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 휴대폰은 비밀번호가 같다

우리 부부가 휴대폰 비밀번호를 공유하게 된 이유

며칠 전 휴대폰이 드디어 말썽을 일으켰다. 4년 반 동안이나 쓰던 휴대폰이었는데 갑자기 카톡도 안되고 브런치 접속도 되지 않았다. 딱 5년만 채우면 바꾸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마지막 6개월을 참지 못하고 고장이 났나 보다. 휴대폰이 없으면 불편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는데 갑자기 어쩌지? 이럴 때는 아들놈과 상의하는 게 제일이다. '아빠 전화기 갑자기 고장 났음. 성능 좋은 건 필요 없고 카메라만 좋으면 됨. 저렴한 휴대폰 모델 좀 알아봐 주라!'


15년 전 시골로 내려오며 사용 중이던 내 휴대폰을 없애버렸다. 평생을 정보통신 분야에서 벌어먹고 살았는데, 그동안 얼마나 지긋지긋했으면 휴대폰을 가까이에 두는 것조차도 싫었다. 그래도 하루아침에 지인들과의 모든 연락을 끊을 수는 없었으니 내 휴대폰(그 당시로서는 최신폰이었다)을 아내에게 주었고 아내 휴대폰은 처분했다. 그리고 어쩌다 나를 찾는 전화가 있으면 바꿔달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자연인이 되어 아예 세상을 등지고 사는 것도 아니니 시골에서도 사회생활이란 게 존재했다. 휴대폰이 없으니 나는 편하고 좋은데 주변 사람들이 아우성쳤다. "휴대폰 좀 사라. 요즘 시대에 휴대폰을 같이 쓰는 부부가 어딨냐?" 사람들 성화에 2년쯤 버티다가 (2년 밖에 버티지 못한 것을 보면 내가 너무 마음이 약한 것 같다) 결국 아내에게 주었던 휴대폰을 돌려받았다. 그 후유증이 아직도 남아있으니 우리 동네 마트에서 세일을 할 때면 지금도 '띵동'하며 광고 문자가 들어온다. '냉동 오징어 세 마리에 6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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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또 다른 불만이 터져 나왔다. 우리 부부가 함께 참여하는 모임이 있었는데 그곳에서도 아우성이다. 무슨 일이 있으면 카톡 방에서 상의를 하는데, 누군가는 그 내용을 요약하여 우리 부부에게 문자로 보내주어야 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우리 부부만 폴더폰을 사용하고 있었으니까. "제발 좀 스마트폰으로 바꿔라!" 모임 총무를 맡았던 분이 애원을 했다.


그래서 배려심 많은 우리 부부는 (몇 년 뒤에) 결국 스마트폰으로 바꾸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스마트폰을 써보니 여간 편리한 게 아니다. 수시로 깜박깜박하는 나에게 스마트폰은 아주 좋은 메모장이 되었다.


꿀 고구마 이름이 '베니 하루카'라는 것을 처음 들었을 때 나중에 잊지 않으려고 곧바로 휴대폰에 기록해 두었고 (종이와 볼펜도 필요 없다), 우리 부부가 잘 가는 식당이 언제 쉬는 날 인지도 기록해 두었다. 주차장에서 내 차를 찾기 위해 뺑뺑 돌지 않으려고 주차 위치도 기록했다 (요즘은 편하게 사진으로 찍는 것도 배웠다). 이렇게 온갖 잡동사니를 기록하다 보니 어느새 휴대폰은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되었다.


이런 내가 아내와 같은 휴대폰 비밀번호를 공유하게 된 이유는 이렇다.


본인 기억에만 의존하는 아내는 기억이 나지 않으면 무조건 나에게 묻는다. 아내는 내 휴대폰에 수많은 정보가 들어 있다는 것을 안다. 예전에 과수원에서 일하던 중 사다리 위에서 전화를 받다 떨어질 뻔한 이후로는, 과수원에서 일을 할 때는 아예 휴대폰을 집안에 두고 나간다. 그런데 아내는 내가 밖에 있을 때에도 질문을 한다. 휴대폰도 없는데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내 전화기에서 직접 찾아보라고 하려 해도 비밀번호가 숫자가 아니고 패턴이니 알려주기도 어렵다.


그래서 아예 내 휴대폰 비밀번호 패턴을 아내와 똑같이 만들어버렸다. "자! 이제 필요한 게 있으면 직접 찾아봐. 더 이상 나한데 묻지 말고!"


나의 이러한 황당한 조치에 놀라시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다. '비밀번호를 공유한다고? 아무리 부부라고 하더라도 사생활이란 데 있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하지만 우리 부부는 남들처럼 직장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일 년 열두 달 지긋지긋하게 얼굴 맞대며 살고 있으니, 오히려 비밀이란 게 있어 봤으면 좋겠다.


하지만 만약 조금이라도 찔리는 게 있으신 분들은 나처럼 비밀번호를 공유하는 정신 나간 짓은 절대로 하시면 안 된다. 나도 발단은 단순히 귀찮아서였는데 이제 와서는 물릴 수도 없다. 만약 내가 비밀번호를 바꾸기라도 하는 날이면 아내는 곧바로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째려볼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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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한테서 답장이 왔다. '모델명이 xx라고 보급폰이긴 하지만 카메라 성능도 좋고 배터리도 오래가고, 쓰시는 데는 불편이 없을 거예요. 퇴근길에 삼성 매장에 들러 사갈게요. 엄마 휴대폰도 이번 기회에 바꿔 드릴게요'한다. 휴대폰 알아봐 달라고 했는데 사 달라는 것으로 오해를 했나? 좀 미안하기는 했지만 이럴 때는 미안한 척하며 슬쩍 받는 게 상책이다.


새 휴대폰을 사 온 아들은 저녁 몇 시간 동안이나 예전 전화기에 들어있던 데이터를 새 휴대폰에 모두 옮겨주었다. 아내와 나는 얌전한 학생이 되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고. 언제부터 아들과 내 위치가 이렇게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아들이 뜻밖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날 갑자기 내 전화기에서 문제가 발생한 이유는 '안드로이드 앱 충돌 오류'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나뿐만 아니라 삼성폰을 가진 많은 사람들 휴대폰이 카톡도 네이버도 되지 않아 난리였다고 한다. 그 문제야 쉽게 해결할 수 있지만, 어차피 오래된 휴대폰이니 이번 기회에 새로 바꾸어 드리려고 휴대폰을 사 왔다고 한다. 아비보다 나은 것 같다. 나는 그 속도 모르고 좋아서 냉큼 받기만 했으니...


"그런데 휴대폰 비밀번호를 무엇으로 할까요?" "글쎄~" 순간 아내와 눈이 마주쳤다. 움찔하며 나도 모르게 말을 해버렸다. "그냥 예전과 똑같게 하지 뭐!"


그래서 이번에도 내 휴대폰 비밀번호 패턴은 아내와 같다. 내가 미쳤지!



<사진출처: 둘 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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