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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침이와 호돌이네 Nov 19. 2020

남자의 자존심 - 김장배추  

내가 배추 하나는 잘 키우거든!

김장 배추를 심을 때면 아내와 언쟁을 하곤 하는데, 아내는 배추를 작게 키우라고 하고 나는 배추를 크게 키우지 못해 안달을 떤다. 덕분에 나는 한 포기에 9.5kg짜리 배추도 만들어봤다 (보통 큰 배추는 무게가 4kg 내외다). 나는 정말 뿌듯해하지만 아내는 배추를 네 쪽으로 쪼개어도 크다고 불평을 한다. 그렇지만 그 큰 배추를 들고 찍은 사진을 보면 정말 폼나고 멋있어 보인다.


특히 배추값이 비싸기라도 할 때에는 우리 집 배추는 감탄과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우리 집 배추는 크기가 이것 절반도 안돼요. 도대체 비결이 뭐예요?" "흠, 배추를 크게 키우려면..." 어쩌면 난 이 잘난 체하는 맛에 농사를 짓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는 먹는 것은 둘째고 뿌듯함이 먼저다. 그리고 큰 배추를 만들겠다고 우기는 건, 어쩌면 알량한 남자의 자존심이다.   


이 큰 배추를 들고 사진을 찍으면 정말 폼난다.

도무지 타협할 의향이 전혀 없는 나에게 아내가 회유책을 썼다. "9.5kg짜리 배추도 만들어봤으니 이제는 조금만 작게 만들어봐. 그래도 다른 집보다 두 배는 클걸? 맛도 우리 집 배추 따라오는 집 없을 거야!"


고집불통인 남편을 다루느라 평소에 하지 않던 칭찬까지 하는 것 같다. 그렇게까지 나를 인정해주는데야 할 말이 없지. 아무튼 나도 오랜만에 목에 힘주며 말했다. "내가 배추 하나는 잘 키우거든!"    


                                

사실 누구든 배추를 크게 키우려고만 들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다. 배추는 거름을 많이 필요로 하는 작물로 밭에 비료를 넉넉히 뿌려준 뒤 모종을 심고, 물 주고, 이따금 서리 내리듯 비료를 하얗게 뿌려주면 아주 잘 자란다. 배춧잎도 짙은 녹색으로 변하고 겉잎 한 장이 내 얼굴보다 더 커진다. 여기에 추가해서 농약도 두세 차례만 뿌려주면 벌레도 없다. 아주 쉽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키운 배추를 원하세요?

   

사람들은 배추가 크면 식감도 떨어지고 쉽게 물러진다고도 한다. 맞는 말씀이다. 배추가 물러지는 것은 비료를 왕창 주고 속성으로 키웠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퇴비 위주로 주고 천연 농자재와 키토산 액비를 주고 키우면 배추가 커져도 맛도 좋고 물러지지도 않는다. 지난 수년간 그렇게 큰 배추로 김장을 담가왔지만 우리 집 배추김치는 지금까지 한 번도 물러진 적이 없다.


혹시 큰 배추에 관심이 있는 분들을 위해 특별히 내가 그동안 습득한 비법을 알려드리려 한다.


배추는 초기에 물을 충분히 주어 잎의 수를 늘려 주는 게 좋다. 어려서부터 약하면 큰 배추가 되기에는 싹수가 노랗다. 그리고 배추 재배에 추비(추가로 비료를 주는 것)는 필수다. 퇴비가 땅에서 비료로 작용하는 기간이 한 달 정도라고 하니, 추비를 하지 않으면 질소 부족 현상으로 배추 잎이 누렇게 변한다. 따라서 한 달 간격으로 2회 정도 추비를 해 주어야 한다. 또 배추를 크게 키우려면 포기 간격이 60cm 이상 되어야 한다. 일반적인 재식거리 45cm로는 공간이 부족해서 배추가 커지는데 한계가 있다.


특히 키토산 액비를 뿌려주면 아주 효과적이다. 키토산 액비는 게 껍질로 만드는데, 배추뿐만 아니라 김장 무나 다른 채소를 키울 때에도 좋다. 또 절대로 배추 포기 묶기를 하지 말아야 한다. 포기 묶기를 하는 이유는 동해 방지를 위해서인데, 일단 묶어주면 성장이 정지된다. 오히려 배추는 잎을 벌려주어야 크게 자란다. 배추는 추위에 강해 11월에 김장을 끝내는 대부분 가정에서는 동해 걱정을 할 필요도 없다.    


9.5kg짜리 배추. 내가 손으로 배추를 누른 게 아니냐고? 나는 앞에서 사진 찍고 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보고도 믿지를 못한다. 물론 세상이 그렇긴 하지만.

내가 이렇게 전문적인 지식도 있고 실전 경험도 풍부한데, 내 주위의 농사꾼 형님들은 내 말에 시큰둥하신다. 틀림없이 자존심이 상해서 그러시는 것 같다. 농사경력이 제일 짧은 녀석이 제일 큰 배추를 만들고 아내들 앞에서 자랑을 하니까. 


그래서 몇 년째 "배추가 크면 물러서 못써"라고 똑같은 말씀만 반복하신다. 내가 그토록 괜찮다고 설명하는데도 영 들으려 하지 않는다.


또 키토산 액비가 매우 효과적이라는 내 말에도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신다. "어쩌다 배추가 좀 커졌나 보지? 아마도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은 모양이야"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그래서 친절하게 설명해 드렸다. "이 방법은 제가 개발한 것이 아니고 어느 교수가 연구해서 알아낸 방법이거든요!" 실제로 '남도일보'의 기사에 의하면 키토산을 주고서 무게가 7kg이 나가는 슈퍼 배추를 개발했다는 분의 이야기가 나온다. 7kg이 슈퍼 배추라면 내가 만든 9.5kg 배추는 엑스트라 슈퍼 배추다.


더 이상 경쟁자가 없는 요즘은 굳이 9.5kg짜리 초대형 배추를 만들기 위해 그렇게 안달하지는 않는다. 그냥 적당히 재배를 해도 평균 5kg 정도는 된다. 또 내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고 초대형 배추를 다시 만들어낼 자신도 있다. 더구나 내 말을 뒷받침할 확실한 증거도 (9.5kg 배추 사진) 가지고 있으니, 이제는 양보다는 질에 더 신경을 쓰는 편이다.


얼마 전 우리 집을 방문했던 아내의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고 한다. 나 몰래 배추를 한 포기 뽑아주었는데 배추가 너무나 맛있었다고, 혹시 여유가 있으면 몇 포기만 더 보내달라고 한단다. 우리 집 배추가 그렇게 맛있다고 예쁘게 말하는데 안 보내 줄 수야 없지.


하기야 우리 집 배추가 보통 배추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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