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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침이와 호돌이네 Mar 18. 2021

비료 포대에 쓰여있는 숫자의 비밀

나는 그 숫자들로부터 필요한 농사정보를 얻는다

어느새 봄이 성큼 곁에 다가온 것 같다. 황량했던 텃밭에 초록색 풀들이 보이고 이제 슬슬 농사 준비를 할 때가 되었다. 작년에는 긴 장마로 농사를 망쳤다지만 올해는 왠지 농사를 잘 지을 수 있으리란 기대감에 가득 차 있다. 그래서 농사는 속으면서 짓는 거라고 하나보다. 올해라고 특별히 달라질 이유가 없는데도 이번에는 꼭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으니까. 중부지방의 경우 대개 4월 말부터 5월 초순까지 텃밭에 씨앗을 뿌리거나 모종을 심는데, 밭은 그전에 미리 준비해 두어야 한다 (예외로 감자와 완두콩은 3월 중순에 심는다).


밭을 갈아주는 일이야 장비가 있는 이웃에게 부탁을 하든지, 아니면 힘이 들더라도 어떻게든 몸으로 때울 수도 있다. 그런데 밭에 비료를 얼마만큼 주어야 하는지는 판단하기가 어렵다. 똑같이 비료를 뿌려주고 밭을 만들었는데, 고추는 양분이 부족하다고 하고 고구마는 양분이 많아 잎만 무성하다고 한다. 도대체 작물별로 무슨 비료를 얼마만큼 주어야 하는지 초보 농부가 어떻게 다 알 수 있을까 (초보가 아니어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이럴 때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는 정보가 있으니 바로 비료포대에 쓰여있는 숫자다. 비료포대에 쓰여있는 숫자의 비밀! 무심코 지나가기 쉬운 그 숫자들에서 나는 농사에 필요한 정보를 얻는다.

        

텃밭에 심는 다양한 작물마다 필요로 하는 비료량이 각각 얼마인지 전문가가 아니라면 알 재간이 없다. 하지만 나 대신 그 연구를 해 주는 곳이 있으니 바로 비료 생산 업체들이다. 그들은 비료를 팔기 위해 작물별로 어느 성분을 얼마만큼 주어야 하는지 끊임없이 연구를 해왔다. 그리고 알아낸 최적의 비율을 바로 비료 포대에 써 놓았다. 그 검증된 숫자를 나는 편안히 앉아서 활용하고 있는 셈이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일반 복합비료 (좌)와 추비로 사용하는 NK 비료 (우). 추비로 사용하는 비료에는 인산(P) 성분이 들어있지 않다.


먼저 초보 농사꾼을 위해 아주 기본적인 설명 한 가지부터 해야겠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복합비료 포대에는 21-17-17 이란 숫자가 쓰여있는데, 이는 질소(N)가 21%, 인산(P)이 17%, 가리(K)가 17% 들어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20kg 비료 한 포대에 들어있는 질소 함유량은 4.2kg (20kg의 21%)이고, 인산은 3.4kg, 가리는 3.4kg 이란 뜻이다. 또 비료포대에는 친절하게도 단위면적당 비료 몇 kg을 주라는 시비량도 적혀있다.  

      

고구마 비료를 예로 들어 보자. 고구마 비료 포대에는 7-7-18이란 숫자가 쓰여있는데, 이는 고구마를 잘 키우려면 질소(7)와 인산(7)보다는 가리(18)를 더 많이 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고구마를 재배할 때 복합비료(21-17-17)를 주었더니 잎만 무성해지고 고구마는 별로 열리지도 않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고구마에 필요한 질소성분이 7인데, 질소성분이 21인 복합비료를 주었으니 잎이 무성 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또 정작 필요한 가리(18)는 부족한 셈이다. 그래서 고구마 재배 시에는, 질소는 적게 주고 가리는 늘려 주어야 한다.           


또 다른 예로, 땅콩 비료를 보면 4-8-11이라고 쓰여있다. 복합비료 (21-17-17)와 비교해 보면, 땅콩에는 비료를 아주 조금만 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 질소가 21인 복합비료를 사용해선 절대로 안 되고, 상대적으로 가리는 조금 넉넉하게 주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나는 비료 포대에 쓰여있는 숫자를 보고, 작물에 필요한 성분을 추측한다. 물론 자그마한 텃밭 재배를 하는 처지이니 정확한 양을 계량하여 주기도 힘들고 작물별로 전용비료를 구입하기에도 애매하다. 비료 한 포대만 구입해도 몇 년을 쓰고도 남을 양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밭을 만들 때 기본적으로 퇴비를 많이 주고 (퇴비에는 질소 성분이 많지 않고, 인산과 가리도 골고루 들어있다), 비료는 꼭 필요로 하는 작물에만 밑거름 (씨를 뿌리기 전에 주는 거름)으로 조금씩 넣어준다. 그 이후에 부족한 성분은 추비 (나중에 더 주는 거름)로 더 보충해 준다. 특히 고추처럼 질소를 많이 필요로 하는 작물은 퇴비만으로는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기가 힘들고 꼭 추비를 해주어야 한다. 나는 대체로 퇴비는 팍팍 주는 편인데 비료는 안달을 떨면서 조금씩 준다. 


또 내 경우는 지난 10여 년간 농사지으며 만들어 놓은 다양한 천연농자재를 사용하여 부족한 양분을 보충해주고 있다. 하지만 나와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퇴비를 넉넉히 주어 양분을 공급해 주고 가급적이면 비료 (화학비료)는 최소한으로만 사용하기를 권한다. 그렇게만 해주어도 아마추어 눈높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만큼의 수확은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비료 포대에 쓰여있는 숫자를 보면, 대부분의 작물이 인산과 가리를 많이 필요로 한다. 하지만 복합비료에 들어있는 만큼의 질소(21)를 요구하는 작물은 고추나 옥수수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는 것 같다. 다시 말해서 텃밭재배에 복합비료를 팍팍 뿌려주며 작물을 키우는 것이 최선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작은 텃밭 농사를 짓는다고 하더라도, 건강한 먹거리를 재배하고 싶다면 먼저 작물이 필요로 하는 성분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그에 따라 적정량의 비료를 주도록 노력해야 한다. 물론 이렇게 농사를 짓다 보면 농사 실력도 저절로 늘어나 어느새 전문가가 되어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참고로 작물별로 전용비료에 쓰여있는 숫자는 아래와 같다.

     

고추 비료: 15-6-8+0.2(붕사)+12(유황).           

감자 비료: 11-8-9+S(유황).          

마늘 비료: 11-8-9+0.2(붕사)+18(유황)

고구마 비료: 7-7-18

땅콩 비료: 4-8-11 

대파 비료: 12-8-9+0.2(붕사)+S(유황)      


P.S. 가리, 칼리, 칼륨은 같은 말이다.


<대문사진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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