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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자영 Dec 29. 2019

네가 처음 오던 날.

너에게 쓰는 편지


아가야,

네가 처음 나에게 온 날을 기억한다.


그날은 아마 절대 잊지 못할 거야.

너의 존재를 알고는 너의 아빠는 볼이 발그레해져들뜬 얼굴로 소리를 질렀단다. 엄마는 그 모습을 흐믓하게 바라봤지. 우리는 꽤나 놀라 토끼눈을 하고는 한동안 서로를 마주 보았어. 기쁨과 두려움과 설렘과 불안감이 별안간 마음 속에서 일렁였지. 그게 꼭 ‘무엇이다’라는 감정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아주 복합적인 감정이었단다.


네 아빠는 그렇게 발갛게 상기된 얼굴을 하고는 밤 12시에도 문을 여는 약국을 찾아 종류별로 임신 테스트기를 사왔어. 그리곤 모든 검사기에서 희미하게 하지만 분명한 두 줄을 우리는 함께 보았지. 짠이 네가 우리에게 온 거야.


엄마는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두려웠어. ‘엄마’라는 단어는 뭐랄까- 아직은 저 멀리 있는 내가 가질 수 없는 단어라 생각했거든. 그런데 이렇게나 갑작스럽게 엄마가 ‘되어버린’ 거지. 나에겐 너무나 먼 이야기라서 단 한 반도 너와의 만남을 생생하게 상상해보거나 꿈 꿔본 적은 아직 없었단다. 그렇다고 서운해하진 말아. 엄마도 충분히 가슴 벅참을 느꼈으니까. 이제 생의 또 다른 단계가 열리고 그곳으로 네가 우리를 이끌고 있다는 생각에 말이야.


아가야, 게으른 엄마는 늘 나의 생만 생각하다가 이렇게 나에게 보내는 편지는 너와 함께한지 벌써 200일이 다 지나서야 쓰게 됐구나.


지난 시간 동안 내가 겪었던 많은 감정의 변화와 몸의 변화들을 차분히 되짚어보려 해. 먼 훗날 그리워질 이 순간을 위해서.


2019년 12월 29일

너와 함께한지 202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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