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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귀촌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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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침이와 호돌이네 Dec 24. 2020

나는 일 년 동안 커피가 공짜다

카페 리모델링 하기

작년 1월 말경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신부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요즘 뭐하고 지내?" "요즘은 농사철도 아니라 놀고 있어요." "언제 시간 되면 한번 들러줄 수 있겠나? 좀 부탁할 일이 있어서" 그래서 차를 몰고 한 시간을 달려서 신부님이 계신 성당에 가게 되었다.   

                                

그 성당도 60년이 넘은, 우리 성당만큼이나 오래된 시골 성당이다. 이번에 어렵게 교육관 건물을 새로 지었는데 기존에 사무실로 사용하던 조립식 건물을 신자들을 위한 카페로 개조하고 싶어 하셨다. 그동안은 신자들이 들어가서 차 한잔 마실 공간도 없었다고 한다.                            


내가 인테리어 전문가도 아니고, 또 우리 집 말고는 인테리어 공사라는 것을 해 본 적도 없다는 것을 뻔히 아시면서도 나를 부르신 이유는 부득이하게 경제적인 이유도 있으셨을 것 같다. 시골 성당 살림이란 게 뻔하니 아마도 새로 교육관 지으면서 빚도 남아 있을 터였다. 그러니 없는 살림에 또 돈 들여가며 카페 공사까지 하실 여유가 없으셨겠지. 그래서 질이야 좀 떨어지더라도 싼 맛에 리모델링하시려고 나를 부르신 게 틀림없다.

    

"다음 주면 건물 준공이 날 테고 주교님 축복식이 끝나면 바로 사무실 이사 갈 거야. 그냥 내부를 간단히 치장만 좀 해주면 돼." "글쎄 저 혼자서는 힘들고 남자가 두 명은 더 있어야 하는데요..." "걱정 마. 우리 신자들이 도와줄 거야." 

                            

그런데 구정 지나고 바로 시작할 줄 알았던 일이 미루고 미루어졌다. 세상일이란 게 그렇게 딱딱 맞아떨어질 리가 없으니까. 그러다 결국 4월이 되어서야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4월에 일을 도와달라고 하셨으면 농사철이라 바쁘다는 핑계를 댈 수도 있었는데...           

                                                     

카페로 개조하려는 조립식 건물의 공간은 18평이다(6x10m). 나 같은 아마추어가 하기에는 만만한 크기가 아니다. 더구나 공사 시작 며칠 전 비보가 날아왔다. "시설부장이 고관절 수술로 병원에 입원했대. 대신 평협 회장이 도와줄 거야!" 그나마 시설부장은 나와 동갑내기로 다행이다 싶었는데 한숨부터 나왔다. 이제 나를 도와주실 분들의 연령이 70세 이상으로 상향 조정되었다. 도시는 60대 백수가 많을지 몰라도 시골에서는 60대면 한창 일할 나이다. 젊은 60대 남자들은 모두 돈 벌러 나가고 없다.

                                                                                                           

무슨 조립식 건물에 창문이 이렇게 많냐? 한숨부터 나왔다.

그동안 촌스러운 패널의 철판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사무실로 사용했던 모양이다. 아무리 시골이라고 해도 그렇지, 없어도 너무 없어 보인다. 아무래도 천정에는 루바를 대어주고 벽에는 인테리어 합판을 붙여주어야겠다. 벽까지 루바를 붙이면 너무 산만해질 것 같다. 그런데 천정 높이가 2.5미터다. 창문도 엄청나게 많다. 무슨 조립식 건물에 창문만 잔뜩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사방을 돌아봐도 온통 창문뿐이니까 말이다. 덕분에 마무리할 곳도 많으니 아무래도 시간이 제법 걸릴 것 같다.  


그런데 패널에 루바를 어떻게 붙이지? 기본적으로 루바 작업은 쫄대를 붙이고 그 위에 루바를 끼워나가면 되는데 18평이나 되는 큰 스티로폼 패널 천정에 루바를 붙여본 적이 없다. 어떻게 해야 루바 무게를 지탱할 수 있을까? 인터넷을 뒤졌더니 다행히 해결책이 보였다. 외부용 실리콘 (792 투명 실리콘)을 바르고 타카 (CT)로 박으면 된다고 한다. 시험 삼아 루바 한 장을 천정에 붙여보니 과연 꽉 달라붙어 있었다. 

                                                

시공 방법이야 간단하다. 천정과 벽에 쫄대를 붙여주고 루바나 인테리어 합판을 쭉 붙여나가면 된다. 또 창문 근처에는 깔끔하게 보이도록 몰딩을 붙여주면 된다. 말은 참 쉽다. 행동으로 옮기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하루나 이틀이면 될까?" 작업장에 잠깐 들르신 신부님이 물어보셨다. "삼사일은 족히 걸릴 것 같은데요..." 솔직히 누가 도와주느냐에 따라 시간이 더 걸릴지도 모른다. 더구나 18평의 저 넓은 공간을!    

                             

아! 나도 빨리 끝내고 싶다. 내가 무슨 전문가도 아니고, 아는 사람도 전혀 없는 이곳에서 팔자에도 없는 리모델링 총책임자가 되어 공사를 하겠는가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적당히 일을 하고 뒤처리를 맡길 사람이 없다.  

                                                           

나하고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골병이 드는 것 같다. 물론 일을 할 때 내가 좀 무식하게 밀어붙이는 점도 있다. 또 어찌 보면 내 주위 사람들은 하나같이 골골하는 사람들만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첫날이 제일 힘들었다. 사다리에 올라가 천정에 루바를 붙이는데 무척이나 힘들었다. 고개도 뻣뻣해지고. 지나가다 뭐 하는지 궁금해서 잠깐 들른 신자들은 여지없이 붙잡혀 일을 도와주어야 했다. 그러나 잠시 후에 보면 어느새 소리도 없이 슬그머니 다 사라졌다.        

                            

커피와 간식을 챙겨가지고 오신 수녀님이 우리 일하는 모습을 보셨다. 그리고는 불쌍해 보이셨는지 직접 팔을 걷어붙이시고는 조수 역할을 해주셨다. 작업자의 평균 연령이 조금 낮아졌을 것 같다. 웬만해서는 그런 일이 없는데 밤새 끙끙거렸고 손목에는 파스를 붙여야 했다. 물론 나만 그랬던 것은 분명히 아니다.    

                               

그래도 둘째 날에는 두 사람이 더 늘어났다. 한 노인분이 (아마도 70대 후반) 몇 시간 일하고 돌아가시며 말씀하셨다. "오늘 일한 일당은 주나?" "하루 일하시면 석 달 동안 커피가 공짜예요." 사람도 늘어나고 일도 숙달이 되어 진도가 많이 나갔다. 그다음 날은 하루 쉬기로 했다. 다들 너무 지쳐서 더 일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창문 몰딩도 카페 분위기가 나도록 이렇게 멋있게 만들었다. 분명히 아마추어인데 프로의 솜씨다. 아닌가?

벌써 삼 일째니 오늘은 끝장을 내고 말리라. 아침에 아예 선포를 했다. 농사일이 밀려 더는 시간을 내기 어렵고, 오늘까지만 일하면 대강 끝날 것 같으니 나머지는 알아서 하시라고. 그래도 양심은 있어 조언을 해 드렸다. "마무리하기 힘든 곳은 그냥 페인트 사다가 바르세요". 난 이래서 아마추어다. 

                                  

사실 분전반이 있는 벽이나 문틀 부위는 일하는데 시간만 많이 걸리고 진도가 나가지도 않는다. 또 웬 놈의 전기 콘센트는 벽 여기저기에 엄청나게도 많다. 인테리어 공사는 잘하려면 끝이 없는 것 같다. 어쩌면 인테리어 공사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그런데 나는 언제까지고 이 일에만 매달릴 수는 없다. 

                                                                  

비장한 각오를 하고 모두들 이를 악물고 일을 한 것 같다. 그분들은 나중에 페인트 사다가 바르지 않으려고, 그리고 나는 다음날 또 오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일을 끝마쳐야 했다. (수녀님이 페인트 사다 바르는 건 절대로 안된다고 펄쩍 뛰시는 바람에 계획이 틀어졌다). 점심 먹는 시간 빼고는 쉬는 시간도 없었다. 저녁 6시 30분, 해가 질 무렵이 되어서야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수북이 쌓였던 자재들이 다 없어졌다.           

                      

힘은 좀 들었지만 함께 일하신 분들은 며칠 만에 내가 보유하고 있던 기술을 전부 전수받으셨다. 타카를 처음 구경하신 분들도 이제는 탕탕 루바에 못을 박으신다. 몰딩을 붙이는 법도 배우셨고 전기톱 쓰는 법도 배우셨다. 특히 수녀님은 실리콘과 목공용 본드 바르는데 타의 추종을 불허하신다. 타카 못도 척척 알아서 갈아 끼우신다.

                                                          

패널의 철판이 그대로 드러나있던 촌스러운 공간이, 온통 나무로 둘러싸인 아담한 카페로 탈바꿈했다. 모두들 만족스러워했다. 직접 시공함으로써 절약한 비용이야 몇 푼 되지 않을지 몰라도 함께 힘을 합쳐 만들어낸 공간이기에 더 보람될 수 있다. 그래서 조금은 어설퍼 보일지 몰라도 더 정이 들고 애착이 가는 공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신자들이 모여 커피를 마실 때마다 그동안 발생했던 수많은 일들이 화젯거리가 되어 웃음꽃이 필 것이다.

                            

물론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 오일 스테인도 바르고, 전등도 달아야 하고, 카페 분위기를 만들려면 아기자기한 소품도 필요하다. 이 일의 총책임자는 수녀님이시라고 한다. 그래도 우리 중에는 제일 젊으시고 인테리어 감각도 있으시니까. 공구를 차에 싣고 떠나려 하는데 모두들 서운해하셨다. 수녀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중에 카페 개업식 할 때 초대할 테니 꼭 오세요. 아내분도 함께요." "그럼요, 꼭 와야지요."                                    

지금도 예쁜 저 공간이 얼마나 더 따뜻하고 멋있는 공간으로 변화될지 궁금하다. 또 나는 적어도 일 년 동안은 공짜로 커피를 얻어먹을 자격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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