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미술관이 된 학교
고향을 방문할 때마다 국민학교 운동장을 찾는다. 집 근처라서 산책하기도 좋고 걸으면서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려보는 즐거움도 있어서이다. 그런데 학교는 페교된지 15년도 넘었고, 지금은 갤러리로 운영되고 있다. 국민학교 시절 6년 내내 우리들이 뛰놀았던 운동장은 그 시절의 운동장으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는 구석 구석 풀이 무성하고, 고무줄 놀이를 주로 했던 과학실 앞에는 흙더미가 쌓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장을 거닐다 보면 그 시절의 함성과 친구들의 속삭임이 되살아난다. 서쪽 계단은 운동회 날 청군, 백군으로 나누어서 힘차게 응원하던 곳이고, 구령대 앞은 전체 조회 시간에 내리쬐는 햇빛을 이겨내며 꿋꿋이 버티던 곳이었다. 운동회날에는 한복을 차려입고 꼭 부채춤을 추었다. 해가 갈 수록 커가는 나의 신장에 못 맞추어 내 한복은 차츰 작아졌다. 그럼에도 새 한복을 입지 않고 3년 내내 같은 한복을 입었다. 작으면 작은 대로. 연날리기 대회가 있던 날에 운동장은 온갖 종류의 연들이 하늘을 수놓기도 했다. 고무줄 놀이 하기에 좋은 구역이 있었는데 그 곳을 바라보면 유독 고무줄놀이 귀신이었던 친구들 얼굴이 보인다. 한살 밑 남동생은 친구들과 땅거미가 지고, 캄캄해질 때 까지 놀곤 했었다. 방과후에도 그를 부르러 운동장을 몇번이나 들락날락 하기도 했다.
운동장 한 쪽 편에는 학교에 소속된 작은 귤밭이 있어서 급식 시간에 귤이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급식실 가는 모퉁이에 독서하는 소녀상 동상이 있었다. 하나의 예술 조각처럼 자주 보던 동상이었다. 독서하는 소녀상이 학교시절 내게 분명히 각인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책이 좋고 책에 친숙해지는 과정에 분명히 한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학교 운동장을 보면서 장소(place)의 의미를 생각하곤 한다. 장소는 사람들의 기억, 감정, 관계가 스며들어 있는 살아있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삶이 흔적이 묻은 공간이다. 어떤 사람을 말할 때 그가 어떤 장소에 있었고, 어떤 장소에서 삶의 대부분을 보냈는지가 중요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재의 '나'의 정체성은 '나'가 오랫동안 머물렀던, 다양한 경험을 했던 장소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나에게 학교와 운동장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내 몸이 기억하는 곳이고, 그 공간에 있는 순간 내 몸에서는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살아 움직인다. 누군가가 내게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물으면 나는 우선 어린시절 살았던 곳을 말해주고, 어떤 장소에서 어떤 경험들을 했는지를 말한다.
고향의 학교와 운동장이 갤러리로 이용되는 것 만으로도 매우 안심이다. 만약 누군가가 개인이 이 곳을 사들여서 대규모로 개발했다면 학교라는 장소는 없어지는 것이기에, 내 기억의 한 부분을 도려내는 것과 같다. 그 장소의 보존은 내게 또 다른 자유를 주는 듯 하다. 장소 상실(placelessness)을 경험했던 이들에 대한 기록과 역사는 무수히 많다. 자본주의 발달로 봉건제가 무너지고, 오랫동안 영주 밑에서 농사를 지었던 농노들은 그 공간을 뺏기고 도시로 떠나거나 떠돌이 생활을 해야 했다. 중동 분쟁의 한 축을 이루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도 같은 맥락에 있다. 장소와 땅을 뺏긴 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DNA 깊숙한 곳에 박혀 있으니 말이다.
내 기억 속의 학교 운동장은 아래의 피터 브뤼겔의 <아이들의 놀이>와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다. 운동회 날이나 평소 방과후에도 늘 북적이던 곳이었다. 남자 아이들은 축구나 야구를 하고, 여자 아이들은 해바라기 놀이, 고무줄 놀이, 땅따먹기 놀이 등을 했다. 한참 놀고 난 뒤에도 숨박꼭질 놀이로 마무리를 하곤 했다. 지금 어느 학교의 운동장을 가봐도 이런 북적임은 없다. 아쉬운 풍경이다.
1500년대의 아이들은 어떤 놀이를 했을까? 피터 브뤼겔의 이 그림 속에는 어린이들이 놀고 있는 다양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숨바꼭질, 줄넘기, 던지기 게임 등 여러 가지 놀이가 등장한다. 그런데 아이들만 있는 게 아니라 어른들도 놀이에 동참하거나 아이들의 놀이를 지켜보고 있다. 그러니 이 그림은 단순한 어린이의 놀이 장면을 넘어서 사회적, 문화적 의미와 풍경을 담아내고 있으며 이를 통해 당시 사람들의 놀이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놀이를 하는 이들의 즐거움과 더불어 또 다른 의미를 찾을 수가 있는데 그것은 놀이를 하면서 이들이 주고받는 상호 관계, 협력, 때로는 경쟁 등의 요소들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이러한 사회적 규칙과 역할들을 배워나가고 있다. 그러니 놀이는 사회 질서가 유지되기 위해서 필요한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 하겠다.
오늘 그림을 다시 보니, 그림 중앙에 평균대 혹은 철봉처럼 매달려서 몸을 회전시키는 두 사람, 굴렁쇠를 굴리는 어른?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얼마나 즐거운 표정들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