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제인 오스틴의 어휘, tolerable
우리에게 각인된 몇 장면 중에 첫번째는 메리턴 무도회의 장면이다. 엘리자베스와 다아시 씨가 처음 만나는 장면이고 소설의 제목처럼 그들의 '오만'과 '편견'이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다아시 씨는 무도회에서 엘리자베스를 두고 자신의 마음을 동하게 할 만큼 예쁘지않다고 차갑게 말한다. 다아시 씨의 오만한 첫인상이 엘리자베스에게 깊은 편견을 심어주며 앞으로 그들의 관계가 순탄하지 않을거라는 예고가 되는 장면이다.
"이 방에서 미녀라고는 바로 자네와 춤추는 아가씨 하나뿐인걸." 다아시 씨는 베넷 집안의 맏딸을 바라모면서 말했다.
"그야! 저렇게 아름다운 사람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어! 그렇지만 저 아가씨 동생 하나가 바로 자네 뒤에 앉아 있는데, 퍽 예쁘게 생겼고, 뭐, 성격도 아주 좋아 보이네. 내 파트너한테 자네 소개를 부탁하지."
"누구 말이야?" 그러고는 몸을 돌려 잠시 엘리자베스를 바라보다 눈이 마주치자 눈길을 거두고 냉정하게 말했다. "그럭저럭 봐줄만은 하군. 그렇지만 내 구미가 동할 만큼 예쁘지는 않아. 그리고 난 지금 다른 남자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여자들을 우쭐하게 해줄 기분이 아니네. 자넨 돌아가서 파트너의 미소나 즐기라고. 괜히 나하고 시간 낭비하지 말고 말이야."(20)
"그럭저럭 봐줄만은 하군."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기분일지 굳이 긴 설명이 필요없을 것 같다. 이 대목의 영어 문장을 찾아보자. 그 의미를 더 정확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She is tolerable; but not handsome enough to tempt me; and I am in no humour at present to give consequence to young ladies who are slighted by other men."
"봐줄만하다"의 원 영어 단어는 "tolerable"이었다. 이 단어는 '참아줄 만하다,' 혹은 '그저 그렇다'의 뜻으로 귀족 사회에서 여성을 외모로 평가할 때 쓰는 아주 무례하고 차가운 표현이라고 한다. 다아시 씨의 오만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단어이다. 이어지는 말도 무례함의 연속이다. 'in no humour'는 '~할 기분이 아니다'라는 뜻으로서 무도회의 들뜬 분위기에 섞이고 싶지 않겠다는 의지의 말이다. 또한 'to give consequence to~'는 '~에 중요성을 부여하다' 혹은 '누군가를 중요하게 대우하다, 가치를 부여하다'의 뜻으로 다아시 씨는 엘리자베스와 춤을 추는 행위 자체가 그녀에게 과분한 대우를 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더군다나 혼자 있는 엘리자베스를 'slighted(무시당하다, 외면당하다)' 여성으로 묘사하면서 파트너가 없어서 서 있는 여성들 무리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교제를 시작하려고 할때 이런 말을 상대에게 듣는다면 더 이상 그를 만날 용기가 나지 않을 것이다. 다아시 씨의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고 있으니 말이다. 이 소설에서 "tolerable"은 편견의 씨앗이 되는 어휘가 되어, 엘리자베스도 다아시 씨에 대한 편견을 갖기 시작한다.
제인 오스틴은 <오만과 편견>에서 이 단어를 여러번 사용한다. 그 중에서 다아시 뿐만 아니라 속물적인 캐릭터인 캐롤라인 빙리도 이 단어를 상대를 공격하는 무기로 쓴다. 엘리자베스를 시기하는 캐롤라인 빙리는 다아시 씨 앞에서 그녀를 깎아내리면서 말한다. 그녀의 안색은 전혀 빛나지 않고 치아는 봐줄만 하지만 전혀 특별하게 없다는 등 말이다.
"저는 한번도 그 여자한테 예쁜 구석이 있다고는 생각해 본 적 없어요. 얼굴은 비쩍 말랐고, 안색에는 윤기가 없어요. 이목구비도 어디 한 군데 내세울 데가 없고요. 코는 개성이 없고, 콧날에도 아무 특징이 없잖아요. 치아는 그런대로 괜찮다 해도 그저 보통 정도고, 눈을 두고서 아주 예쁘다고들 하기도 합니다만, 저로선 뭐 특별한 데가 있는지 모르겠어요."(373)
I must confess that I never could see any beauty in her. Her face is too thin; her complexion has no brilliancy;and her features are not all hansome. Her nose wants character;there in nothing marked in its lines. Her teeth are tolerable, but not out of the common way; and as for her eyes, which have sometimes been called so fine, I never could perceive any thing extraordinary in them.
엘리자베스에게 "tolerable"이 참을 수 없는 어휘로 인식되는 이유는 그 어휘가 품고 있는 또 다른 의미가 있어서이다. 이 단어는 당시에 여성들이 외모와 재산 조건에 따라 결혼 시장에서 등급이 매겨지고 있음을 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만약 다아시가 엘리자베스를 외모로 평가하기 보다는 그녀의 인성과 내면의 가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면 그 말은 다아시에게서 쉽게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이 말은 다아시와 캐롤라인 빙리의 계급적 우월감에서 비롯한 평가절하의 말이라는 것을 엘리자베스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가 다아시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하는데 다아시가 쓰는 어휘가 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처음에는 "참아줄 만하다"고 했던 다이시는 이내 엘리자베스의 "아름다운 눈(fine eyes)"에 매료되면서 찬사의 어휘들을 하나씩 하나씩 풀어놓기 시작한다. 엘리자베스는 다아시가 이전에 자신을 "tolerable"이라고 했던 말과 태도를 기억하면서 쉽게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다. 다아시는 자신이 내뱉은 말들 때문에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거절당하는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하지만, 다아시는 "I have been a selfish being all my life, in practice, though not in principle." (원칙은 그렇지 않았을지 몰라도, 저는 평생 이기적인 인간으로 살아왔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예전의 다아시가 아님을 호소한다. 소설 후반부에 엘리자베스의 동생 리디아가 위컴 씨와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였을 때 그것은 엘리자베스 가문에는 부끄럽고 치명적인 사건이였다. 이때 다아시는 직접 나서서 돈으로 해결해주면서 그 추문을 가라앉혀준다. 엘리자베스가 그에게 고마움을 전하자 다아시는 그 모든 것이 "당신만을 위한 것이었다"고 하면서 엘리자베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자신의 명예와 돈을 아끼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이쯤 됐을때 엘리자베스에게 "tolerable"이라는 말의 상처는 조금씩 누그러지고 있었다. 이때 다아시는 "저의 감정과 소망은 변함이 없다"고 말하면서 두 번때 청혼을 한다. 예전의 오만함은 사라지고, 오로지 엘리자베스의 의사를 존중하면서 자신의 변치않는 사랑을 겸손하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