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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침이와 호돌이네 Jul 28. 2020

올해 대추 맛보기는 틀렸는 줄 알았어

저 돌팔이한테 부탁했다 올해 농사 망했나 보다

길고 긴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대추나무 가지들을 줄로 묶어주었다. 아직까지는 대추알이 작아 괜찮을지도 모르지만, 잎이 비에 젖으면 그 무게를 이겨내지 못한다. 대추나무가 단단하고 질긴 것은 맞는데, 새로 자란 가지의 마디 부분만큼은 약한 것 같다. 더구나 새로 자라는 가지들은 하늘로만 쭉쭉 뻗으니, 비에 젖은 가지가 아래로 처지게 되면 마디 끝이 쉽게 부러지거나 찢어진다. 

              

성당에서 형님 한 분이 나를 보더니 매우 반가워하신다. "올해 우리 집 대추가 무지하게 많이 열렸어! 대추 맛보기는 틀렸는 줄 알았는데..." 


올봄에 그 형님 집에 심어져 있는 과수나무 전지를 해 드렸다. 유실수를 사다 심은 지는 몇 년이 되었다는데, 그동안 전지란 것을 배운 적도 해본 적도 없었으니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고 하셨다.

          

그런데 전지에는 시기가 있으니, 이때쯤 되면 전지 전문가를 구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다들 자기 일 하느라 바쁘니까. 그래서 웬만큼 친한 사이가 아니라면, 하던 일 중단하고 공짜로 전지 해주러 남의 집에 달려갈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또 특정 종목의 전문가는 있어도, 나처럼 온갖 종류의 나무를  전지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우리 집에는 품목당 두세 그루뿐이긴 하지만 온갖 종류의 유실 수가 다 있다). 물론 전문성이야 조금 떨어지겠지만...


대추는 이렇게 나무가 죽겠다 싶을 정도로 다 잘라내야 한다.

전지의 기본이야 같다고 하더라도, 나무의 특성에 따라 전지 하는 방법은 완전히 달라진다. 


대추나 포도처럼 그 해 자라난 햇가지에 열매가 달리는 나무가 있는가 하면, 복숭아나 살구처럼 2년생 가지에서 열리는 나무도 있다. 또 사과는 3년 된 가지에서 열리는데, 몇 년 후에 열릴 사과를 상상하며 전지를 하려니 제일 어렵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것도 모르고 사과 전문가에게 대추 전지 법을 묻는다. 나무라고 하면 다 똑같은 줄로만 안다. 


내가 이렇게 해박한 지식(?)과 실전 경험을 겸비하고 있는데도,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나에게 좀처럼 전지 법에 대해 묻는 법이 없다. 이제는 좀 잊어주었으면 좋으련만, 사람들은 이것저것 농사에 대하여 묻고만 다니던 내 초보시절만 기억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 한, 10여 년 정도의 내 짧은 농사 경력으로는 전문가로 인정받기에는 힘들 것 같다.


그런데 이런 나에게 마침내 섭외가 들어왔으니, 아무리 바쁘더라도 하던 일 팽개치고 달려가야 한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동안 손 한번 대지 않은 나뭇가지들이 머리카락처럼 헝클어져 있었다. 웬만해선 손 대기도 힘들 정도이고, 또 나무 종류도 우리 집만큼이나 많은 것 같다. 매실나무도 있고, 아로니아, 체리, 감, 대추, 자두, 포도나무 등 참 골고루도 심으셨다. 어떻게 키울 것인지는 전혀 대책도 없으면서, 그저 과일나무를 땅에 꼽아만 놓으면 과일이 저절로 열리는 줄 아시나 보다.


어떤 가지를 잘라내야 하는지, 친절한 설명을 곁들여가며 전지를 해 드렸다. 그 순간만큼은 나도 분명히 전문가가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눈만 껌뻑거리는 순한 양 같은 형님 앞에서. 그리고 마침내 대추나무 차례가 되었다.


"대추나무는 이렇게 다 잘라주어야 해요. 대추는 올해 새로 나온 가지에만 달리거든요."

    

대추나무는 전지를 할 때 큰 가지 몇 개만 남기고, 나무가 죽겠다 싶을 정도로 곁가지는 모두 잘라내야 한다. 그렇게 잘라내도 나중에 보면 끝없이 새 가지가 나온다. 행여 아깝다고 내버려 두면 나중에 가지가 너무 많아 복잡해지고 대추 알도 작아진다. 이 방법은 알이 굵고 상품성 있는 왕대추를 수확하기 위해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방법이다. 전문가 흉내를 내고 있는 나도 당연히 이 방법을 쓰고 있다.  


대추나무 가지는 하늘로만 치솟고 (좌), 시간이 지나면 이렇게 무성해진다 (우). 나중에 검은 끈으로 큰 가지들을 묶어준다.


그런데 다른 나무 전지 법을 설명할 때에는 고개를 끄떡거리며 알겠다고 하시더니만, 대추나무 전지를 할 때는 그저 입을 꾹 다물고만 계셨다. 워낙 많이 가지를 잘라버리니 전지를 부탁한 처지에 뭐라 말도 못 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으셨던 것 같다.

             

'괜히 저 돌팔이 녀석한테 부탁했다가 올해 농사 망했나 보다'라고 생각하신 게 틀림없다. 


그리고 죽지만 않으면 다행이라 여겼던 대추나무에서, 마침내 수많은 가지가 나오고 대추가 주렁주렁 달렸으니 기쁠 수밖에! 그래서 나를 보자마자 반가운 마음에 달려오신 것 같다.

  

그런데 정작 우리 집 대추나무는 올해 어째 좀 엉성한 것 같다. 장마 비가 계속 오더니만 벌들이 다들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지 수정된 대추들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물론 지금도 대추 꽃이 계속 피고 있으니 좀 더 기다려봐야 알 수 있긴 하다. 대추 꽃은 거의 두 달 동안이나 피고 지며 수정이 된다. 


앞으로도 대추가 크려면 갈길이 멀다. 또 8월이면 태풍도 몰려오고 대추 알도 굵어질 테니, 그때쯤이면 가지가 찢어질 확률도 훨씬 높아진다. 큼직한 대추가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큰 가지가 찢어지면, 내 가슴도 찢어지는 것만 같다. 지금도 저렇게 좋아하시는데, 나중에 형님 가슴이 찢어지도록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검증된 전문가로서 특별히 조언을 해 드렸다.

           

"그런데 형님. 대추나무 가지가 비바람에 찢어질지도 모르니 미리 줄로 묶어주셔야 해요." 


"그래, 알았어. 오늘 당장 가서 묶어줄게!" 이제야 내 말발이 먹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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