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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자영 Jun 24. 2021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될 수 있을까?

방황의 시간을 삶의 지도로 바꾸는 방법에 관하여


늘 치열한 경쟁 현장에 내던져졌다. 나는 마치 당연한 듯이 그런 환경에서 자라왔다. 그런 내가 '스토리'라는 단어 하나를 부여잡고 세상의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겠다는 '필로스토리'를 창업한 것은 어찌 보면 삶의 탈출구 같은 선택이었다. 필로스토리는 현재 예술경영을 공부한 해리와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될 수 있을까>는 필로스토리의 공동대표 김해리의 첫 독립출판물이다. 나는 그녀가 얼마나 진심을 다해 이 책을 만들었는지 잘 알고 있다. 섣부른 칭찬이나 독려에도 꿈적하지 않던 그녀가 드디어 책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언제나 그녀의 생각과 이야기에 위로받고 감동받았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녀만의 특유의 다정함이 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그런 다정함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있었다. '꼬불 꼬불' 스스로를 찾기 위해 무단히 애쓴 순간, 눈물을 적시며 나의 반짝임을 드디어 바라본 순간, 용기를 가지고 타인이 아닌 나의 이야기를 적어 내려 간 순간까지 이 책에는 지난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그 시간의 궤적을 쫓다 보니 어느새 책의 마지막 장에 다다르게 되었다. 아픔을 경험해본 사람만이 타인의 아픔을 제대로 바라봐줄 수 있다고 했던가. 그녀는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진심을 다했고 그 애씀의 과정은 아마 세포 하나하나에 각인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진심을 다한 그 시간이 다른 사람의 반짝임을 바라봐줄 수 있는 마음과 여유를 주었을 것이다. 스스로를 위해 치열하게 방황했던 그 시간이 그녀의 다정함을 만들었으리라, 생각한다.


고백하자면, 나는 학교 생활을 마음껏 즐기지 못했다. 내 마음의 속도가 성장의 속도보다 빨랐기 때문이다. p.15


고백하자면, 나는 늘  마음의 속도가 성장의 속도보다 빠른 편이다. 누군가가 보기에 꽤나 잘해오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왜인지 모르게 나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불안’이라는 감정이 함께하고 있다. 이제는 이런 불안감을 좀 내려두어도 되지 않겠냐고 스스로에게 묻지만 쉽지 않다. 그리고 그녀의 문장에서 내가 왜 불안한지 찾을 수 있었다. 나는 늘 마음의 속도가 빠른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모른다'는 사실을 입 밖으로 낸 것이 그때가 처음이었다. 앞을 모른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주변의 사람들은 나에게 마음의 방향이나 감정이 아니라 예상 성과나 결과를 물어봤고, 나는 내가 명쾌한 답을 하지 못하는 것이 불안했다. p.16


나 역시 "넌 도대체 무엇이 하고 싶은 거냐"라고 물었던 누군가의 질문에 눈물을 펑펑 쏟은 적이 있다. 나도 나의 속마음을 잘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있기에, 이 눈물이 있었기에, 고민과 방황의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이때의 방황을 조금 더 즐겨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늘 내 안에 있다.


'예술가로 성장한다는 것은 단점을 하나씩 없애서 흠 없이 무난한 상태로 변하는 일이 아니라 누구와도 또렷한 장점 하나 위에 자신을 세우는 일이라고 말해볼 수도 있겠다. '는 그의 말을, 스스로에게 적용해 주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단점이 없는 완벽한 사람이기보다는, 또렷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초라하게 느껴질 때마다 이 마음을 기억하고 싶다. p.31


해리와 함께 있을 때, 나는 늘 신이 난다. 그리고 이 문장을 통해 나는 왜 그렇게 신이 났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늘 단점이 아니라 누군가의 또렷한 장점을 바라봐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녀 곁에 있으면 편안했고 또 자유로웠다. 서로의 단점이 아닌 장점을 바라보는 사이는 얼마나 아름답단 말인가. 나는 새삼 실감했다.


우열이 아닌 다름을, 개개인의 다양한 표현을 이야기하는 철학은 큰 영감이 되었다. p.39


'우열이 아닌 다름을, 개개인의 다양한 표현을 이야기하는 철학' 해리가 첫사랑처럼 사랑했던 일 프린지, 그 프린지의 철학은 이야기를 만들기로 결심한 나에게도 큰 영감이 된다. 승리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긴장감. 내 삶을 이끌어가던 이 긴장감을 놓아주고 이제는 새로운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이기도 하다. 1등만 기억된다거나 승자만이 모든 것을 독식하는 사회가 아닌 다양한 이야기가 다채롭게 펼쳐지는 세상. 우열을 가리지 않고 존재 자체로 모두가 인정받는 세상. 나는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필로스토리에서 하는 다양한 활동들이 그런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이라고 믿는다.


내 일의 의미를 자신의 언어로 읽어내지 않으면, 그 일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되어 주지 않고 희미해지고 마는 것 같다. p.42


빠르게 변하는 세상. 이 속도가 가끔은 질리기도 한다. 나는 분명 많은 일을 하고 있는데 마음 한 구석이 공허할 때가 있다. 분명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도 불안감과 불만족이 계속 쌓이는 이유는 뭘까. 이런 기분이 드는 날이면 대부분 어떤 일을 한 후에 그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 일의 의미를 자신의 언어로 읽어내'는 시간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열심히 했던 것들이 내 것이 되지 못하고 희미해지고 내 손을 떠나가기 때문이다. 시간을 들이는 일. 시간을 내어 나를 돌아보는 일. 그것이 무엇보다 우선순위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저 즐거움으로 시작한 일인데, 이 일이 다른 사람에게도 행복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의 순수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는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것 같다. p.68


내 안에 갇혀 있을 땐 보이지 않았던 것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새롭게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p.93


나의 이야기를 왜 굳이 타인에게 해야할까? 종종 이런 질문과 마주한다. 우리는 세상을 홀로 절대 살아갈 수 없다.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늘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또 그만큼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며 살아간다. 나의 이야기를 전하는 일은 서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서로를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공감을 하고 이를 통해 위로를 얻는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구나, 내가 느꼈던 이 두려움과 불안감이 나에게만 오는 것은 아니구나, 깨닫는다. 나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분명 누군가에게는 깨달음을 누군가에게는 위로를 누군가에게는 새롭게 시작할 용기를 준다. 여기서 더 나아가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에 영향을 주고받는다. 내가 발견하지 못한 나의 반짝거림을 누군가는 알아봐 준다. 그게 또 새로운 삶의 동력이 된다.


그러면서 내가 '욕망'이라는 단어를 너무 무겁게 생각했다는 걸 깨달았다. '이뤄야 하는 것'이 아닌 '해보고 싶은 것'으로 치환해서 생각해보니 정말 많았다. p.107


자주 해리에게 ‘욕망’에 관해 물었다. 나의 욕망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가장 인문학적으로 살아가는 삶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나의 욕망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치열하게 물고 늘어지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래서 내 곁에 있는 해리에게도 습관처럼 물었다. 그리고 그녀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아야 필로스토리의 미래도 그려나갈 수 있었으니, 그녀에게 욕망을 묻는 것은 나에게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의 이 직선적인 언어가 누군가에겐 당황스러울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해리에게 내 언어를 다시 설명하는 순간, 나의 언어는 풍성해졌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 아닌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의 생각을 말하고 설득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 것이다.


결국 무언가가 된다는 것은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 같다.
p.124




나는 왜 그녀와 함께하고 있는가? 늘 생각한다. 우리는 아주 다른 듯 참 비슷하다. 해리와 함께하면 몇 날 며칠을 밤새우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만 같다. 차갑고 냉철하게 결과와 성과로서 나를 증명해내야 했던 환경을 스스로 벗어나 그녀와 함께하게 된 것.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사랑하고, 시간을 내어 기꺼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 구석구석 찾아다니는 그녀와 함께하게 된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녀가 나의 구원자일 수도 있겠구나.


무엇보다 해리답게, 이 책은 참 아름답다. 얼마나 정성들여 만들었는지 표지에서부터 느껴진다. 직접 쓴 글씨체의 제목을 책등에 넣은 것이나, 표지의 코팅, 그리고 내지의 질감까지 모두 해리답다. 책과 함께 부록으로 실린 커리어 스토리 툴킷 북은 그동안 필로스토리에서 자칭 ‘디자이너’로 활동해 온 그녀의 실력이 여과 없이 드러나 있다.


지금, 방황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또 지금 나의 커리어를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두 손 모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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