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을 읽는 100가지 방법

42. 나는 왜 'Janeite'인가

by 제이오름
출처: https://janeausteninvermont.blog/reading-groups/starting-a-jane-austen-reading-group/


'Janeite(제이나이트)'는 제인 오스틴의 열렬한 팬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이 단어는 단순한 '팬'의 뜻을 넘어서 문학사적으로도 흥미로운 의미가 담겨있다. 이 단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1894년 영국의 비평가 조지 세인츠버리(George Saintsbury)이다. 단순히 제인 오스틴 책을 읽는 사람의 의미를 넘어, 제인 오스틴 작품 속 세계관과 유머, 가치관을 깊이 이해하고 공유하는 지적인 팬덤을 의미한다. 나는 '제이나이트'이다. 그녀의 소설은 수십번 읽은 듯 하다. 다시 읽고 다시 읽는다. 그래도 지루함이 없다. 매번 새로움을 발견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월터 스콧, E.M. 포스터, 키플링 같은 거장 문학가들은 스스로를 '제이나이트'라고 자처하며 이 용어가 널리 퍼지게 됐다고 한다. 월터 스콧은 1826년 3월 14일 일기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쓴다. 얼마나 큰 찬사인가. 제인 오스틴은 "상아 미니어처"(일상에 대한 정교하고 세부적인 터치)에 능하고 자신은 "빅 보우-와우(Big Bow-wow)" 스타일(웅장하고 허풍섞인 문체)이라고 한다.


"다시 읽어라. 적어도 세 번은 읽어야 한다. 오스틴 양이 정교한 필체로 쓴 소설 <오만과 편견>을 말이다. 이 여성은 일상으로의 몰입을 비롯해 감정과 등장인물을 뛰어나게 묘사하는 재능을 가졌고 여태껏 중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다. 요즘 나오는 책들처럼 나도 아무 소리나 지껄일 수는 없다. 하지만 평범한 사물과 인물을 제대로 된 설명과 정서로 흥미롭게 완성하는 정교한 터치는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197)-제인오스틴, 19세기 영국에서 보낸 편지 중에서-


위 일기에서 알 수 있듯이 월터 스콧이 말하는 오스틴의 탁월함은 거창한 사건이 없어도 인물들의 눈빛 하나, 대화 한 마디 속에 담긴 심리적 변화와 긴장감을 포착해내는 섬세한 관찰력이다.


『전망 좋은 방』의 저자인 E.M. 포스터는 <소설의 이해(Aspects of the Novel)>이라는 책에서 입체적 캐릭터의 전형으로 오스틴의 인물들을 꼽았으며 스스로를 '제이나이트'라고 부를 만큼 그녀의 열렬한 팬이었다. 또한 러디어드 키플링(Rudyard Kipling)은 『제인주의자들(The Janeites)』라는 소설을 썼는데, 이 소설은 제1차 세계대전 중 참호 속 군인들이 제인오스틴 소설을 읽으며 고통을 이겨냈다는 이야기를 담은 단편 소설이다.


Janeite라고 불리기를 원하는 E.M. 포스터 에 대한 AI 이미지


월터 스콧이 말했듯이 제인 오스틴 소설을 두번 세번 다시 읽으면서 그 즐거움을 알아야 진정한 '제이나이트'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줄거리를 아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오스틴의 문장과 유머, 그리고 복선을 찾아가는 즐거움을 알고, 새로운 시선으로 소설을 읽을 줄도 알아야 한다. 소설을 읽다보면 제인 오스틴 특유의 반어법(irony)과 위트를 즐기는 유머감각을 이해하게 된다. 예를 들어, 『오만과 편견』의 베넷 씨 부부의 대화는 매우 흥미롭다. 베넷 씨는 반어법을 즐겨 사용하는데, 예를 들어, 부인이 자기 고생을 좀 알아달라며 "내 가여운 신경(my poor nerves)"라고 징징거리는 장면이 나온다. 부인의 불평을 '나의 오랜 벗'이라고 부르며 존중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당신 그 소리 20년째인데 지겹지도 않소?'를 정중하게 돌려 말한 것이다. 베넷씨 특유의 반어법이다.


"걔들한테는 뛰어난 구석이 하나도 없소. 하나같이 다른 집 애들과 매한가지로 어리석고 무식해. 그렇지만 리지는 제 동기들보다 영리한 데가 있거든." 베넷 씨가 대답했다.

"여보, 어쩜 우리 아이들을 두고 그렇게 마구잡이로 말하세요? 날 화나게 하는 게 재미있나 보죠? 내 가여운 신경이 불쌍하지도 않나 봐요."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오. 부인, 내가 당신 신경을 얼마나 존중하는데. 나한텐 오랜 벗이지. 신경증이 도진다 소리에 측은해한 지도 어언 20년은 되었지. 아마."(12)


제이나이트들은 오스틴의 문장을 읽을 때 이 사람이 지금 하는 말과 실제 속마음이 정반대라고 가정해 보면서 읽는다. 예를 들어 어떤 인물이 누군가를 지나치게 칭찬하고 있다면 그것은 비꼬는 중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또한 어떤 상황을 지나치게 엄숙하게 설명한다면 그 상황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폭로하는 것이다. 이런 냉소적인 유머를 즐길 줄 알아야 진정한 제이나이트이다. 예를 들어, 『오만과 편견』에서 콜린스 목사의 청혼 장면에서 엘리자베스가 화를 낼수록 콜린스는 "오, 저를 더 자극하시려고 그러시는군요!"라고 하면서 흐뭇해한다거나, 우아한 여성은 첫번째 청혼을 거절하는 법이라고 넘겨짚는 모습은 냉소적인 재미를 준다. 또한 청혼 소동이 커지자 베넷 씨가 엘리자베스에게 최후통첩을 내리는데, 이 장면은 소설 전체에서 가장 냉소적이고 우아한 농담이 아닐까 한다.


"아주 불행한 선택이 네 앞에 놓여 있다. 엘리자베스 오늘 이후로 너는 부모 중 한 사람과 남남이 되어야 한다. 네가 콜린스 씨하고 결혼을 하지 않으면 어머니가 너를 다시는 안 볼것이고, 만일 네가 그 사람하고 결혼을 한다면 내가 다시는 너를 보지 않겠다."(161)


이는 아내의 극성을 그대로 비틀어서, 자신은 '결혼을 하면 의절하겠다'고 맞받아친 것이다. 가장 심각해야 할 상황에서 가장 차가운 유머로 딸을 지지해 주는 베넷 씨 특유의 냉소적 화법이 빛나는 장면이다.


제인 오스틴은 조카에세 보낸 편지에서 "두 치 너비의 상아"라는 말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비유한다. 이는 그녀의 문학적 특징을 관통하는 가장 유명한 메타포이다. 그것은 전쟁이나 정치와 같은 거창한 사건이 없어도 인물들의 눈빛 하나, 작은 대화 한 마디 속에 담긴 심리적 특징과 긴장감을 포착해내는 관찰력을 의미하는데, 이와 같은 "두치 너비의 상아"들을 발견해내는 재미도 '제이나이트'들의 즐거움이다. 가령 『오만과 편견』에서 결혼관에 대해서 샬럿 루카스와 엘리자베스의 논쟁적 대화를 살펴보자. 이 대화는 이후 전개될 두 사람의 운명(결혼)을 암시하는 복선이 된다. 평범한 처녀들의 일상의 수다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신분과 생존이라는 거대한 사회적 압박이 인물들의 가치관 충돌을 통해서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살럿이 말했다. "난 진심으로 제인이 성공하기를 바라거든. 그리고 제인이 내일 그분과 결혼해서 행복해질 확률이나 열두 달 동안 그분 성격을 연구한 뒤에 결혼해서 행복해질 확률이나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해. 결혼에서 행복이란 순전히 운에 달려 있어. 서로의 취향을 아주 잘 알거나, 혹은 서로 아주 비슷하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둘의 행복이 더 커지는 건 결코 아니야. 취향이란 건 게속 변하게 마련이라 나중엔 누구든 짜증이 날 만큼 달라지게 마련이야. 평생을 같이 살 사람의 결점은 될수록 적게 아는 것이 더 나아."

"정말 웃기는구나, 살럿. 그렇지만 그것은 정상이 아냐. 정상이 아니라는 건 너도 잘 알걸. 또 너 자신도 그렇게 처신할 리가 없고."(35)


제이나이트는 소설 속 주인공이 완벽해서 혹은 고귀해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가진 오만과 편견을 깨닫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에 깊이 공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의 발랄할만큼이나 그녀의 실수를 사랑하고 다아시 씨의 재력보다 그의 도덕적 성장과 인격의 성숙함을 응원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이나이트는 19세기의 영국 리전시 시대에 대한 소소한 지식을 자랑한다. 나역시도 리전시 시대의 모든 소설, 드라마, 영화를 좋아한다. 좋아하다 보니 소소한 지식이 쌓이기 시작한다. 당시 왜 여성이 상속을 받지 못했는지(한정 상속), 1년에 사천파운드가 얼마나 큰 돈인지, 편지 요금은 보내는 이와 받는 이 중에 누가 내는지, 왜 여성들이 무도회에 집착했는지, 왜 여성들이 엠파이어 라인(Empire Line)의 드레스를 입었는지 등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다. 사실 이런 시대적 배경을 잘 알수록 제인 오스틴 소설을 더 잘 이해하고 그녀의 작가적 천재성이 더 잘 보인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서도 '제이나이트'가 있다면 제인 오스틴의 문학과 삶에 대해 알 수 있는 사이트를 소개하고자 한다. https://janeausteninvermont.blog/reading-groups/starting-a-jane-austen-reading-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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