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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침이와 호돌이네 Feb 18. 2021

텃밭에 작물을 심을 때 고려해야 할 사항

농사도 아는 만큼 보인다

겨우내 꽁꽁 얼었던 밭에서 초록색 풀들이 솟아오르는 것을 보면 봄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낀다. 긴 겨울도 거의 지나가고 어느새 텃밭에 무엇을 심을지 고민할 시기가 되었나 보다. 해마다 같은 작물을 반복해서 심는 경우라면 쉽게 텃밭 계획을 세우겠지만, 혹시 처음 심는 작물이라도 있으면 따져봐야 할 것들이 많다. 그래서 땅을 갈아 밭을 만들고 농작물을 심기 전에, 누구나 한 번쯤은 고려해야 할 사항들을 정리해 봤다. 

 

직파 또는 모종 만들기:     

우선 직파(밭에 직접 씨앗을 뿌리는 것)를 할 것인지, 또는 모종을 만들어 심을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대부분의 작물은 모종을 만들어 심는 것이 발아율도 높고 효율적 (종자 값이 적게 들어간다)이다. 그러나 무(큰 무, 열무, 총각무 등)처럼 옮겨심기 힘든 작물은 직파를 해야 한다. 


콩 종류도 대부분 직파를 한다. '콩 세알을 심어 하나는 내가 먹고, 하나는 새가 먹고, 하나는 벌레가 먹는다'라는 옛말도 있으니까. 하지만 새가 파헤쳐 땅콩 농사를 망친 이후로, 나는 종자 값이 비싼 땅콩만큼은 일부러 모종을 만들어 심는다. (아니면 쥐도 새도 모르게 심든가!) 


그 외에도 비트나 청경채, 콜라비, 브로콜리, 상추와 같은 쌈채소도 모종을 만든다. 하지만 집에 비닐하우스가 없으면 모종을 만드는 일도 쉽지가 않다. 또 텃밭에 자급용으로 몇 포기씩 심는 경우는, 모종을 만들기보다는 시장에서 구입하는 편이 훨씬 싸게 먹힌다.  


모종 심는 시기: 

대부분의 모종은 추위에 약하므로 4월 25일경에 심지만, 우리 집처럼 늦서리가 자주 찾아오는 지역은 5월 초순이 되어 심는 것이 안전하다. 특히 추위에 약한 오이나 단호박은 서리를 한 번만 맞아도 끝이다. 냉해피해를 입으면 설사 죽지는 않더라도 초기 성장이 늦어져 소출이 줄어든다. 따라서 처음 농사를 지을 때에는 그 지역 기후를 잘 아는 동네분들을 따라 심는 것이 좋다. 


봄이 오면 제일 먼저 심는 작물은 감자와 완두콩으로 3월 중순이면 밭에 심는다. 추위에 강한 브로콜리도 4월 초순까지는 밭에 심어야 한다 (모종은 3월 초순에 만든다). 늦게 심는 작물인 서리태는 뻐꾸기가 우는 6월 중순경에 심으면 되고, 마늘이나 양파처럼 늦가을 (10월 말~11월 초)에 심는 작물도 있다. (이곳에 언급된 시기는 모두 중부지방 기준임).

     

심을 위치 정하기:     

농작물의 키가 얼마나 크게 자라는지도 고려해야 한다. 밭이랑은 동서보다는 남북 방향으로 길게 만드는 것이 햇빛을 골고루 잘 받는다. 또 가급적이면 키가 작은 작물은 앞쪽에, 키가 큰 작물은 뒤쪽에 배치해야 한다. 키 큰 작물을 밭 가운데 심으면 그 주위의 작물은 햇빛을 보지 못해 누렇게 변한다. 예전에 키가 작은 줄 알고 밭 가운데 심었던 초석잠이 내 키만큼 자라는 바람에, 옆에 심은 생강이 고생 많이 했다.


돌려짓기:  

또 연작피해를 피하려면 돌려짓기는 필수다. 같은 자리에 계속 심으면 처음 몇 해는 괜찮아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농사 망치는 때가 틀림없이 온다. 처음 몇 해는 농사 잘 지었다고 자랑하다가 몇 년 후에는 완전히 망했다는 사람들 많이 봤다. 특히 별개의 작물처럼 보이더라도 같은 과에 속하면 꼭 돌려짓기를 해야 한다. 예를 들면 감자, 가지, 토마토, 고추는 모두 '가지과'에 속하므로 같은 작물로 친다. 또 오이와 호박은 같은 '박과'에 속한다. 


텃밭에 심는 대부분의 작물이 '가지과'나 '박과'이다 보니, 텃밭의 규모가 작아서 돌려짓기를 할 수 없다면 연작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텃밭은 규모가 어느 정도 되어야 지속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다. 돌려 짓기를 하지 않아도 되는 작물은 옥수수나 고구마 정도다. 최근에 알았는데 옥수수도 5년에 한 번은 돌려짓기를 하는 게 좋다고 한다. 몇 년마다 돌려짓기를 해야 하는지는 작물별로 다르다.

     

거름주기:     

밭을 만들 때 퇴비나 비료를 뿌려주는데, 작물에 따라 거름을 주는 양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고구마나 서리태, 메주콩은 거름을 많이 주면 (질소 성분이 많으면) 웃자라고 소출이 줄어들지만, 고추나 옥수수는 다비성 작물로 거름을 많이 주어야 한다. 따라서 작물별로 주는 거름의 종류와 양이 달라져야 한다. 이 부분이 초보자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다. 또 밭에 뿌려준 화학비료는 유효기간이 한 달 이내로 그다지 길지 않다. 그래서 대개는 작물을 심는 시기가 가까워져서야 (보통 보름 전까지) 밭을 만든다.

     

밑거름만으로도 충분한지 아니면 웃거름을 많이 필요로 하는지도 파악해야 한다. 감자처럼 단기간에 재배 (3월 중순~7월 초순)하고 수확을 하는 작물은 웃거름을 주지 않지만, 고추처럼 오랫동안 밭에서 자라는 작물은 (5월 초순~9월 말) 월 1회는 웃거름을 주어야 한다. 웃거름으로는 식물의 흡수가 빠른 비료를 주로 준다. 



토양의 산도:     

토양은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산성화 되어간다. 특히 비료를 많이 사용하는 밭은 산성화 속도가 빠르다. 그래서 토양을 중성화시킬 수 있도록 석회 고토 (정부에서 3년마다 무상으로 석회고토를 제공)를 뿌려주어야 한다. 대부분의 작물은 약산성 토양을 좋아하는데, 예외로 감자, 고구마, 수박은 산성토양을 좋아하고, 시금치나 완두콩은 약 알칼리성 토양을 좋아한다. 그래서 산성토양에 시금치나 완두콩을 심으면 발아 조차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석회고토는 비료와 만나면 화학반응이 일어나므로 최소 15일 간격을 두고 미리 뿌려주어야 한다. 


재식거리:     

모종을 심거나 씨앗을 파종을 할 때, 재식거리 (줄 간격과 포기 간격)를 얼마로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단위 면적당 모종을 많이 심는다고 수확량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가까이 심은 고추는 크게 자라지 못하지만, 간격이 넓으면 포기수가 줄어드는 대신 고추가 크게 자라므로 소출도 늘어난다. 따라서 전체 수확량에는 큰 차이가 없고, 오히려 여유 있게 심는 편이 바람도 잘 통하고 병충해 피해도 적게 발생한다. 작물별로 추천하는 재식거리를 참조하면 된다. 

     

멀칭 (흙 표면을 덮어주는 것):     

요즘은 누구나 풀이 무서워 비닐을 씌우고 농사를 짓는다. 비닐 멀칭은 풀을 억제하고 이른 봄에 지온을 높여주는 장점도 있지만, 반대로 뿌리의 발달을 억제하는 단점도 있다 (여름 철 검은 비닐 속은 많이 뜨겁다). 또 비가 와도 빗물이 땅에 스며들지 못하므로 인위적으로 물을 공급해 주지 않으면 가뭄을 탄다. 나는 작물에 따라 비닐 멀칭 여부를 결정하는데, 만약 작은 텃밭이라면 비닐 없이 농사짓는 것을 선호한다. 

     

지지대 또는 그물망 설치:     

키가 큰 작물 중에는 넝쿨을 타고 올라가는 작물도 있고, 지지대 없이는 혼자 서있지도 못하는 작물도 있다. 따라서 작물에 따라 지지대를 세워줄지, 줄을 쳐줄지, 또는 그물망을 설치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열매가 작고 가벼운 작물은 오이 망으로도 지탱이 되지만, 단호박과 같이 무거운 작물은 오이망 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또 지지대를 설치하는 방법이나 지지대의 크기는 작물이나 주변 여건에 따라 달라진다. 물론 어떤 방식으로 설치할 것인지는 본인의 창의력에 따라 달라진다.     

   

그 외에도 반그늘을 좋아하는 작물 (취나물)도 있고, 물을 많이 좋아하는 작물 (토란, 미나리)도 있다. 


이렇게 작물의 상태를 먼저 파악하고, 앞에서 언급한 여러 조건들을 고려해서 심으면 초보라고 해도 크게 실패하는 법이 없다. 오랫동안 농사를 지어오신 분들은 웬만해서는 해마다 수확량에서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데, 아마도 이러한 조건들을 본능적으로 알고 미리 조치를 취하시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며 농사를 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전문가가 되려면, 무턱대고 빈 땅에 작물을 심기보다는 작물별로 다양한 특성을 고려하며 텃밭을 가꾸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농사도 아는 만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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