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해도 될까요?
며칠 전, 부서에 일이 있어 팀장님, 차석님들이 늦은 시간까지 퇴근을 못하고 있었다.
나도 저녁 10시까지 대기하다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팀장님께 “저 이제 퇴근하겠습니다.”라고 했는데, 너무 큰 소리로 말해서 퇴근하겠다는 내 말이 온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나는 그 순간 얼굴이 빨개지며 화들짝 놀랐다.
'다들 퇴근을 못하고 있는데, 내가 너무 큰 소리로 퇴근을 말했구나.
다른 직원들이 나를 개념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면 어쩌지?'
그때 차석님이 “어서 퇴근해”라고 말해줘서 재빨리 사무실에서 도망치듯 뛰어나왔다.
차 안에서 운전대를 내리치며 욕설을 했다.
‘나는 왜 이렇게 개념이 없나. 조금만 작게 이야기할걸.’
어이없는 실수를 한 나 자신이 미웠다.
집에 도착해서 아내에게 이 사실을 말하니,
내가 전혀 잘못한 게 없고 과민반응을 하는 것이라며 위로해 주었다.
만약 여보가 일하고 있는데, 옆 사람이 퇴근하겠다고 말하는 걸 들으면 여보는 어떤 느낌이 들 것 같아요?
별생각 없을 것 같아요.
퇴근할 때 윗사람들에게는 인사를 하고 퇴근을 하는 게 맞지요?
응.
자, 다시 같이 생각해 봐요. 여보가 퇴근한다는 사실을 남들이 들었을 때 기분이 나빴을까요?
안 그럴 것 같아요.
인사를 안 하고 퇴근할 수도 없는 거죠?
응.
그럼 오늘 여보가 잘못한 게 있나요?
없는 것 같아요. 휴. 다행이네요.
위와 같은 행동에 대한 정신과 선생님의 소견은 ‘강박증’이란다.
내가 고통을 겪고 있는 패턴은 다음과 같다.
① 언행을 실수했다고 느끼며 자책한다.
② 퇴근하고 아내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는다.
③ 아내는 내가 잘못되지 않았음을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④ 아내의 말을 듣고는 안심한다.
‘강박증’이란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어떤 생각이나 장면이 떠올라 불안해지고 그 불안을 없애기 위해서 어떤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질환인데, 내 경우에는 언행을 실수했다고 느끼는 대서 불안을 느끼고, 아내에게 털어놓음으로써 불안을 없애는 강박적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아내에게 자책을 털어놓는 것이 무의미한 행위이므로 끊을 것을 요청하셨고, 약물치료를 병행해야 한다고 하셨다.
이로 인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글쓰기'밖에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