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역하는 말들

황석희 번역가로부터 배운 일의 태도

by 제이
황석희 번역가 <나 혼자 산다> 출연분

어떤 분야에서 '진짜 전문가'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우리는 종종 눈에 보이는 기술의 화려함이나 결과물의 속도에서 그 답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황석희 번역가의 신간 <오역하는 말들>을 읽으며 힌트를 찾았다. 일이란 기술 이전에 태도의 문제이며,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거다.


그가 자신의 작업을 통해 끊임없이 증명하는 것은 결국 두 가지 방향의 질문으로 요약된다.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라는 밖을 향한 질문과, '무엇으로 일하는가'라는 안을 향한 질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그에 대한 답을 '고객 중심'이라는 확고한 직업관과 '내실'이라는 단단한 성장 철학이라는 두 핵심 키워드로 정리했다.


궁극적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사람으로 인식되고 싶은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를
깊이 숙고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거다


메신저는 메시지보다 빛나서는 안 된다

황석희 번역가는 번역을 '창작'이 아닌 철저한 '서비스업'으로 정의한다. 특히, 오역에 있어 번역가로서 자존심을 챙기기보다 관람 경험에 지장을 주는 걸 걱정한다. 이는 번역 중심에 번역가 자신이 아닌, 메시지를 전달받는 '고객'을 두는 그의 확고한 직업관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러한 철학은 '드러나지 않으려는' 적극적인 노력으로 이어진다. 그는 번역가가 자신의 문체나 재치를 뽐내고 싶은 유혹, 즉 '초월번역'이라는 이름으로 원작 위에 서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경계한다. 최고의 찬사가 '번역이 좋았다'가 아니라 '영화(작품)가 좋았다'라는 그의 말처럼, 메시지를 전달하는 메신저가 메시지 자체보다 더 빛나서는 안 된다는 겸손함이 그의 작업 전반에 깔려 있다.


결국 이는 번역 기술을 넘어, 메시지를 전달하는 모든 창작자를 위한 직업적 태도에 관한 것이었다. 누군가의 생각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라면 그의 태도에서 깊은 울림을 얻을 수 있다. 진정한 전문성이란 화려한 자기 과시가 아니라, 전달해야 할 본질을 가장 정확하게 지켜내는 책임감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문제는 관객의 관람 경험에
지장을 주는 거다


내실은 서두르지 않을 때 단단해진다

이 책을 관통하는 또다른 핵심 가치는 '내실'이다. "힙하고 예쁘고 근사하면 뭐하냐 내실이 없는데"라는 저자의 일갈은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이나 기교보다 보이지 않는 깊이와 본질을 추구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그에게 좋은 번역이란 원작에 대한 깊은 이해와 수많은 고민이 응축된 결과물이다. 이는 비단 번역에만 국한되는 이야기일까? 그럴리 없다. 여느 삶 전반에 모두 적용 가능하다.


탄탄한 내실에 인내심은 필요조건이다. 저자가 "아이에게 때 이른 성숙을 요구해선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성장에 왕도가 없다는 믿음 덕분일 것이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 단계를 밟아나가지 않고 겉모습만 그럴싸하게 만든 결과물은 결국 속이 비어있기 마련이다. 진짜 실력과 성숙함은 지루하고 지난한 과정을 묵묵히 견디며 다져진다는 걸 잊지 말자.


덧붙여 ‘내실=정답’을 의미하지 않는다. 때로는 멍하니 보내는 시간, 당장 쓸모없어 보이는 경험들이 오히려 창의성의 자양분이 되고 내실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목표를 향해 성실히 나아가되, 그 과정 중에 있는 여백이 무용하다는 말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쩌면 이런 쓸모없는 순간들까지 기꺼이 껴안을 때, 우리 내실은 비로소 단단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힙하고 예쁘고 근사하면
뭐하냐 내실이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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