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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귀촌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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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침이와 호돌이네 Jan 21. 2021

긴 겨울에는 무엇을 하며 보내세요?

이 순간은 다시는 오지 않거든!

"겨울에는 뭐 하며 보내세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그냥 머릿속이 하얘진다. "글쎄? 그냥 놀아요!" 분명히 바쁘게 사는 것 같은데, 도대체 내가 뭐 하며 살고 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사실 숨을 생각하며 쉬는 사람은 없으니까…….  

        

봄부터 가을까지는 농사일로 바쁘다 치더라도, 황량한 텃밭만 남아있는 긴 겨울철에는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궁금하실 만도 하다. 시설재배를 하시는 전문 농업인들이야 한 겨울에도 바쁘겠지만, 대부분 귀촌하신 분들에게는 겨울은 긴 휴식기임에 틀림없다. 시골의 겨울은 춥고, 그리고 길다.  

         

우리 집의 경우, 한 해 농사의 마무리는 사과 배송이 거의 끝나는 12월 초순경이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농사가 시작되는 것은 다음 해 4월 말이다. 대략 날짜를 따져보면 5개월은 되니 정말 오랫동안 쉰다. 물론 그동안 계속 놀기만 하는 건 아니다. 중간에 틈틈이 과수 전지도 하고, 날씨가 풀리면 모종도 만들고 텃밭 준비도 한다.   

   

그 외에도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머리를 쥐어짜보면, 우선 겨울이 되면 많이 돌아다니는 것 같다.   

   

쥐꼬리만 해도 농사라고 짓고 있으니 농한기가 되어야 친구들도 만나고 친지들도 만난다. 여행도 많이 다닌다. 지인들과 함께 계획을 세워 다녀오는 여행도 있고, 아침에 일어나 갑자기 떠나는 여행도 많다. 문득 바다가 보고 싶으면 바다에도 다녀온다. 충주에서는 남해안 빼고는 어디를 가도 2~3시간이면 충분하니 하루 일정으로도 다녀올 수 있는 곳도 많다.     

  

목공 작업도 한다. 하지만 난방시설도 없고 겨우 바람만 막아주는 작업장인지라 1~2월은 대부분 휴업 상태다. (아무래도 작은 난로라도 마련해야 할까 보다.) 그래서 아주 급한 것만 아니라면 대부분 3~4월로 미룬다.      

실제로 3~4월에는 목공 작업이나 토목공사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작년에 나무로 비닐하우스를 만든 시기도, 이웃 성당 카페 공사를 한 것도 이때쯤이다.   

       

예전에는 자기 계발에 관한 책도 많이 읽었었다. 짧은 인생인데 허투루 시간을 소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작은 시간도 쪼개어 사용하는 법부터 엄격한 자기 관리에 이르기까지, 효율적이거나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책은 닥치는 대로 읽었다. 노력도 좀 하긴 했다. 그러다 보면 좀 더 유능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좀 더 나이를 먹은 지금은, 효율이나 생산성이 내 삶의 중요한 지침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이제는 유능한 사람보다는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가에 더 신경이 쓰인다. 남들이 보기에 내가 꼭 그런 인간이 되지 못해서 하는 말만은 아니다.   

   

그리고 아들놈에게도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능력 있는, 소위 잘 나가는 사람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이라고."   

   

예전에는 은퇴를 하게 되면, 하고 싶은 것도 많았던 것 같다. 여행을 가고, 목공을 배우고, 그림을 그리고, 악기를 배우고…….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 목표도 바뀐다. 젊었을 때는 여행이 바로 휴식이란 공식이 성립하지만, 나이 들면 여행도 어쩌다 한 번이지 힘들고 피곤한 일이다. 그렇다고 안락한 삶도 최고는 아니다. 다만 이제는 무엇을 했다는 결과보다는, 그 과정에서 느끼는 행복이 더 중요하다.  

     

겨울이 되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제법 길어진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세상이지만, 그래도 세상 돌아가는 것쯤은 알고 있어야 하니까. 하지만 이제는 가급적이면 간접 경험보다는 내 몸으로 직접 체험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짧은 인생에 직접 해보고 싶은 것도 많다.   

       

그 외에도 일상적인 것으로 비닐하우스에서 자라고 있는 시금치도 뜯어다 바쳐야 하고, 우리 집 개들도 운동을 시켜주어야 한다. 또 고양이 사료도 챙겨주어야 하고, 이따금 아내 장 보는데도 따라가 주어야 한다. 

          

인생이란 것이 원래 평범한 나날의 연속이듯이, 긴 겨울 동안 내 삶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별로 남다를 바가 없다. 아마도 그러한 삶은 도시에 살든 시골에 살든 마찬가지일 것 같다. 그저 한 평범한 장년의 남자로서 평범하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을 뿐이다.     

     

영화 트로이의 중에서 브레드 피트가 멋진 말을 하는 장면. 남자인 내가 봐도 멋지다.


"신은 인간을 질투를 하지. 인간은 다 죽거든. 그래서 늘 마지막 순간을 살지. 그것이 삶이 아름다운 이유야. 이 순간은 다시는 오지 않거든!" 이 멋진 대사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아마도 예측하기 힘드실 지도 모르겠다. 바로 영화 '트로이'에서 '아킬레스'가 여 사제 '브리세이스'에게 한 말이다.    

    

보람되고 알찬 시간도 좋지만, 올겨울에는 내가 무엇을 하든 간에 그 과정에서 좀 더 행복한 시간을 많이 찾을 수 있었으면 한다. 이 순간은 다시는 오지 않거든!       


이번에는 내가 질문을 할 차례다. "그런데 도시에서는 긴 겨울동안 뭐하며 보내세요?"     



<대문사진: Grandma Moses - Moving Day on the Farm (미국의 국민화가라고 불리는 '모지스 할머니'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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