한 장면이다. 훌륭한 사례라고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전체가 아니라서 한계가 있다. 그냥 가벼운 참고용으로 보시라. 중요한 것은, 글을 읽으며 장면이 눈앞에서 그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영상이 흘러가듯이.
S#24. 오피스텔 복도, 밤.
손을 잡은 채 지훈과 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굽이를 돌아 복도로 들어오는데,
윤의 집 앞에서 서성이다 몸을 돌리는 남자!
... 태욱이다!
뉴스 진행을 끝내고 그대로 온 듯, 말끔한 수트 차림이다.
윤, 놀라 지훈의 손을 확 놓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보는 태욱.
지훈.. 그 남자다! 늘 윤을 울게 했던 그 새끼.
태욱 (못마땅한) 누.. 구?
윤 (뭐라 말해야 할지)
지훈 남자친굽니다.
태욱 ! (뭐냐, 이 자식)
윤 ! (지훈 보고)
태욱 얘기 좀 하자. (지훈 힐끗 보고) 손님 가시면.
지훈 우리 키스했어요.
윤 !!
태욱 !!
지훈 잠도 잤고.
태욱 (!! 그 말이 진짜였어?)
윤 (당황해서, 지훈에게) 야!
지훈 (아랑곳 않고) 손님은 당신이야. 내가 아니라.
윤 (지훈에게)너 가. 당장.
태욱 (윤에게. 경멸이 담긴) 너 요즘 뭐하고 다니는 거야?
윤 (울컥하고)
지훈 (그런 윤 보고) 왜 못 헤어져?
윤 ..!!
지훈 그렇잖아! 이런 쓰레기 같은 새끼한테 왜 맨날 휘둘려!
태욱 ...
윤 (이 악물고, 지훈에게) 가. 좋은 말할 때.
지훈 ...
윤 꺼지라고!
지훈, 어떡해야 할까.. 화가 나서 미치겠는데...
윤, 지훈을 남겨두고 태욱과 들어가 버린다.
들어가기 전 마지막 순간, 지훈을 돌아보는.. 윤.
그 눈빛이, 어쩔 줄 몰라 하는 그 눈빛이, 지훈의 마음을 부순다.
지훈의 눈앞에서 쾅! 닫히는 문.
두번째 원칙은 많이 쓰라는 것이다.
여기서는 무조건 많이 쓰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효율성을 염두에 두고 써야 한다. 역시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반드시 끝까지 써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쓰는 것은 이야기(story)다. 모든 이야기는 '시작-중간-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유명한 아리스토텔레스의 '3막 구조'를 떠올려보라) 다시 말해 시작-중간-끝이 없는 글은 이야기가 아니며, 끝을 내지 못하면 아무것도 쓰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시작만 백번 써 봤자, 그래서 초반 열다섯씬을 기가 막히게 써낸다 한들, 누가 그 사람을 드라마 작가로 부를 수 있겠는가? 또한 -역시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개인적인 경험에 따르면, 시작을 쓰는 게 가장 쉽고 끝을 쓰는 게 그 다음 쉽고 중간을 쓰는 게 가장 어렵다. 나는 이야기의 '중간'을 잘 쓰는 작가, '중간'이 재밌는 대본을 많이 못 봤다. 나 역시도 '중간'을 쓸 때 가장 헤맨다. 여태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16부작 드라마에서 첫번째 난관은 5회 대본이다. 각회마다 시작-중간-끝이 있고 동시에 16부작 전체 흐름도 시작-중간-끝이 있는데 보통 5회에서 그 전체플롯의 '중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잘 나오던 대본이 5회에서 늦어지고, 그 결과물도 '으응?'했던 적이 많다. '아니 4회까지 몰아치던 이야기가 갑자기 왜 이래?!!')
또 하나는 피드백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글을 썼으면 반드시, 반드시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너무 중요해서 두번 강조했다.) 많은 이들에게 보여줄 필요는 없다. 솔직히 당신의 이야기를 읽고 정말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해줄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또한 A4 수십수백장에 달하는, 아직은 어설픈 대본을 읽어달라고 하는 것도 어떤 의미에선 민폐일 수 있다. 초기에 쓴 습작이라면 한두명으로 충분하다. 정성껏 읽어주고,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솔직한 조언을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이면 충분하다.
시간이 좀 더 흐르면, 그래서 실력이 좀 늘었다 싶으면 피드백 그룹도 재조정이 필요하다. 세명이면 충분하고, 조언을 해주는 사람의 역량에 따라 두명도 가능하다. 이때 피드백 그룹은 스토리텔링과 관련된 업계에 있거나 최소한 거기에 대한 식견이 있는 사람을 꼭 포함시켜야 한다. 작가, 작가지망생, 프로듀서, 감독, 연영과 교수, 제작자, 마케터 등 스토리텔링 관련 업계의 범위는 넓게 잡아도 좋다. 중요한 건 '스토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가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평범한 시청자 입장에서 의견을 듣고 싶다면 대본을 읽히지 말고 구두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반응을 보는 것이 좋다.
많이 읽고 많이 써라.
이만큼 진부한 조언이 있을까 싶지만, 결국 모든 글쓰기는 이 말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을 수도 없이 확인하게 된다. 얼마전 드라마 대본들을 읽을 일이 있었는데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많이 읽고 많이 쓰는 작가는 언젠가 세상 속에 빛을 내게 마련이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케이스를 나는 지난 이십년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많이 읽고 많이 쓰지 않으면, 잠깐 한두번 반짝할 수 있어도 결국 버티지 못하고 무너진다.
그러니 많이 읽고 많이 써라. 드라마 글쓰기라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당신이라면,
많이 읽고 많이 써라,
다만, 전략적으로 그렇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