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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침이와 호돌이네 Nov 12. 2020

나는 오늘도 '기적의 사과'를 꿈꾼다

자연농업이란 나에게는 쉽게 다가설 수 없는 과제다

올해 긴 장마로 사과 과수원이 망가졌다. 50일 넘게 계속 오는 비로 방제 시기를 한 번 놓쳤는데, 며칠 후에 보니 과수원 전체에 병반 (갈반병)이 나타났다. 아, 망했다! 역시 망가지는 건 한순간이다. 일단 잎에 병반이 나타나면 거의 끝났다고 봐야 한다. 뒤늦게 아무리 방제를 해봤자 치료는 힘들고 더 이상 병이 퍼지지 않도록 막아주는 것뿐이다. 비가 오다 잠깐 햇빛이 비쳤을 때, 습기로 숨이 콱콱 막히더라도 그때를 놓치지 말고 방제를 했어야 했다. 물론 지나고 보니 그렇다는 말이다. 


다른 과일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사과는 농약을 뿌리지 않고서는 상품성 있는 (좀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팔아먹을 수 있는') 과일을 만들어내기가 힘들다.  '옛날에는 농약 없이도 사과를 잘만 키웠다'라는 분도 계실지도 모르겠다. 맞는 말씀이다. 하지만 지금의 사과는 이름만 같은 사과지 품종개량으로 옛날과는 전혀 다른 과일이 되었다. 또 소비자의 눈높이 역시 예전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이따금 우리 집 사과를 구입하는 분들이 무농약 재배인지를 묻는다. 물론 아니다. 자연농업 자재를 사용하면 농약을 뿌리는 횟수를 줄일 수는 있지만 (저농약 재배), 무농약 재배로는 시장에서 볼 수 있는 탐스러운 사과를 만들어 낼 재간이 없다. 더구나 올해처럼 장마가 긴 해에는 아마도 살아남은 농가가 거의 없을 것 같다.

    

오래전에 '기적의 사과'라고, 일본에서 농약도 비료도 전혀 주지도 않고 재배한 사과가 맛도 좋고 썩지도 않는다고 한동안 떠들썩한 적이 있었다. 책으로도 나오고 영화로도 나왔다. '기무라 아키노리'란 농부의 이야기인데, 그는 생명농업의 창시자인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자연농업'이란 책을 읽고 무비료 무농약 사과재배에 도전하였다고 한다. 그 사과는 가격도 엄청나게 비쌌지만 예약도 순식간에 끝나 구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과수농가에게 한동안 꽤나 알려졌던 책 '기적의 사과'.

그 이야기는 그 당시 초짜 농부였던 나에게 상당히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농약도 안 주고 비료도 안 주는데 기적의 사과가 된다고? 뭔가 조금은 찜찜하긴 했지만 나라고 못하리란 법은 없으니 시도해 보기로 했다. 원래 무식하면 용감한 법이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말만 듣고 따라 하다가는 망하기 십상이다. 나에게 코치를 해준다며 모범을 보였던 한 형님의 과수원은 거의 망가졌고, 간이 콩알만 한 나는 중간에 포기해서 겨우 살아남았다.   


내가 자연농업에 대하여 알게 된 것은 자연농업 교육을 받아 보라는 한 지인의 권유 때문이었다. 그 당시 초짜 농사꾼이었던 나는 무슨 교육이든 필요했다. 그리고 농사경력이 10여 년이 된 (정확히 따져보니 어느새 14년이 되었다) 지금에 와서야 책에 쓰인 말 한마디 한마디가 실제로는 얼마나 구현하기 어려운 것 인지를 안다. 


자연농업에서 제일 중요시하는 것은 바로 토양 만들기이다. '다른 밭의 사과나무의 뿌리는 대개 몇 미터 정도 뻗어 있다. 그러나 그의 밭의 사과나무는 뿌리를 20미터씩 뻗고 있다'. 


사과나무 뿌리를 20미터씩 키운다는 건 엄청난 노력과 기술이 필요하다. 땅에 거름이 많으면 뿌리가 길게 뻗지 않는다. 웬만한 밭에서는 나무를 심고 첫해에는 거름을 주지 않는 이유다. 풀도 일 년에 한 번만 깎아 밭에 깔아준다. 어깨까지 자란 풀들 때문에 움직이기도 힘들다. 처음에는 온갖 벌레가 다 모여든다. 당연히 사과가 제대로 열리지도 않고, 또 열린다고 해도 남는 것은 벌레 먹은 반쪽짜리 사과들뿐이다.

  

'병이 만연하고, 해충이 급격히 발생했다. 농약을 쓰지 않는 한, 그 앞에 기다리는 것은 사과밭을 포기해야 한다는 결론뿐이었다'. 


다른 대안이 없다. 손으로 직접 벌레를 잡아주고 병이 퍼지지 않도록 온갖 방법을 다 써야 한다. 이 힘든 시기가 지나야 비로소 벌레도 풀도 나무도 서로 균형을 이루어간다. 말이 쉽지 언제 이 시점이 올지 예측할 수도 없다. 끊임없이 의문이 생긴다. 정말 그런 시점이 오긴 오는 건가?

  

'이미 사과가 열리던 나무를, 무비료 무농약으로 바꾸고 나서 9년 만에 꽃이 피었다.'


이미 사과가 열리던 나무라면 적어도 5년 이상 되었다는 얘기다. 그 정도면 이미 뿌리가 어느 정도 뻗어있는 상태다. 그런데도 나무가 9년이나 몸살을 앓았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뿌리도 짧은 유목을 거름기도 거의 없는 땅에 심어놓고 저절로 기적의 사과가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너무 용감하기만 했던 것 같다. 이런 글도 있다. 


'말라죽지는 말라며 부탁하고 돌아다녔다. 애원에도 불구하고 말라죽은 사과나무는 적지 않다. 밭 여기저기에 메마른 사과나무가 서 있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에 얼마나 큰 애정을 갖고 보살펴 주었는지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식물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면 더 잘 자란다'는 얘기도 있지만, 난 열 번 사랑한다는 말보다는 물 한번 주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믿는 현실주의자다. 그래서 나는 그 말을 이렇게 해석한다. 이미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 했을 터이고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마지막으로 나무에게 죽지 말라고 부탁하고 다녔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적지 않은 나무가 말라죽었다.


끝으로 저자는 기적의 사과를, '별로 크지도 않고, 형태는 살짝 일그러져 있고, 작은 상처도 있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 '기적의 사과'라는 것은, 현재 우리가 구입하는 '크고 색깔 좋고 흠집 하나 없는' 그런 사과를 생각하면 안 된다. 자연에서 스스로 병충해와 싸워 이겨낸 사과라면 결코 그런 크고 매끈한 사과가 될 수가 없다. 병균의 침입을 막으려면 껍질도 두꺼워져야 하고, 벌레에게 입은 상처도 있기 마련이다. 

    

앞으로도 내 농사 기술로는 기적의 사과를 만들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자연농업에 대하여 일찍이 배울 기회가 있었고, 또 그동안 부분적으로나마 흉내를 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땅을 만들고 풀을 키우면서 과수원의 흙도 엄청 좋아졌고 언젠가부터는 과일의 맛도 바뀌었다.     


그러나 이 방법에도 분명히 한계가 있다. 특히 올해 같은 긴 장마라면 속수무책이다. 내년이라고 날씨가 좋아지리란 법이 없으니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내년에는 비가 그치고 잠깐 햇빛이 날 때면 무조건 방제를 하려 달려들지도 모른다. 또 망치면 안 되니까. 나에게는 9년을 망쳐도 기다려줄 수 있는 여유가 없다.


하지만 내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자연농업이란 어쩌면 나에게는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영원한 과제인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농약과 비료를 전혀 주지 않고도 스스로가 균형을 이루어, 건강한 먹거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때가 나에게도 올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오늘도 기적의 사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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