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악재는 겹쳐서 온다고 했던가?
이직을 고민하던 사이 아내의 유산과 부모님 두 분의 암 소식을 들었다.
세상에서 나에게 가장 소중한 세 사람이 한꺼번에 아픈 것이다.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신혼 10년 차, 난임으로 갖은 고생을 하다 드디어 결실을 맺은 새 생명이 갑자기 사라졌다니.
평생 나를 돌보느라 고생하신 부모님은 이제야 좀 편하게 사시나 싶었는데 갑자기 약속이라도 한 듯 두 분 다 암에 걸리시다니.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이 생긴 걸까.
미친 듯이 불안했다. 아무리 심호흡을 해도 호흡이 가라앉지 않았다. 불안과 초조,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고 정신병적 증세만 심각해져 갔다.
일이 이지경이 되었어도 직장에는 나가야 했다. 주변에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일하면서 실수가 눈에 띄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불길한 생각이 들 때마다 혼잣말로 욕설을 내뱉었고 누군가 나를 부를 때면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식은땀이 났다. 회의석상에서는 눈앞이 노래지며 집중하지 못했고, 발언 차례에도 떨려서 말을 하지 못했다.
강박증은 더욱 심해져 퇴근 후 집에서 몸을 추스르고 있는 아내를 붙잡고 직장에서 내가 잘못한 게 무엇인지, 타인들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을지 사사건건 묻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내는 진지하게 정신과 진료를 권하였다. 나도 스스로 미쳐가는 것을 느껴 다음날 바로 정신과에 갔다. 의사 선생님은 강박증과 불안장애 증상이 있다며 약물을 처방해 주었다. 한 달쯤 약물치료를 받았을까. 약 복용 직후 잠깐 흥분이 잦아들고 나른해지는 듯한 느낌은 받았지만 효과는 일시적이었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떨림이 시작되었다. 출근할 때 주머니에 손을 넣으면 만져지는 약봉지의 감촉을 느끼며 이 직장을 계속 다니는 한 이 약을 평생 먹어야 할 것 같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하루에 수천 번도 넘게 퇴직을 고민했지만, 이 빌어먹을 직장은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쌓아온 모든 커리어였기에 쉽사리 포기할 순 없었다. 퇴직한다고 해도 이보다 나은 직장을 가질 수 있을 거란 자신감도 없었다.
이런 고통의 터널을 지나고 있을 때 내 유일한 낙은 블로그였다. 블로그에서 이웃들과 독서 스터디를 진행하며 하루 한 개의 포스팅을 올리고 있었는데, 주변 일이야 어찌 됐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동안에는 몰입해서인지 잠시나마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한 문장, 한 단어에 온 마음을 담아 세상으로 표출하고 나면 기분이 상쾌해졌다. 복잡한 일들은 모두 내팽개치고 온종일 글만 쓰고 싶었다. 글을 완성할 한 단어를 가지고 온종일 고민한 적도 있다. 이때는 사무실과 집에서 지옥과 치유의 시간을 번갈아 보냈다는 표현이 적당하겠다. 스터디가 끝난 후에는 블로그에 퇴직에 관한 생각을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퇴직을 주제로 시작된 글쓰기는 나아가 내면의 소리를 듣고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나의 행복을 정의하는 데까지 이르렀고 그러다 문득 어차피 올해 아니면 내년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악물고 내년까지 버텨도 내후년이겠지. 지금 내 상태가 아무리 아픈 가족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하더라도 퇴직에 관한 생각을 매일 글로 발전시켜 나가고 선 넘은 피해의식을 느끼고 있는 이상 나는 결국 이 조직에서 오래 버티지 못할 거란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제는 퇴직이라는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후회를 남기는 임계점에 도달했다고 느꼈다. 그리고 당장 쉼이 필요한 내 상태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에는 다 모르겠고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다. 제발 빨리 뛰는 이 심장박동만 멈춰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결국 질병휴직을 결심하게 되었다. 정신과에서 6개월짜리 진단서를 발급받았다.
그런데 휴직을 하려니 문제가 있었다. 우리 기관의 인사는 1월과 7월에 있는데, 내가 지금 휴직을 한다면 인사과에서 인원을 배정해 주지 않아 팀에 7월까지 결원이 발생할 수 있다. 내 일을 7월까지 누군가 대신해야 된다는 뜻이다. 이 얼마나 민폐인가. 게다가 지금까지 공직생활을 하며 힘들다는 내색 한 번 없이 주어진 일들을 처리해 왔는데 내가 휴직한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안 그래도 요즘 기관장님의 특명으로 매일 저녁 10시가 넘어서 퇴근하던 참이었다. 그래. 나는 바보같이 죽을 것 같은 고통을 겪으면서도 타인이 먼저 걱정되었고, 그런 내가 정말 바보 같았지만 남들이 나를 진짜로 바보 취급 할 것이 더욱 걱정된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꼈다.
그래서 내가 찾은 답은 휴직과 퇴직을 함께 알리는 것이었다. 그러면 누구도 나에 대해서 불만을 표하지 못할 것이다. 이해하고 넘어갈 것이다. 남들에게 약해 보이는 것도 싫다. 그러니 지금 내게 남겨진 하나의 꿈 작가. 작가가 되기 위해 퇴직한다고 하자. 글쓰기로 심신의 안정을 얻고 있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나는 작가라는 꿈을 나의 약함을 감추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바로 퇴직을 할 수도 있었지만 몸을 추스를 시간과 그동안의 돈을 위해서는 휴직이 필요했다.
눈을 감고 주문을 외운다.
나는 할 수 있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다.
1분쯤 지났을까, 떨리는 발걸음과 쉰 목소리로 팀장님께 면담을 요청한다.
팀장님, 저 그만두려고요.
(화들짝 놀라며) 응? 갑자기 무슨 말이야. 지금까지 이런 이야기 전혀 없었잖아. 무슨 일 생긴 거야?
(심장이 요동친다.) 아니요.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요. 오래 생각하고 준비해 왔습니다.
(몇 초간 정적이 흐른다.)
하고 싶은 일이 뭔데? 꼭 그만둬야 하는 일이야?
예. 저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휴직을 해보는 건 어때?
휴직도 할 거예요. 6개월 정도 휴직 후 그만둘 겁니다.
휴직해서 다 내려놓고 쉬다 보면 생각이 바뀌진 않을까?
오랫동안 고민했고 준비해 왔습니다. 그럴 일 없습니다.
(심장박동이 서서히 잦아들고 목소리엔 힘이 깃든다. 팀장님은 내 의지를 꺾을 수 없다는 걸 아셨는지 눈시울이 붉어진다.)
우리 (자)유로씨 있어서 많이 든든했는데 아쉽네. 언제 어디에서 무얼 하든지 응원해요.
언제든 돌아와도 돼요. 나는 유로씨가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