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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쌤의 spots of time

20. 고사리 꺾으러 갈래?

by 제이오름
ChatGPT Image 2025년 11월 10일 오후 04_20_46.png

학교 급식에 고사리 무침이 나왔다. 학교 급식이라고 음식의 수준을 낮춰 봐서는 안된다. 맛과 향의 수준이 고급 한정식 식당에서 먹어본 고사리 맛이다. 이번에 부임한 30대 초반의 젊은 영양사 선생님은 음식에 진심인 선생님이시다. 매일매일 식사때마다 나오는 모든 음식들이 맛있어서 선생님들은 입에 칭찬이 마르지 않는다. 새 학교로 부임할 때마다 여러 급식을 먹어 보았기에, 선생님들의 맛 감별은 정확하다. 때로는 유별하다 할 수 있다. 누군가는 내게 급식에서 먹는 고사리 무침에 이렇게 반할 일인가 말할 수 있지만, 풍미에서 압도적이고, 어린 시절의 특별한 기억까지 떠올리게 만드니, 내게 고사리 무침은 단순한 반찬 이상이다.


학교 급식은 국산 재료를 쓴다.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서다. 당연히 고사리무침에 나온 고사리도 국내에서 생산된 고사리를 쓴다. 무엇보다 고사리하면 제주이다. 제주에는 고사리 철이면 많은 인파가 몰린다. 2차선 도로가에 차를 주차해 놓고 아낙네들이 오름 안쪽까지 걸어서 고사리를 꺾는다. 고사리 꺾기 전문인 사람들도 몰린다. 이쯤하면 고사리는 "캔다'고 하지, "꺾는다"고 하는 것은 아니야라고 내게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고사리는 캐는 것이 아니라 꺾는 것이다. 도구를 가지고 캐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꺾는 것이다. 엄지와 검지에 고사리 물이 들 정도로 말이다.


고사리 꺾기의 기억은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회상 장면을 동시에 떠올리게 한다. 제주 사람들은 고사리를 무척 좋아한다. 흔하디 흔하지만 누구나 즐겨먹었던 싱아처럼 말이다.


"나는 불현듯 싱아 생각이 났다. 우리 시골에선 싱아도 달개비만큼이나 흔한 풀이었다. 산기슭이나 길가 아무 데나 있었다. 그 줄기에는 마디가 있고 찔레꽃 필 무렵 줄기가 가장 살이 오르고 연했다. 발그스름한 줄기를 꺾어서 겉껍질을 길이로 벗겨 내고 속살을 먹으면 새콤달콤했다. 입 안에 군침이 돌게 신맛이, 아카시아꽃으로 상한 비위를 가라앉히는 데는 그만일 것 같았다"(89)


그날도 어머니는 고사리 꺾으러 같이 가자고 구덕(속이 깊은 대나무 바구니를 말하는 제주 방언)을 허리춤에 매시고, 내게도 매어주셨다. 손재주 좋으신 아버지가 만드신 구덕을 말이다. 한 구덕 꺾는데 반나절도 걸리지 않을 만큼, 일단 오름 주변으로 가면 고사리가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지금도 제주에 내려가면 어머니는 어린 시절 나를 데리고 다니면서 같이 고사리를 꺾었던 일을 자주 이야기하신다. 같이 했던 행복의 기억을 꺼내시고 싶으신 거라는 걸 나는 바로 알아차린다.

15276-medium-size.jpg 출처: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사실, 바람에 따라 풀소리가 달라진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건 고사리를 껐었을 때의 일이다. 제주가 아닌 다른 지역의 비슷한 장소에 갔어도 그 소리는 나지 않는다. 내 마음 속 깊이 자리잡은 풀이 스치는 소리는 제주 오름 주변에서만 나는 소리이다. 오름 주변 들판의 풍경과 그 색을 보면 저절로 풀이 스치는 소리가 들린다.

프랑스 후기 인상주의 화가인 피에르 보나르(1867-1947)의 그림 중에서 풍경이라는 그림을 보면 제주에서 들었던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 풍경과 가장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어린 시절의 고사리 꺾기는 노동이 아니었다. 아니, 노동을 초월했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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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일이 노동을 초월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단순한 일이든, 힘든 일이든 '놀이'에 결부시켜야 한다.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로 만들어야 한다. 그 시절 어머니는 고사리 꺾기를 '하고 싶은 일'로 바꾸어 놓으셨던 것 같다. 멋진 자연 풍경, 군데 군데 보이는 산딸기와 보리수, 잊을 수 없는 풀소리 등에서 자연스레 그것은 놀이로 바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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