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소설 제목(이성과 감성)에 대한 고찰
제인 오스틴의 소설 『이성과 감성』의 제목을 잠시 고찰해 보고자 한다. 대학 시절에 제인 오스틴 소설 수업에서 동료들과 잠시 나누었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소설을 읽기 전에는 이성(sense)과 감성(sensibility)은 서로 대립되는 의미의 단어이니, 여주인공들도 서로 대비되는 성향의 사람들이고 그 대립되는 성향이 어떤 사건과 갈등을 일으키는지에 초점을 두고 쓰여졌을거라 추측을 했었다. 하지만 소설을 읽고 나면 그 단순한 대비를 넘어서 두 요소가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서로 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지를 알게 된다. 소설 제목에서부터 각 단어 의미에 대한 민감성이 드러난다. 어떤 번역가는 이 소설을 『이성과 감성』으로, 또 어떤 번역가는 『감각과 분별력』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캠브리지 어학 사전에 따르면 sense는 "a feeling or understanding about yourself or about a situation", 또는 "the ability to make good decisions and do things that will not make problems"로 나와 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스스로에 대한 혹은 상황에 대한 감각, 혹은 좋은 판단을 하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능력(감각)의 의미로 이해될 것이다. 한편 sensibility는 "an understanding of or ability to decide about what is good or valuable, especially in connection with artistic or social activities"로 정의되어 있다. 즉 예술적, 사회적 관계에서 좋고 가치있는 것을 분별해내는 능력 혹은 이해력을 의미한다. 이 정의로 본다면 sense는 단순한 이성보다는 상식, 혹은 이성적 판단을 위한 지혜와 논리, 감정에 대한 조절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sensibility는 단순한 감성이 아니라 감정의 표현을 넘어서 깊은 감정적 반응, 혹은 감정의 민감한 반응을 내포하고 있다. 이 두 요소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다. 각가의 요소로는 온전히 설 수 없다. 제인 오스틴은 이 작품에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고와 감성적이고 직관적인 반응은 서로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소설 초반에 서로 다른 기질의 엘리너와 메리언이 서로 충돌하여 스스로의 문제점을 깨닫고 보완해가는 과정이 나타나 있다.
두 인물의 대화를 한번 검토해 보자. 다음 대화를 보면 sense는 sensibility를 통해서 잘 보이고, sensibility는 sense를 통해서 제대로 드러난다. 각각의 측면에서 보니 두 인물들의 내면과 각자 겪게 되는 갈등이 더 세밀히 전달된다. 메리앤은 윌러비와 만나면서 설레고 기쁜 감정에 휩싸여서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다. 예를 들어 메리앤은 자신의 상황을 고려하지도 않고 윌러비에게서 덜컥 말을 받는다.
메리앤은 아주 신이 나서 하는 소리가, 윌러비가 말을 한 필 주었다는 것이다. 서머싯셔 장원에서 그가 직접 키운 말로, 여성이 타기에 아주 안성맞춤이라고 했다. 말을 가지는 것이 어머니의 계획에는 없던 일이었고, 혹 어머니가 이 선물을 기화로 마음을 바꾸는 경우에는 하인이 탈 말을 또 한 필 사야 하고 그 말을 탈 하인도 구해야 하며 말들을 들일 마구간을 지어야 할 판임을 고려하지도 않고서, 그녀는 덜컥 그 선물을 받아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마음이 들뜰 대로 들떠서 언니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엘리너는 별로 잘 알지도 못하고 기껏해야 아주 최근에 알게 된 사람한테서 이런 선물을 받는 것이 과연 예의 범절에 어울릴까 생각 좀 해보라고 했다. (80)
말을 받게 되면 일어날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던 메리앤과 달리 엘리너는 이후 발생하게 될 여러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짚어가면서 차분하게 메리앤을 설득한다.
메리앤은 동생의 기질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민감한 문젱에 대해서 반대해 보았자, 자기 소견에 더 집착하게 될 것이 뻔했다. 그러나 어머니에 대한 동생의 애정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혹 하인 수를 늘리자는 것에 동의라도 하는 경우 마음 약한 어머니가 감당해야 할 불편함을 알아듣게 설명해 주었더니, 메리앤은 금방 수그러들었다. 그리고 괜히 그 제안을 들먹여서 어머니가 혹여 이렇게 도를 넘은 친절을 받아들일 유혹을 느끼지 않게 하겠다고, 다음번에 윌러비를 만날 때 사양하겠다고 약속하였다. (80-81)
제닝스 부인에게 잔소리를 듣고서도 행동 변화가 없는 동생을 걱정한 엘리너는 메리앤에게 행동을 신중히 해야 한다고 타이르고, 메리앤은 끝까지 자신의 고집을 부리기 보다는 언니의 말을 차분히 알아듣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
"그렇지만, 얘, 메리앤. 벌써 남한테 무례한 소리를 몇 마디 들은 셈인데, 이제는 네 행동거지에 혹 신중하지 않은 점은 없엇나 하는 회의가 안 드니?"
"제닝스 부인한테 뻔뻔스러운 잔소리를 들은 게 예의범절에 어긋한 행동을 했다는 증거가 된다면, 우리 모두 매순간마다 잘못을 저질러온 셈이게. 부인의 칭찬에 조금도 솔깃하지 않듯이 비난에도 별로야. 스미스 부인의 땅을 걷는다거나 저택을 둘러본다 해서 무슨 나쁜 짓을 했다고는 생각 안 해. 그곳은 언젠가 윌러비 씨의 것이 될 거고, 또...."
"그곳이 언젠가 네 것이 된다고 해도, 메리앤. 네가 한 행동이 정당화되지는 않을 거야."
그녀는 이 언질에 얼굴을 붉혔으나, 흡족해하는 기색이 완연하였다. 십 분간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뜸을 들인 후에, 언니한테로 다시 와서, 아주 기분이 좋아서 말했다.
"엘리너 언니, 알렌험에 간 건 내가 좀 잘못 판단 했던 것 같긴 해. 그렇지만 윌러비 씨가 워낙 그 영지를 보여주고 싶어 해서 말야..."(93-94)
도덕적 판단과 이성에 따라 행동하는 엘리너는 에드워드 페라스에게 자신의 마음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다. 메리앤은 이런 언니를 답답해 하기도 하지만, 항상 언니를 살뜰히 챙겨준다. 예를 들어 에드워드 페라스가 루시가 아니라 자신과 결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처음으로 엘리너는 억눌렀던 감정을 드러낸다. 이때 메리앤은 언니 곁에서 위로하고 묵묵히 언니를 지지해 준다.
두세 시간 사이에 대시우드 가족의 마음과 행복은 엄청난 변화를 겪은 나머지, 그들은 모두 들떠서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대시우드 부인은 너무 행복해서 가만있질 못하면서, 에드워드를 너무너무 사랑한다고, 엘리너더러 잘했다고, 그가 섬세한 마음을 다치지 않고서 놓여난 것이 고맙다고, 둘이 거리낌없이 대화를 나눌 시간을 당장 주고 싶다고, 그렇지만 두 사람을 지켜보며 같이 있는 것이 너무 좋다고 마르고 닳도록 말하였다.
메리앤은 눈물로만 자신의 행복을 표현할 수 있을 뿐이었다. 비교가 되고, 회한도 일었던 것이다. 그녀의 기쁨은 언니에 대한 사랑만큼이나 진실한 것이었지만, 좋아서 날뛴다거나 떠벌릴 일은 아니었다. (481)
메리앤은 이 장면에서 언니에게 판단이나 조언을 하기 보다는 말없이 공감해주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소설 초반에서 그녀가 보여주었던 감정의 흘러넘침이 아니라 절제와 배려가 돋보인다. 이는 그동안 언니와 나누었던 무수히 많은 대화들에서 그녀 스스로 내적으로 성장하고, 이성과 감정의 균형을 이루는 법에 대해 자연스레 터득했을 거라는 예상을 갖게 하는 부분이다. 엘리너와 메리앤의 균형은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의 완벽한 균형을 보는 듯 하다. 그들은 이성과 감성의 대립관계가 아닌 서로 배우고 보완해주는 관계로 나아가고 있다.
18세기 영국은 냉철한 이성중심주의 사고를 강조한 계몽주의 사회였다. 타인의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도덕적 판단의 근거가 되는 감정적 공감을 뜻하는 감수성(sensibility)을 바탕으로 잘 공감하는 능력이 도덕적으로 좋은 인간의 조건이라는 데 많은 이들이 의견을 같이 했다고 본다. 결국 이성과 감성이 조화를 이룬 인간을 향한 열망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