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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쌤의 spots of time

18. 부모님은 삼나무 귤상자를 왜 만들게 했을까

by 제이오름
ChatGPT Image 2025년 11월 20일 오후 04_20_37.png

부모님께서 잘 익은 노란 귤을 보내주셨다. 귤을 좋아하는 막내딸의 얼굴이 환해진다. 하나씩 하나씩 먹을 때마다 떠오르는 기억은 어쩔 수 없다. 그래 오늘은 귤도 먹고, 오랜 기억도 음미해 봐야겠다.


부모님은 귤 농사를 오래 하셨다. 내 기억의 한계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부모님의 귤농사 장면이 떠오른다. 오랫동안 지켜봤으니 누가 말하지 않아도 1년동안 어떤 일들이 이어지고 되풀이 되는지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봄에 전정하기, 거름주기, 꽃 솎아내기부터 여름에 청귤 솎아내기, 가을에 귤따기, 겨울에 귤 이삭 줍기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수확기가 되면 온 식구가 바쁘게 움직였고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큰 노동까지 서로 도와서 일했다. 수확한 귤을 담을 상자까지 직접 만들어서 저장했으니, 하나부터 열까지 가족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음, 그런데 귤상자, 어떤 재료로 만들었을까. 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어린시절 우리가 살던 집과 귤 과수원 둘레에는 삼나무가 웅장하게 자라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도 쉬이쉬이 거친 소리를 내지만 항상 끄덕없이 그 자리를 지키던 삼나무 들이다. 우리동네엔 왜 그렇게 삼나무가 많았을까. 귤 과수원 둘레에 웅장하게 자라는 삼나무는 태풍과 폭우으로부터 귤나무를 지켜주기도 했지만, 가지치기한 나뭇가지는 훌륭한 땔감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기둥이 튼튼한 삼나무는 베어서 귤상자를 만들었다. 베어낸 삼나무는 판자로 잘라낸다. 그리고 그 판자는 다시 귤상자 크기로 잘라낸다. 주재료가 준비됐으니 이제 망치와 못만 있으면 귤상자를 짤 수 있다. 특별한 기술과 재능을 요구하는 일이 아니라서 누구라도 만들 수 있다. 적당히 균형을 잡고 귤상자 모양대로 못질하면 됐다. 필요한 기술 하나를 꼽으라고 하자면 못이 정확히 나무 속에 들어가도록 박아야 한다. 옆으로 삐져나오면 못을 빼서 다시 만들어야 한다. 나와 동생은 삼나무 귤상자 만들기의 달인이었다. 가끔은 오빠도 집에와서 돕기도 했다. 우리 삼남매가 오손도손 앉아서 열심히 귤상자를 짰으니 그렇게 만든 귤상자만도 백 개는 넘었다.


우리는 단순히 귤상자만을 짠것이 아니었다. 잘 만들어진 귤상자를 엎어 놓으면 근사한 의자가 됐다. 어떤 경우에는 밥상, 다과상이 되기도 했다. 그 의자 위에서 노동의 고단함, 학교생활, 우리들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날씨가 더워지고 조금 지루해질 것 같으면 돌담 밑 혹은 복숭아 나무 밑의 그늘로 삼나무 귤상자를 옮겨 놓았다. 올래길의 아름드리 팽나무 그늘 밑에 놓으면 바람이 시원해서 오름 위에 올라가서 바람을 맞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서너개의 귤상자를 뒤집어서 의자로 삼고,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가면서 또 새로운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세월이 흘러 형편이 좋아지니 사람들은 플라스틱 컨테이너('콘테나'로 불림)를 구입하여 귤을 보관하기 시작했다. 우리집도 이를 받아들였다. 차츰 노란 콘테나가 수십개, 아니 수백개 들어오기 시작했다. 콘테나 덕에 우리는 더이상 삼나무 귤상자를 만들 필요가 없어졌다. 삼나무 향은 그렇게 차츰 멀어져 갔다. 사라져버린 삼나무 귤상자가 지금 내 옆에 있다면, 여러 종류의 붓을 가득 꽂아 놓을 것이다. 때로는 좋아하는 빵을 가득 담아 먹고 싶을 때마다 하나씩 꺼내먹을 것이다. 억새가 휘날리는 가을이 되면 억새를 잔뜩 꺾어다가 꽂아 놓을 것이다. 제인오스틴의 모든 소설을 담아놓고 읽어볼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사랑의 소네트들을 손으로 써서 상자 안에 장식해 볼 것이다. 지인들과 주고 받은 편지들, 아들, 딸들에게서 받은 편지들을 쏟아놓고 따뜻한 햇살을 받으면 한장 한장 읽어볼 것이다.


어느날 문득 생각했다. 부모님은 왜 우리에게 삼나무 귤상자를 만들라고 했을까. 그 시간에 공부를 더 하라고 했을텐데 말이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는 일, 반복적인 일, 귤상자 짜기는 단순 노동이었다. 처음에는 흥미로 시작했고, 어떤 경우에는 기계적으로 하기도 했고, 어떤 경우에는 머리가 복잡해지면 작업대로 갔다. 단순 노동만큼 머리를 맑게 해주는 건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참 신기하다. 이 일은 이후 살아가면서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고, 마음이 복잡해지면 단순 노동으로 눈길을 돌리기도 했다. 부모님은 그것을 말하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삶에서 돌파구가 생기기 않을 때 살짝 옆으로 시선을 돌려서 단순한 일을 시작해 보라는 것 말이다. 단순한 일을 하기 시작하면 에너지가 생긴다. 의욕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애초에 하고자 했던 일, 안 풀렸던 일을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이것을 삶의 '환기'라고 부른다.


삼나무 귤상자 만들기처럼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주는 삶의 '환기'와 같은 그림들이 있다. 예를 들어 인상주의 화가 피사로의 <서리내린 들판에 불을 피우는 아이들>이나, <추수>같은 그림들이다. 자연이 가진 빛과 따스함을 이렇게 잘 표현하는 화가는 드물다. 분명 노동의 현장인데, 노동의 현장처럼 느껴지지 않고 따뜻함이 먼저 느껴진다.

image01.png 카미유 피사로. 서리 내린 들판에 불을 피우는 아이들


thumb_20200226135241_018_the_harvest_pontoise.jpg 카미유 피사로. 추수, 퐁트와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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