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와 직장 중 어느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나?
오랜만에 영화 '1982년생 김지영'을 봤다. 결혼 후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과,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차별을 겪는 30대 후반 여성의 이야기다. 육아는 전적으로 여자가 담당해야 하고, 시댁에 가면 친정에 온 딸은 쉬어도 되지만 며느리는 일을 해야 한다.
결코 남의 일이 아닌 이야기에,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우리 세대의 아내들은 누구나 다 그렇게 살았다'라고 스스로 위안을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아내의 눈치를 봤다. 어쩌면 아내는 지영이 친정 엄마보다도 더 힘들게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은 결혼과 동시에 시집살이가 시작되었다. 결혼 초기, 내가 미안한 마음에 어쩌다 설거지라도 한 번 해주려 하면 바로 어머니께서 째려보셨다. "저 녀석은 결혼 전에는 부엌에 한 번도 들어가지도 않더니만 장가가더니 변했다!" 그런 어머니의 말씀에 아내는 나에게 차라리 부엌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 그런 일은 우리 세대까지만 있는 줄 알았는데, 지금 세대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나 보다. 오죽했으면 한이 맺힌 친정어머니가 "지영아, 너 하고픈 거 해!"라고 말씀하신다.
그렇지만 현실은 '내가 하고픈 거'를 할 때 '아이의 삶'이라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부부가 모두 풀타임으로 일하고 아이는 남에게 맡겨 키우는 것이 진정 내가 원하던 삶일까? 내 삶도 중요하지만, 그렇다면 아이의 삶은 어떻게 되는 걸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희생이 뒤따른다. 아내가 휴직을 하고 아이를 돌보든가, 친정이나 시댁 부모님이 아이를 돌보아준다. 또는 베이비시터라도 고용해야 한다. 아이만 아니라면, 직장에서 인정도 받고 승진도 하고 잘 나갈 수 있을 텐데... 그런데 아이 때문에 창창하던 앞날에 먹구름이 끼는 것 같다.
부모 양쪽이 모두 풀타임으로 일하다는 건 분명히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전 세계 부모들 어느 누구에게나 공통되는 말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진정으로 부모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당연히 엄마 아빠와 함께 보내는 시간일 것이다. 이미 TV와 게임기에 세뇌되어 버리지만 않았다면. 방안에 가득한 장난감은 함께하지 못하는 시간에 대한 물질적인 보상일 뿐이다.
그래서 누구든지 '아이를 돌볼 것인지, 아니면 일을 선택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일을 선택한다고 하더라도 인생이 크게 바뀌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직장생활이란 조금 나아진 경제력으로 그럭저럭 먹고만 살다가 어느덧 은퇴를 하는 곳이다.)
직장과 육아 둘 중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 이외에는 정말로 다른 대안이 없는 걸까?
세상에는 사회적인 성공보다는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비록 외국의 사례이긴 하지만, ‘육아와 직장 생활을 병행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피할 수 있는 중소도시로 직장을 옮기기도 하고, 가족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육아와 직장 생활을 양자택일의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이 경우에는 시간을 얻은 대신에 경제적으로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출처: ‘조금 소박하게’ - 린다 브린 피어스 지음)
내 세대만 하더라도 일이 제일 중요했다. 직장에 온 힘을 쏟아부었고, 그 외의 가족이나 삶의 질이란 것은 아예 고려 요소에 넣지도 않았다. 그래서 아내는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두고두고 나를 원망한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워라벨 (Work-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시한다고 한다.
돈보다는 삶의 질을 더 중요시하고, 사회적인 성공보다는 나와 내 가족의 삶을 더 중요하게 느끼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급여가 많은 대신에 일에 파묻혀 사는 직장보다는, 다소 수입이 적더라도 여유 있는 삶이 보장되는 직업을 택하기도 한다. 이제야 서서히 균형 잡힌 삶을 찾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 주위에는 아이의 아토피를 견디다 못해 시골로 내려와 사는 사람도 있고, 적게 벌어도 맘 편히 살자고 시골로 온 사람도 있다. 물론 사회적인 성공을 최고로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내리기 어려운 결정이다. 내 인생의 가치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아이는 내 인생에 기쁨이 되기도 하고 먹구름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어렵더라도 멈추어 서서,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선택이 정말로 없는 것인지 한 번쯤 진지하게 고민을 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지금과는 다르게 살아가는 방식도, 지영이 세대가 선택할 수 있는 또 다른 대안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어떠한 삶을 살아가든, 그 선택을 할 사람도 책임을 져야 할 사람도 바로 나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