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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자영 Sep 26. 2020

우리에겐 롤모델이 아니라 레퍼런스가 필요하다

제발 롤모델 좀 그만 보여줄래


삶의 다양한 레퍼런스가 필요하다

내 남편은 정말 평범한 대한민국 평균치의 남성이다. 그냥 대부분의 생각이나 생활습관이, 드라마에 나올 법한 보통의 평범한 남자라는 말이다. 나는 아주 평범한 일상에서 조금 비틀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고, 또 내 주변에는 기존의 사회적인 통념을 거부하며 살아가는 친구들과 지인들이 아주 많다. 삶의 다양성을 보는 날들이 더 많아지고 있고, 나는 이것을 아주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일종의 안도감이랄까. 이렇게 살아도 또 저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라는 진짜 내 마음대로 살아보겠다는 마음 같은 것이 생기는 일이기도 하다.




롤모델의 시대는 가고
레퍼런스의 시대가 온다


얼마 전 위커넥트 대표 김미진 님이 폴인에서 한 이야기를 보고 너무 좋아 바로 캡처 해두었다. 이 문장을 읽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위안이 되던지.


3년 전, 정규직을 퇴사하고 연봉계약직으로 재입사를 했다.


삶의 다양한 레퍼런스가 필요하다는 말. 이 말을 듣고 얼마나 가슴을 내려쳤는지 모른다. 3년 전 퇴사를 하고 스타트업 씬으로 나를 내던졌던 일, 그리고 작년 4월 필로스토리라는 스토리 개발 전문 그룹을 창업한 일이 나에게 얼마나 '다행'인 일이었는지 문득문득 깨닫는 날들이 많아진다. 처음 퇴사를 하고 주 2회 출근을 하며, 주 3일은 대기업 회사원이 아닌 프리워커의 삶을 살게 되었다. 그때 나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하며 다녔다.


퇴사하고 나와서 본 세상은
정말 별세계야!


사실이었다. 대기업이라는 대한민국의 평균 아니 보통의 일상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는 삶을 벗어나자 내 눈 앞에 다이나믹한 이야기들이 펼쳐졌다. 그런데 그렇게 홀로 마주한 다이나믹한 별세계 역시 필로스토리를 창업하고 만난 것과 비교하면 빙산의 일각이었다.



삶의 다양한 레퍼런스가 생겼을 때 일어나는 일

스토리 개발 전문 그룹 필로스토리는 예술 문화를 기획하던 해리와 함께 공동 창업을 했다. 예술. 그래, 영어로 artist. 해리는 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의 영역이 아닌 생활에서 발현되는 생활예술에 관심이 많아 그 분야에서 다양한 경력을 쌓아오고 있다. 결국 자신의 삶을 창조적으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예술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곁에는 정말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있었다.


어반플레이와 함께 오픈한 연남동 <기록상점>의 모습.


나는 일반적으로 수면 위에 아주 많이 노출되고 올라와 있는 삶, 그러니까 대학생 시절 '롤모델'이 될만한 삶이라든가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가 만들어온 성공신화라든가, 10대는 이래야지, 20대는 이래야지, 30대는 이래야지, 하는 일종의 롤모델로 가득한 삶에서 해방되는 기분이었다! 이 어찌나 즐겁고 유쾌한 일이던지! 그저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양하게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큰 위안이 되었다.


그런데 아직도 나는 30년 동안 사회적으로 학습당하고 익숙한 사회적 통념이 내 뼛속 깊이 자리 잡고 있음을 문득문득 깨닫는다.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이 아닌 것 같은데 맹목적으로 성취하려고 고민하는 나를 바라보며 깨닫는다.


이번 생엔 글렀어

요즘 부쩍 남편이 한남동의 집을 많이 보여준다. 이제 내년 8월이면 우리는 전세로 있는 이 집을 나가야 하고 새로운 집을 찾아야 하는데 늘 대안은 2가지이다. 이 동네에서 조금 평수를 넓혀 이사를 가거나, 혹은 아예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가거나. 지금 살고 있는 동네도 참 좋고 마음에 들지만 왠지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지금 아니면 이 동네를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다른 동네에 산다는 건 어떨까 궁금하기도 하니까.


그러던 찰나 남편에게 한남동 집을 보여주었다. 한남동 집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평범한 아파트와 다르게 집의 구조가 조금 독특해 마치 해외에 있는 집처럼, 마치 일상을 여행처럼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한남동의 집값이 무지하게 비싼 건 알지만 그래도 꿈은 꿀 수 있으니까, 무심코 던진 말이었고 또 보여준 나의 꿈이었다. 그런데 그 날 이후로 남편이 계속 한남동 집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나는 무심코 던진 말이었지만 남편은 진짜 현실로 만들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는 것 같았고(?) 계속 한남동 집을 보여줬다.


그런데 한남동의 집을 보면 볼수록 마음이 불편했다. 대부분 한남동의 집은 매우 화려하고 또 말 그대로 삐까뻔쩍했다. 보여준 집의 가격을 들으면 더 뜨악했다. 저런 사람들은 이미 부자 집안에서 태어나 어느 정도 자산이 있는 상태에서 저런 집을 마련했겠지, 무심코 던진 내 말에 나는 또 한 번 놀란다. 그런 말을 하고 있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싫어지는 것이다.


이번 생엔 글렀어. 나는 어느새 이런 생각에 젖어 있었다. 저 정도 부자가 되는 건 이번 생엔 이루지 못할 것 같은데? 할 수 있을까? 나는 돈을 도대체 얼마나 더 벌어야 할까? 별별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럼 나는 또 저런 집을 위해 돈을 미친 듯이 벌어내는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걸까? 짜증이 치밀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그리는 삶의 장면들은 굳이 한남동에 화려한 집이 아니어도 가능한 것이고 오히려 내가 좋아하며 꿈꾸는 일상의 모습은 훨씬 소박한 모습이었다.




내가 그리는 삶의 모습

얼마 전 내가 좋아하는 찬빈이가 <찬빈네 집>이라는 독립 출판을 냈다. 내자마자 냉큼 사서 읽었는데 역시나 기대만큼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글이었다. 찬빈이의 삶은 늘 그랬다. 편안하고 안온했다. 아주 많은 걸 소유하지 않아도 충분히 자신의 결을 지켜나가고 있었고 자신의 취미를, 자신의 삶을 멋지게 살아내고 있는 친구였다. 찬빈이와 같은 삶을 내 방식으로 해석한다면 어떤 삶일까. 아이와 함께 포근하고 안온하게 살기 위해서는, 우리 세 식구가 우리만의 취향을 견고하게 지켜나가며 각자의 취미를 즐기며 살아가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보았다.


올해 여름 가족여행으로 함께 간 100년된 고택, 백미응서재에서



일단 창가에는 늘 초록빛이 머물었으면 좋겠다. 창가뿐만 아니라 집 주변에 나무가 많았으면 좋겠다. 자영듀토피아(사실 우리집에도 이름이 있다)의 키 컬러는 베이지&우드 톤이고 종종 팝한 컬러로 포인트를 주고 싶다. 가구는 몇 개 없지만 하나하나 있는 가구들이 자신만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다. 비싼 값이라도 오래 쓸 수 있는 가구라면 이제는 조금 투자해서라도 집에 놓고 싶다. 특히 의자에는. 신혼 시절 인터넷으로 찾아 그나마 합리적인 가격의 체리우드 색상 나무 의자를 사서 지금까지 쓰고 있는데 (약 3년이 지났다) 다리가 삐걱거리고 허리가 아프다. 아이를 낳고 쭉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아 있으니 허리가 더 안 좋아졌다. 그때부터인가, 의자를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과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유럽에서는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만한 의자를 만든다고. 100년 동안 사용해도 거뜬 없는 의자. 그래서 유럽엔 그렇게나 빈티지 의자가 많은 것일까. 무조건 '새것이 좋은 것'이라 생각하던 관념도 이제는 벗어던지고 싶다. 이제 오래된 것, 시간이 축적된 것의 힘을 아는 나이니까.


우리 가족만의 취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집을 찾고 싶다.


거실에는 작은 셰리프 티비 하나 두고, 그 주변은 책장으로 채우고 싶다. 책장과 스피커. 나와 아이는 나란히 곁에 앉아서 서로 읽고 싶은 책을 읽는다. 음악을 들으면서. 나는 커피를 마시고 아이는 핫초코를 마신다. 그때 남편은 옆에서 치킨을 먹고 있겠지. 후훗.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


왜 티비에는 롤모델만 나올까

왜 티비에서는 롤모델만 보여주는 걸까. 왜 티비에는 성공한 사람만 나오고 평범하게 사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는 재미있게 흥미롭게 다루지 못하는 걸까. 누군가가 제발 <너는 어떻게 사니?>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좀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사회가 정한 롤모델로 이것저것 비현실적으로 삐까뻔쩍하게 살아가는 삶 그런 집이 아니라 그저 평범하게 하지만 자신만의 결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그런 집의 모습을 다양하게 보여줬으면 좋겠다. 그런 프로그램이 있다면 프로그램 시간 알람을 맞춰놓고 볼 텐데.


자영듀토피아.


롤모델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 사회적으로 정답처럼 내려오던 성공신화는 통하지 않는다. 세상이 변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그 신화를 믿지 않는다. 통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삶에 정답은 없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고 말하는 롤모델은 제발 그만 보여줬으면 좋겠다. 다만 사람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그러니까 너의 삶도 충분히 너의 위치에서 멋지게 살아낼 수 있다고, 그런 이야기를 해줬으면 좋겠다. 올드 미디어에서 언제쯤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The Last Dance>에서 마이클 조던은 말한다. 만약 내가 다시 인생을 산다면 절대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지 않을 거라고. 이건 마치 지는 게임을 하는 것과 같다고.


뼛속까지 깊숙하게 나를 차지하고 있는 롤모델의 모습과 성공신화를 제발 벗어버리고 싶다. 부디, 현명하게 내가 나의 길을 찾아갈 수 있기를. 지금도 나는 충분히 잘 살아가고 있는데 굳이 왜 더 노력해야 하고 또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야 할까? 언제까지 불안해야 할까. 세상도 나와 함께 변화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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