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보다 더 젊어질 수 있는 미래란 없다
나는 사진 찍기를 싫어한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사진을 찍어주는 건 괜찮지만 내가 사진에 찍히는 것은 싫어한다는 말이다. 예전부터 내가 사진 찍기를 싫어했던 건 분명히 아니다. 그동안 모아놓은 사진이 앨범 몇 개 분량은 되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사진은 오래전에 찍은 것들 뿐이고 최근 사진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요즘은 휴대폰이 있어 사진을 찍기도 쉬운데, 내 얼굴이 들어간 사진은 거의 찾을 수가 없다.
언젠가부터 사진 속 내 모습에 불편해졌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괜찮아 보이는데 사진만 찍으면 이상하게 나왔다. "실물은 그나마 봐주겠는데 사진에서는 촌티가 팍팍 나는 것 같아!" 아내가 나에게 해준 말이다. 그나마 봐줄 만하다니 다행이긴 한데, 그렇다고 듣기에 썩 좋은 말도 아니다. 동생에게도 물어봤다. 동생은 사진과 나를 째려보더니 말을 했다. "흠, 아무리 봐도 실물이 더 나은 것 같은데?" 아무래도 나는 매스컴을 탈 팔자는 아닌 것 같다.
분명히 같은 얼굴인데 왜 그럴까? 그 원인을 꼼꼼히 생각해봤다. 사진 찍을 때 눈 감는 것 정도는 애교로 봐줄 수 있다. 그런데 사진 찍을 때는 이상하게도 표정이 굳어진다. 굳었던 얼굴이었어도 카메라만 쳐다보면 순식간에 미소를 짓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영 표정관리 능력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사진을 찍을 때면 나는 약간 어색해하며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인다. 그러니 찍은 사진마다 하나같이 입은 약간 삐뚤어지고, 웃는 건지 찡그린 건지 구분도 잘 되지 않는 애매한 표정들 뿐이다.
거기에다 외모도 점점 자신이 없어지고 있다. 그나마 예전에는 젊기라도 했지만 이제는 그것도 물 건너갔다. 어느새 흰 머리카락이 늘어났고, 이제는 흰 머리카락이라도 많기만 하면 좋겠다. 늘씬했던 몸매가 배불뚝이가 되었고, 농사짓는다고 햇빛에 검게 타 그을려버렸으니 촌티가 팍팍 나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거울 앞에 서면 이따금 변화된 내 모습에 깜짝 놀라기도 한다. 거울 너머로 보이는 건 내가 아닌, 고집불통인 한 장년 남자의 모습뿐이다.
그런데 자주 만나는 내 주위의 사람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똑같은 것 같다. 자주 만나니 작은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끼리는 "예전과 변한 게 하나도 없다"라며 서로 위로해주며 산다. 세월의 충격을 받지 않으려면 앞으로도 계속 이런 사람들만 만나야 할까 보다. 거꾸로 점점 더 젊어지는 사람도 있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처럼 아내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젊어지는 것 같다. 틀림없이 흰머리를 감추려고 매번 까맣게 염색을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시간의 흐름을 제일 잘 확인할 수 있는 건 사진이다. 예전에 아들놈이 어렸을 때, 용돈 조금 주고 앨범에 있던 사진을 전부 스캔하여 컴퓨터에 저장해 두었다. 아직 세상 물정 모를 때 돈 몇 푼 쥐어주고 부려먹었다고 아들놈이 억울해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덕분에 지금은 컴퓨터만 켜면 언제고 지나온 세월을 되새겨 볼 수가 있다. 어렸을 때 어머니 품에 안겨 찍은 누드사진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긴 세월의 흐름이 단편적이나마 사진 안에 녹아있다. 지금은 거의 기억도 나지 않는 지나온 나날들!
때로는 사진 속의 낯선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실이 조금은 서글퍼지기도 한다. 어느새 긴 세월을 살아왔나 보다. 그 긴 세월만큼 늙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런 게 인생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다만 이제는 사진 속에 보이는 내 모습이 좀 더 온화하고 여유 있는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곱게 늙어가고 싶다.
나이가 들면 외모는 더 이상 중요해지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 세월은 속이지 못한다고, 한 시대를 풍미하던 유명한 배우들도 나이가 들면 모두 평범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버리니까 말이다. 하물며 일개 촌부에 지나지 않는 내가 외모를 따진다는 건 더더욱 아닌 것 같다.
앞으로는 사진 찍기를 피하지 않을 생각이다. 지난 사진을 들추다 보면 귀촌 이후 10여 년간의 내 인생은 마치 공백인 것처럼 보인다. 그 기간도 분명히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남아있는 기록이 거의 없다. 더구나 이제는 그 시간들을 되새기려 해도 기억이 잘 나지도 않는다. 비록 초라해 보일지는 몰라도, 지금의 내 모습도 소중한 내 인생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을 한다.
현재보다 더 젊어질 수 있는 미래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