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색을 통해 아이들이 느끼는 감각과 즐거움
어른들은 비눗방울을 보며 "비누거품이네..."라고 무덤덤하게 말한다.
하지만 아이는 그저 "우와, 무지개다!"라고 소리친다.
누가 더 정확하게 세상을 보고 있는 걸까?
지난주 카페에서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는데, 옆 테이블 아이가 창가로 날아드는 비눗방울을 보며 깔깔거리고 있었다. 아이의 눈빛이 비눗방울을 따라 움직이는 걸 보니, 문득 우리가 잃어버린 게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는 '첫 번째 시선'이라는 게 있다.
모든 것을 처음 보는 듯한, 선입견 없는 날것의 시선. 비눗방울 하나에도 온 우주가 담겨 있다고 믿는 그런 눈빛 말이다.
우리 어른들은 언제부터인가 세상을 '설명'하려고 든다. 비눗방울의 무지갯빛을 보며 굴절률과 파장을 떠올리고, 아이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도파민과 세로토닌을 계산한다.
과학적 사실이 틀렸다는 게 아니다.
다만 그 '설명' 이전에 존재하는 순수한 경험, 그 자체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색깔만큼 아이들의 감각을 자극하는 것도 없다. 빨간색을 보며 "뜨거워!"라고 하고, 파란색을 보며 "시원해!"라고 말하는 아이들. 이건 단순한 연상이 아니라, 몸 전체로 색을 느끼고 있는 거다.
아이들에게 노란색은 그냥 '노란색'이 아니라 '햇살과 바나나와 웃음'이 뒤섞인 하나의 감정이다. 초록색은 '잔디 위를 맨발로 걷는 느낌'이고, 보라색은 '신비로운 마법사의 망토'다.
이런 공감각적 경험이야말로 창의성의 원천이다.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색을 분류하고 정의하려고 하지만, 아이들은 색을 '살아있는 존재'로 받아들인다.
비눗방울이 터질 때의 그 찰나. 무지갯빛이 사라지는 순간, 아이들은 아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또 만들어!"라고 손뼉을 친다. 이게 바로 아이들이 가진 '현재성'이다.
우리 어른들은 아름다운 순간을 붙잡아두려고 사진을 찍고 영상을 남긴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 순간 자체가 되어버린다. 비눗방울과 하나가 되고, 빛과 하나가 되고, 그 경험 전체와 하나가 된다.
그럼 우리도 아이처럼 세상을 볼 수 있을까? 불가능하진 않다. 다만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설명하기 전에 느끼기. 꽃을 보면 품종과 원산지를 찾아보기 전에, 그냥 그 꽃의 향기와 색깔에 온전히 집중해 보자.
둘째, 감각적으로 표현하기. '예쁘다', '좋다'라는 추상적 표현 대신, '솜사탕 같다', '바람 소리 같다'처럼 몸의 감각으로 세상을 묘사해 보자.
셋째, 놀이하기. 진지함도 좋지만, 때론 비눗방울을 따라 뛰어다니는 것처럼 몸 전체로 세상과 놀아보자.
결국 아이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건 이거다. 세상은 설명되기 전에 경험되어야 한다는 것. 이해하기 전에 느껴야 한다는 것.
다음번에 비눗방울을 보게 된다면, 잠깐이라도 과학적 설명은 접어두고 그 무지갯빛에 빠져보자. 그 안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경이로움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이의 "우와, 무지개다!"가 세상을 가장 정확하게 본 표현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