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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침이와 호돌이네 Mar 25. 2021

사과나무를 교체하기로 했다

한두 해 농사짓고 끝내기는 이미 틀려버린 것 같으니까!

사과나무를 일부 베어냈다. 농사를 접으려는 게 아니라 더 잘해보려고! 우리 집 사과나무는 왜성대목 (키가 작게 자라는 특성을 지닌 나무)에 후지사과를 접목한 품종으로 심은 지 14년이 지났다. 왜성대목의 특성이 살아있으려면 나무의 접목 부위가 땅 밖으로 나와 있어야 하는데, 시간이 지나며 접목 부위가 저절로 땅속에 묻혀버렸다. 그러자 사과나무가 본색을 드러내고 무성하게 자라기 시작했다.   

   

사과나무의 세력(힘)이 좋으면 가지만 무성 해지며 사과 색깔도 잘 나지 않는다. 그동안 나무의 힘을 빼려고 내가 배운 온갖 방법을 다 써 보았지만 한계가 있었다. 사과 전문가인 형님이 보다 못해 말씀하셨다. "우리 집 나무도 이랬는데 어떻게 좀 해보려 해도 별 효과가 없더라. 죽어라 고생만 했어. 한두 해 농사짓고 말 게 아니라면 차라리 베어내고 새로 심는 게 나아!"  

   

그동안 나무가 커서 사다리 위에서 일하기도 힘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나무를 새로 심으면 잘 키울 자신도 있다. 그러니 나무를 교체하는 게 맞긴 하는데, 당장 먹고도 살아야 하니 한꺼번에 나무들을 다 베어버릴 수는 없다. 아무래도 순차적으로 나무를 교체해야 할 것 같았다. 요즘 꼴로 봐서는 어차피 한두 해 농사짓고 그만두기는 다 틀려버린 것 같으니까. 나에게 조언을 해 주셨던 형님은 작은 굴착기를 가지고 있고, 또 사과나무를 베어내라고 나를 부추겼다는 죄 아닌 죄로 사과나무 교체 작업의 총책임자가 되셨다. 물론 무보수 총책임자이시다.


사과나무를 베어낸 과수원의 모습

사과나무는 지난 12월에 베어냈다. 아내가 사과나무를 베어내는 모습을 지켜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제 와서 묘목을 새로 심으면 도대체 언제까지 농사를 지으려고? 아이고 내 팔자야!”


물론 나무를 자르는 일은 기술자인 그 형님 몫이었고 (나는 엔진톱도 없다), 잘라낸 나무를 나르고 치우는 역할은 보조인 내 몫이 되었다. 기술자가 두 시간에 끝낸 일을 보조가 마무리하는데 이틀이나 걸렸다. 잘라낸 나무가 어찌나 무겁던지 일부는 아내까지 불러내서 함께 옮겨야 했다. 화목용 장작을 준비하는 일이 나이 들어서는 못할 짓이라고 하더니만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일을 마무리할 때쯤 갑자기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며 날씨가 추워졌다. 그래서 사과나무뿌리는 날씨가 따뜻한 봄이 오면 뽑기로 했다. 


3월 초순도 지나가고 남들은 묘목을 심는다는데 언제나 사과나무뿌리를 뽑아주러 오실지 감감소식이었다. 그 형님은 농사 규모가 커서 항상 바쁘신 분이고, 나야 공짜로 나무를 뽑는 주제이니 독촉을 할 수도 없었다. 애타게 기다리던 중 3월 중순이 되어서야 마침내 연락이 왔다. "내일 아침에 사과나무 뽑아주러 갈게!"     

     

아침 일찍 트럭에 작은 굴착기를 싣고 형님이 나타나셨다. 다다다닥...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작은 굴착기가 열심히 일을 하건만 큰 덩치의 사과나무를 뽑는 게 만만치는 않은가 보다. 사실 그동안 어떻게 자란 나무인데 (한 번 찐 살이 쉽게 빠질 리가 없는 것처럼)... 내가 나무 세력을 죽이려고 단근법 (뿌리를 일부 잘라내는 것)도 해봤지만 별로 효과가 없었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뿌리가 저렇게 많이 뻗어있으니 효과가 있을 리 없지. 


쇠 파이프를 지지대로 박고 그 옆에 회초리 같은 사과 묘목을 심었다.

작아도 굴착기라고 결국 사과나무뿌리들을 뽑아냈다. 그런데 뽑아낸 뿌리들을 버리는 것도 문제였다. "캐낸 뿌리를 외발 수레에 실어줄 테니 과수원 한쪽 구석으로 옮겨놔!" 말은 쉬운데 흙이 묻어있는 뿌리의 무게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던 것 같다. 옮기다 힘에 부쳐 넘어지기도 하고, 외발 수레도 다 망가졌다. 엄살이 아니라 이번에는 진짜 힘들었다. 원래 기술자보다 보조가 더 힘든 법이긴 하다.


그 이후 삽과 레기를 이용하여 남아있는 나무 잔뿌리를 뽑아내고 땅을 평평하게 골라주어야 했다. 그 정도 평탄작업이야 이틀 만에 끝냈다. 그다음에 줄에 맞춰 지지대로 사용할 쇠 파이프를 박고 사과나무 묘목을 심었다. 이제는 나무 심는데도 이력이 나서 그까짓 사과나무 몇십 그루쯤 심는 것은 일도 아니다. 


이번에 심는 사과 묘목은 이중 접목묘로 품종은 로열 후지이다. 또다시 접목 부위가 쉽사리 흙속에 묻히지 않도록, 이번에는 가능한 한 얕게 묘목을 심었다. 지금이야 묘목이 보잘것도 없는 회초리 수준이지만 앞으로 5년 후에는 성목이 되어 풍성한 사과를 매달아 줄 것이다.  

     

뽑아낸 큼직한 복숭아나무뿌리(좌)와 다 망가진 외발 손수레 (우)

이왕 굴착기가 와서 작업하는 김에 우리 집 복숭아 '서왕모'도 뽑아냈다. 심은지 14년이 되었으니 나무는 엄청나게 큰데 수확 때까지 매달려 있는 복숭아는 얼마 되지도 않았다. 맛은 좋지만 수확량이 얼마 되지 않으니 그동안 이 나무를 계속 키워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그 정도 크기의 나무라면 평균 복숭아를 300개 이상은 수확해야 한다. 서왕모를 뽑은 자리에 새로 심으려고 조생종 '엘바트'묘목을 (원래 엘바트는 만생종이다) 며칠 전 지인으로부터 얻어왔다. 

     

그간 요령이 생겨 무리하며 일을 하지 않았었는데, 이번에는 엉겁결에 힘들여 일을 했더니만 손목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온몸이 쑤신다. 잠자리에 누울 때도, 앉았다가 일어설 때도 끙끙거렸다.   

          

원래 계획은 앞으로 몇 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사과나무 전체를 교체해 줄 생각이었는데, 이번에 힘들여 공사를 하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말이 쉽지 14년 묵은 굵은 사과나무를 뽑아버리고 새로 심는다는 것이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앞으로 우리 집이 언제까지 사과농사를 지을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오래된 사과나무를 교체할 마음은 없다. 아내 말마따나 무슨 농사를 천년만년 짓겠다고 이제 와서 사과나무를 전부 교체하겠는가 말이다. 이미 벌려놓은 일 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는 지금처럼 그냥 적당히 먹고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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