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무말랭이와 친해질 수 없다
얼마 전 학교 급식으로 나온 무생채 요리가 일품이었다. 겨울에 먹는 무는 어떤 요리든 맛있지만 이렇게 봄에 먹는 무 요리도 맛있다. 무를 가지고 어떤 요리를 할 수 있을까. 무생채, 무전, 무국, 무나물, 깍두기, 무말랭이 김치, 열무김치, 무말랭이 조림 등 지금 바로 열거해 볼 수 있는 다양한 요리들이 있다. 하지만 고백컨대, 자라면서 나는 무로 만든 음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무 썰때 나는 향만 맡아도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왜 그랬을까.
어린 시절 부모님은 한 겨울에 무말랭이 농사 일을 하셨고, 가족 모두 일손을 거들어야 했다. 초가을에 심은 무는 쑥쑥 자라서 겨울이 되면 어른 팔뚝만한 크기가 된다. 다 자란 무를 뽑아서 물에 씻고, 기계에 넣어 생기리(길게 채썬무의 일본말, 부모님은 무말랭이 농사라 하지 않고 그냥 '생기리'라 하심) 모양으로 채를 썬다. 채썬 무는 수레에 퍼 담아 발 있는 데로 나른다. 그리고 나서 채 썬 무를 발에 골고루 펼친다. 이렇게 일련의 과정을 간략히 설명하니 간단한 농사일처럼 들리지만 매우 힘들고 벅찬 노동 중의 하나이다. 하늬바람이 매섭게 부는 한 겨울에 무를 뽑아 씻노라면 손이 얼어서 오그라들 정도이고, 큰 무를 채써는 기계 가까이 나르는 일도 만만치 않아서 가끔 떨어진 무에 발등이 찍히기도 한다. 채썬 무들이 쌓이면 수레에 퍼 담는 일도 힘들어서 어깨와 허리를 펼 수 없을 정도가 된다. 어느 한 곳 뭉치는 데 없이 발에 골고루 펼치는 일도 바람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해야 하는 일이니 가끔은 아이들의 얼굴 살이 바람에 트이기도 한다. 하루종일 이어지는 무말랭이 노동은 어두컴컴한 저녁이 되서야 끝나지만 집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한 숨 쉬려고 하면 여기저기 쑤시는 데가 한 두 곳이 아니다. 밤새 하늬바람이 쌩쌩 불어서 발에 널은 무가 바싹 마르길 기도할 일 만 남았다. 그런데 한밤중(대락 2-3시경)에 저 멀리 타당, 타당, 탕, 탕 경운기 소리가 이어서 들린다. 이 소리는 마을 사람들(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이 무말랭이 농사를 함)이 경운기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는 것이다. 아, 비가 오고 있구나.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으니 무가 비에 젖지 않도록 모든 발을 덮어줘야 한다는 의미이다. 아버지는 급히 경운기 채비를 한다. 비에 젖은 무말랭이는 상품가치가 떨어져 제 값에 팔지 못하니 채썬 무들이 비에 젖지 않도록 빨리 조치를 취해야 한다. 비상, 비상, 가족 모두 일어나 오름 근처 발을 펼쳐놓은 곳으로 급히 가야한다.
어린 시절 내내, 나는 부모님의 무말랭이 농사를 지켜보았고, 일손을 거들기도 했다. 하지만, 추운 바람이 매섭게 부는 겨울에 해야하는 무말랭이 농사, 도대체 이 무말랭이를 누가 먹는 것인지 가끔은 짜증이 날 정도였다. 지금은 고향에서 이 농사를 하는 분들이 거의 없다. 지금 해봐야 수익도 나지 않고 나이든 노인들이 고된 일을 할 수도 없다. 고향 마을 오름에 올라 먼 경치를 볼 때면, 두 가지 풍경이 겹쳐보인다. 어린 시절 그 많았던 벌판의 발들과 무를 발에 펼치던 부모님의 손 말이다.
세 아이들의 엄마이다 보니 가족 모두의 끼니를 챙겨야 하고, 어떻게 하면 건강한 밥상을 차릴 수 있을까 매순간 고민한다. 그 중에서 단연코 무는 꼭 먹게 하는 채소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고된 기억에 환상의 마법을 걸어 무를 사랑하기로 했다. 목이 칼칼하거나 감기가 들것 같으면 꼭 무 된장국을 끓이고, 돼지고기 요리를 할 때도 무생채를 만든다. 채 썬무를 들기름과 액젓에 살짝 볶는 요리도 가끔 한다. 막내딸이 좋아하는 열무 김치도 가끔 담그고 고등어 조림에도 큼지막한 무를 냄비에 먼저 깔아 둔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소고기 뭇국을 끓여서 가족들의 건강을 미리 챙기려 한다. 그런데, 단 하나 무말랭이 요리에는 전혀 손이 가지 않는다. 아무리 그 고된 기억에 마법의 행복 가루를 잔뜩 뿌려도 그 기억은 추억이나 환상으로 변하지 않고 그 자체로 온전히 남는다. 매서운 하늬바람과 넓게 펼쳐진 발들의 풍경이 더욱 또렷해질 뿐이다. 이제는 굳이 바꾸려 하지 않는다. 시간이 더 흐르면 달라질 수 있겠지 하며 그대로 두기로 했다.
제인 오스틴 소설 『에마』를 집어 들었다. 한 장면이 눈에 들어 온다. 형편이 어려운 베이츠 양 집에 돼지고기를 보내자고 우드하우스 씨가 말하자 에마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빠, 뒤쪽 부분을 통째 보내 드렸어요. 아빠도 그걸 바라실 것 같아서요. 다리 고기는 소금에 절이면 아주 좋을 거고, 허리 고기는 곧장 원하든 대로 양념해서 드시면 될 거고요."
"잘했다, 얘야, 아주 잘했어. 내 미처 생각을 못했다만 그게 최상의 방법이구나. 다리에 소금을 너무 많이 치면 안 되는데, 과하게 절이지만 말고 우리 집 서럴이 하듯이 완전히 푹 삶아서 삶은 순무에다 약간의 당근이나 파스닙을 곁들여 아주 조금만 먹는다면 건강에 해로울 것도 없지."(248)
아, 동서고금 막론하고 돼지고기 요리에는 무가 빠질 수가 없다. 제인 오스틴 소설 이야기를 시작했으니 좀더 이어가 보겠다. 『오만과 편견』에서 이웃에 이사 온 빙리 씨를 자신의 집에 초대하고 싶어 안달이 난 베넷 부인을 떠올려 본다. 그에게 잘 보이고 싶어하는 베넷 부인은 어떤 음식을 차렸을까. 소설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고기에다 삶은 순무를 곁들였을 것 같다. 『에마』에서 베이츠 양은 형편이 어려우니 푹 끓인 순무요리만을 자주 먹었을 것 같고, 『맨스필드 파크』에서 패니 프라이스의 친정도 가난했으니, 그 많은 아이들을 키우려면 순무 요리를 자주 먹었을 것 같다. 오랫만에 방문한 친정집에서 동생들을 보면서 밤새 눈물을 흘렸을 패니의 모습도 떠올려 본다.
제인 오스틴이 살았던 당시 영국은 농업 혁명의 시기였다. 순무는 토양을 비옥하게 하고 겨울철 가축 사료로 쓰여 농가 수입을 올리는 작물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당시 지주 계급의 풍요로움 뒤에는 이 순무를 열심히 재배했던 농장 시스템이 숨어 있지 않았을까 한다. 순무를 많이 심었던 자작의 별명이 순무 타운셴드(turnip townshend)이었다는게 흥미롭기도 하다. 『맨스필드 파크』에서 서인도제도에서 농장을 경영하면서 많은 부를 축적한 버트럼 경도 영국에 돌아와 순무 농장을 경영했을까. 상상만으로도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