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족구와의 첫 만남
우리 아기가 처음으로 열이 났던 그 금요일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회사에서 아내의 전화를 받았을 때, 평소보다 한 톤 높아진 목소리가 내 심장을 쿵 내려앉게 했다.
"여보, 아기 열이 39도가 넘어. 소아과 가봐야겠어."
회사에서 급히 집으로 달려갔다.
6개월 된 우리 아기에게는 처음 나는 열이었다.
소아과에서 돌아온 아내의 표정은 어두웠다. 요로감염을 의심한다며 소변검사까지 했다고, 만약 요로감염이면 대학병원에 일주일 이상 입원할 수도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다행히 소변검사 결과는 음성이었다. 의사는 장염 기운이 있는 것 같다며 약을 처방해줬다. 그래,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첫째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안일함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12시, 아내의 다급한 목소리에 잠이 깼다.
"여보! 아기가... 엄청 많이 토했어!"
거실로 뛰어가보니 아내 품에 안긴 아기가 방금 전 먹은 분유를 분수처럼 토를 했다. 아기의 작은 몸에서 어떻게 저렇게 많은 양이 나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체온계를 대보니 39도를 넘나들었다. 우리는 완전히 패닉 상태였다. 낮에 소아과 의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분수토를 하거나 열이 심해지면 병원에 오세요."
새벽이라 응급실밖에 열려있지 않았다. 아기를 카시트에 태우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H대 병원으로 급히 차를 몰았다. 하지만 거기서 우리를 기다린 것은 절망적인 대답이었다.
"지금 소아과 당직의가 없어서 진료가 어려우니 119에 전화해보세요."
119? 정말?
아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119에 전화했다. 119에서는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A대학병원 소아응급실로 가라고 안내했다. 다시 아기를 카시트에 태우는 동안 아내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아기의 몸은 여전히 뜨거웠다.
A대학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 2시가 넘어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보호자 1인만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아내가 아기와 함께 응급실로 들어가고, 나는 차 안에서 기다렸다.
그 1시간이 1년처럼 느껴졌다.
차 안에 혼자 앉아있으니 온갖 생각이 들었다. 내가 뭔가 잘못했나? 아기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건 아닌가? 아내 혼자 저 안에서 얼마나 무서울까? 나는 왜 아무것도 할 수 없을까? 다행히 소아과 교수님 진료 결과 수족구로 진단됐다. 생각보다 흔한 질병이라며 일주일 정도 지나면 자연스럽게 낫는다고 했다. 약을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이후 일주일이 정말 길었다. 열이 쉽게 떨어지지 않아 동네 소아과를 여러 번 찾았고, 매번 처방받은 약을 먹이려 할 때마다 전쟁이었다. 인공 딸기향이 너무 강한 시럽약을 아기가 한 입 먹자마자 바로 구토해버리는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몸에 열이 있어도 아기가 처지지는 않았다는 것이었다. 여전히 웃기도 하고, 장난감도 가지고 놀았다. 아, 아기들의 회복력은 정말 대단하구나 싶었다.
일주일 후 아내가 평소 다니던 문화센터에 갔는데, 평소 10명 정도 오던 아이들이 3명밖에 오지 않았다고 했다. 알고 보니 그 문화센터에서 수족구가 유행했던 것이었다. 전국적으로도 수족구가 유행이라고 뉴스에서도 나왔다. 하지만 그 일주일 동안 나는 계속 출근을 했고, 아내 혼자서 밤새 아픈 아기를 돌봐야 했다. 새벽에 열이 오르면 해열제를 먹이고, 토하면 침대 시트를 갈아야 했다. 모든 걸 혼자 감당해야 했다.
어느 날 새벽, 일어나서 침실을 들여다봤다. 지친 얼굴로 잠든 아내 옆에 우리 아기가 평화롭게 잠들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콧등이 시큰해졌다. 아내가 너무 힘들었을 텐데. 내가 더 많이 해줘야 하는데. 아빠는 슈퍼맨이어야 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무력할까. 문득 앞으로가 걱정됐다. 아기는 자라면서 또 아플 일들이 있을 것이다. 더 큰 병에 걸릴 수도, 다칠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지금처럼 무력감을 느끼며 아내에게만 의존하고 있을 것인가?
우리는 이제 문화센터에 갈 때마다 소독 티슈를 챙겨간다. 아기가 만질 모든 장난감을 하나하나 닦아준다. 작은 실천이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육아서를 더 읽고 미친듯이 여러 정보들을 찾고 있다. 아기의 증상들을 미리 알아두려고 한다. 다음번에는 좀 더 침착하게 대처하고 싶다. 아내가 덜 힘들게, 내가 더 든든한 아빠가 되고 싶다.
첫 번째 응급실은 나에게 큰 깨달음을 줬다. 아빠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생물학적 아버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더 나은 아빠가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완벽할 필요는 없다. 다만 계속 배우고, 계속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