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윤 작가의 <퇴사는 여행>
좋아하는 책을 사서는, 책장에 두고두고 바라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이유인즉, 그 책에 가장 잘 들어맞는 나의 상황이 찾아왔을 때 그때 비로소 그 책을 읽고 싶기 때문이다. 책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가장 잘 느끼고 싶기에. 기대없이 무심코 집어든 책이 아니라면 더더욱 그런 버릇이 생겼다.
그리고 혜윤이의 <퇴사는 여행>이라는 책도 올해 초 나의 책장에서 오래두고 바라보기만 했다. 너무 읽고 싶고, 가지고 싶은 책이었지만 지금 나의 상황에서 읽기엔 뭔가 아쉬움이 있었다. 이제 막 일을 시작하는 나에게 ‘퇴사는 여행’이라는 제목이 마치 ‘모든 걸 그만두고 너의 삶을 살아.’라고 말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나의 생각은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어제부로 와장창 무너졌다. 오히려 이 책 안에 담긴 의미가 제목에 다 담기지 못해 아쉬운 마음도 있었다. 아니 어쩌면 지난 경험과 사회적인 관념에 의해 형성된 ‘퇴사’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 그 안에서 나는 이미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퇴사’를 하고 ‘여행’을 떠나면서 저자가 경험하는 ‘인생’에 대한 책이다. 더 큰 세계에서 더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채로운 콘텐츠를 바라보며 그녀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바로 곁에서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각각의 챕터 별로 그 글과 같이 들으면 좋을 음악까지 큐레이션 되어있어, 저자와 같은 마음 혹은 같은 감정으로 책에 몰입하는 재미가 있다.
내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 그리고 콘텐츠들을 만나는 재미가 이 책의 또 다른 포인트다. 나 역시 기존에 스쳐 지나가듯 들었으나 그 의미를 잘 알지 못했던 가사들을 곱씹으며 듣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특히나 그녀의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을 읽는 것 자체로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나는 모험을 좋아한다. 하지만 어쩌면 나의 모험은 내가 주어진 환경 반경 안에서 좁고 깊게 한 모험일 테다. 내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모험들을 많이 경험했다고 생각했지만 이 책을 읽고 나는 굉장히 좁은 모험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더 넓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이 새롭게 나를 찾아왔다.
혜윤이는 진정한 모험가다. 아니, 이 책에서 처음엔 평범한 우리와 다르지 않지만 스스로를 다독이며 진정한 모험가로 성장하는 그녀를 만날 수 있다. 그녀의 경험의 흔적들을 하나 둘, 따라가다보면 왠지 모르게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마치 <슬램덩크>를 봤을 때처럼 이상하게 가슴이 뛴다.
I did it my way
“나도 너랑 똑같은 사람이야! 너도 할 수 있어!” 라는 메시지와 “I did it my way” 그리고 “아티스트가 되어라.”는 메시지를 보면서는 마음이 울컥했다. 내가 세상에 너무도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그녀는 이미 책을 통해 전해주고 있구나. 역시 너무 멋진 친구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좋은 생각과 글을 통해 기꺼이 자신의 경험을 나눠줘서 너무 고맙고 감사했다.
왜 이제야 이 좋은 책을 읽었는지, 왜 아껴두었는지, 그 시간이 아쉬웠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잠든 어제는 참 멋진 꿈을 꾸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거대한 자연이 나를 맞이하는 곳에 서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와 그 호수 속에서 자라나고 있는 웅장한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르고 있었다. 저 멀리 뭉개구름이 걸쳐있어 더욱 신비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한동안 넋을 놓고 그 풍경을 바라봤다. 그리곤 자전거를 타고 숲길을 달렸다. 특유의 숲에서 올라오는 기분좋은 습기와 향기를 온몸에 잔뜩 머금으며 달렸다.
혜윤이의 책 덕분에 가본 적 없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기분 좋은 꿈까지 선물받은 기분이다. 참, 침대 위 머리 맡에 두고 두고 읽고 싶은 책이다.
퇴사는 여행/ 정혜윤 작가/ 북노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