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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잘것 없던 로마가 위대한 제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좋아서 하는 공부 <로마편> _로마의 힘은 무엇인가?

by 채자영

로마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다시 찾아간 콜로세움은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서 있다.(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 '좋아서 하는 공부 <로마편> 그 시작에 부쳐_천년의 제국, 왜 로마인가?'를 참고하시길) 웅장한 건축물 뒤로, 보잘 것 없던 로마가 위대한 제국이 되기까지 겪었던 수많은 인간사의 '스토리'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어제와는 다르게 자신의 영혼을 찾은 듯 더욱 거대하고 우람한 모습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콜로세움에서 포로 로마노로 가는 길, 한 걸음 한 걸음 내딪을 때마다 왠지 모를 경이로움에 온몸이 전율한다. 내가 지금 밟고 있는 이 땅이, 이 돌덩이가 수 천년 전 로마의 시민들이 밟았던 그 것이기에. 나는 계속해서 지금 이 순간의 로마 보다도 과거의 로마를 상상하며 길을 걷는다.



지금까지도 로마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1,000년이라는 유구한 역사 속에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부터 사치와 향락의 부패한 모습까지, 모순되는 인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기 때문이리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제국이었던 로마는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에 걸쳐 광대한 영토를 지배했다. 많은 역사가들은 궁금했다. 주변 국가 보다 늦게 주목받기 시작한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고 지중해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지중해를 자신들의 호수로 만들어버린
'로마의 힘'은 과연 무엇일까?
보잘 것 없는 도시국가에서 지중해 전역을 장악한 로마 제국 최대 영토 모습




역사적으로 지중해 전역을 통일한 국가는 로마가 유일하다. 이렇게 로마는 서구문화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헤아릴 수 없는 영향을 끼친다. 장구한 세월 서양 세계를 지배한 로마 제국의 힘, 많은 역사가들은 비슷한 의견을 비추는데, 그 힘을 '실용적 사고''약자(식민지)에 대한 관용' 그리고 로마의 '개방성'에서 찾는다.


로마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실용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실용의 바탕 위에서 로마는, 천 년의 세상을 지배했다.


로마는 형식과 절차에 얽매이지 않는 정책을 통해 자신들의 입지를 다져나갔다. 출신을 가리지 않고 능력에 따라 등용했고, 적의 문물이라고 해도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받아들이는 개방성이 있었다. 또한 점령한 지역의 주민들에게 동등한 '시민권'을 부여함으로써 자신들과 똑같은 권리를 주었다.


이는 로마가 가장 처음 만들어진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는데 로마는 원래 다민족으로 만들어진 나라다. 수많은 명화의 소재로 사용되는, 지금 보면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사비니 여인 강탈 사건'을 보자.


니콜라 푸생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 1633-34경, 캔버스에 유채


위 그림을 보면 건장한 남성들이 여인을 강탈하고 있고 이를 막기 위해 그녀의 아버지들이 필사적으로 달려드는모습을 볼 수 있다. 심지어 아이들이 땅에 내팽겨진 채, 유부녀를 가로채는 모습도 보인다. 로마를 건국한 1대 왕 로물루스는 인구증가를 위해 안정적인 가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당시의 로마에는 여인이 부족했다. 고민 끝에 로물루스는 이웃 부족들을 초대하여 성대한 축제를 여는데, 이것은 축제를 가장한 여인강탈이었다. 이웃 부족 중 가장 강력한 부족이 바로 사비니였고 축제에서 강탈당한 사비니 여인들은 로마인의 아내와 어머니가 되었다고 한다. (오 마이 갓! 울부짖는 아버지와 아이들의 소리가 여기까지 느껴지는 듯 하다.)


이를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는 사비니족은 로마와의 전쟁을 선포하지만 이미 로마인의 아내가 된 사비니 여인들의 적극적인 중재로 전쟁을 조기에 끝낼 수 있었다.


자쿠 루이 다비드 <사비니 여인들의 중재> 1799경, 캔버스에 유채


역사가들은 강탈의 표적이었던 여인들이 평화 중재에 나섰다는 점을 보며 로물루스의 정책이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한다. 외국영화를 보면 신랑이 신부를 번쩍! 안고 문턱을 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그 풍습이 바로 이 사건에서 비롯됐다고.


1대왕 로물루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자신 역시 사비니 여인과 결혼을 한다. 또 사비니 부락민 전체를 로마로 이주시키고 사비니의 왕 '타티누스'까지 로마 공동 왕으로 추대한다. 여기에 시민권과 투표권, 원로원 의석까지 사비니족을 완전한 로마 시민으로 받아들인다. 전쟁 후에 패배한 약자, 사비니족을 자신들과 동등하게 인정하고 흡수시킨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패자들까지 자신들에게 동화시킨
이 방식이야말로 로마를 번영시킨 요인


플루타르코스는 "패자들끼리 자신들에게 동화시킨 이 방식이야말로 로마를 번영시킨 요인"이라고 말했다. 로물루스 이후에도 로마는 많은 식민지를 통치하는데 이때와 같은 포용정책을 취했고, 이는 로마에 관한 거의 모든 역사서에서 빠짐없이 언급될 만큼 중요한 로마 부흥의 주요 요인이다. 외국인, 외국인과 결혼한 자에게 시민권을 내어주지 않았던 스파르타와는 다른 처사였다. 이미 로마의 식민지는 자신들이 식민지가 아니라 로마의 시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로마는 그렇게 주변의 많은 것들을 흡수하며 빠르게 성장해갔다. 로마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이유는, 다양한 세계를 흡수하며 자신만의 것을 새롭게 창조해낸 '로마제국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2017.01.04

Chae




1. 좋아서 하는 공부 <로마편> 그 시작에 부쳐_천 년의 제국, 왜 로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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