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눈 치우기
눈이 오는 날은 항상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제주의 중산간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아름다운 눈에 대한 기억이 참 많다. 제주의 겨울은 보통 따뜻하긴 하지만, 유난히 내 어린시절 겨울은 눈이 많이 내렸다. 이른 새벽 잠도 깨기전에 아버지의 삽 소리를 들으면 밤새 눈이 왔는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아버지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삽으로 마당과 올래길의 눈을 치우곤 했다. 삽이 바닥과 마찰되어 나는 소리가 어스름 새벽 시골집 주변에 울려 펴지는데, 오로지 내리는 눈과 삽 소리만 있으니 소리는 더욱 크고 명확하게 들린다. 그 소리에 잠이 깨면 나와 동생은 주섬주섬 겉옷을 챙겨입고 밖에 나가 눈치우기에 동참한다. 워낙 눈을 좋아했으니 눈치우기는 일이 아니라 신나는 놀이였다. 우리의 강아지 어니스트도 동참하고 싶어 꼬리를 세차게 흔들어댄다. 눈을 치우다보면 아직도 나무에 매달린 나수미깡(나수 귤)의 오렌지 빛깔이 눈을 배경으로 확연히 눈에 띈다. 이 귤은 겨울 내내 나무에 매달려 있어도 얼지 않고 오히려 맛이 깊어지는 귤 품종이다. 중독성있는 시큼한 맛이 참 좋다.
눈 치우기는 길을 만들어내는 일이라서 참 좋았다. 눈이 소복히 쌓이면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길이 아닌지 분간하기 어렵다. 살고 있는 곳이 익숙한 곳이라서 금방 찾아내긴 하지만, 눈이 모든 것을 덮어 버리면 갑자기 온 세상이 리셋되는 느낌이 든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는 느낌도 들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편안하게 안전하게 오고 갈 수 있도록 새롭게 길을 만들어가는 일, 가만히 보면 그것은 자신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 삶이란 것은 길을 만들어가는 일이고, 타인을 위해 노력했던 일이 결국은 나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 길을 만들어가도록 노력하고, 그런 삶의 의미와 소중함을 알도록 가르쳐 왔다. 법정 스님은 눈을 치우는 것은 단순히 마당의 눈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티끌을 걷어내는 일이라고 했다. 산골의 오솔길의 눈을 치우는 것은 수행의 과정이자 자연과의 대화라는 것이다. 법정 스님만큼의 깊이와 수행은 아니지만, 눈이 오는 날에 눈을 치우면서 누구나 자신과 짧은 대화를 해보면 어떨까 한다.
눈치우기 이야기를 좀 더 해보고자 한다. 눈을 치우면서 길을 만들다보면 어디까지 치워야 할지 고민이 된다. 올래길의 눈을 치우면서 가다보면 올래길 옆집 아저씨나 소꿉 친구를 만나기도 한다. 우리 모두 같은 맘이기에 해마다 놀이처럼 눈을 치우고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든다. 한참 눈을 치우다 보면 이쯤하면 충분하다고 공감대가 형성되어 서로 말하자 않아도 각자의 도구를 챙겨서 집으로 갔다. 이러니 시골에서 사는 동안, 눈치우기로 분쟁이 생겼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도시에서의 눈치우기는 다른 얘기가 된다. 집 앞의 눈을 치우지 않았다가 행인이 미끄러져 다쳐서 손해배상을 물게 됐다는 뉴스를 들은 적이 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배려로 살고있는 집 앞의 눈을 열심히 치우려 한다. 아파트에 산다면 눈치우기는 경비원들의 몫이 된다. 눈이 오는 날, 아파트 경비원의 겨울 일과 중 가장 고된 노동은 바로 눈 치우기가 될 것이다. 그들의 노고는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배려가 깃든 일이며 그래서 감사함을 느껴야 하는 일이다. 이 노고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눈 오는 날의 운치와 눈 치우기는 낭만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눈 치우기는 이제 놀이가 아니라 일로 탈바꿈된다.
지난 주에 밤새 눈이 내린 날, 교사들도 일찍 출근하여 교정의 눈을 치우는데 동참했다. 학생들이 등교길에 행여 미끄러질까봐 세심하게 치우기 시작한다. 이런 고마움을 서로 알기에 학교에서 눈치우는 일은 매우 신나는 놀이가 된다. 학교라는 공간은 눈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정문에서 교실까지 난 길은 눈을 신나게 치우면서 놀고, 눈 치우기에서 제외된 공간인 학교 운동장은 마음이 가는대로, 발길이 닿는대로 뛰어다녀도 좋다. 눈을 굴려서 눈사람을 만들어도 좋고, 눈싸움을 해도 좋다. 그러다 지치면 그냥 눈 위에 마냥 누워도 된다. 조금 경사 진곳은 눈썰매타기도 좋다. 포대 자루만 있어도되니 말이다.
눈을 치우셨던 아버지의 삽질 소리를 기억하고 있기에 내리는 눈에도, 쌓인 눈에도 소리가 있다고 느껴진다. 이 감정은 모네의 <까치> 그림을 보면서 더욱 증폭됐다. 눈쌓인 풍경과 울타리 위에 앉아 있는 까치 한마리가 있는 아주 적막한 풍경인데, 나는 이 그림이 어떤 소리를 품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소리는 까치 한마리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까치가 갑자기 날개짓 하며 날아오르는 순간, 저 울타리가 쓰러질지도 모르고, 눈 덮인 나무 위를 스치고 날아가면서 후두득 눈을 떨굴지도 모르겠다. 하얀색인 줄 알았던 눈이 빛에 따라 푸른 색의 인상을 주기도 하고, 노란빛이 감도는 흰색을 주기도 한다. 눈덮인 풍경을 배경으로 홀로 앉아 있는 까치는 떼지어 날아가는 까치들, 혹은 전기줄에 무리지어 앉아 있는 까치들의 소리와 분명 다르다.
다음 주에 아이들과 <까치> 그림으로 질문이 있는 영어 수업을 해야겠다.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말이다.
"그림 속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무엇이고, 왜 그렇게 느꼈니?"
“What is the first thing that catches your eye in the painting, and why do you think that is?”
"그림 속 까치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What role do you think the magpie plays in the painting?”
"까치가 날아가면 어떤 소리들을 낼까?"
“What kinds of sounds might the magpie make if it were to fly aw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