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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침이와 호돌이네 Apr 29. 2021

우리 집에도 빨간 튤립이 피었다

온통 흰색인 우리 집에 빨간 꽃이 피었다

작년 가을에 지인 한 분이 튤립 구근을 몇 개 주셨다. 그러고는 내심 우리 부부가 못 미더웠는지 자세히 설명까지 해 주셨다. "튤립 구근은 마늘 캘 때쯤 캐면 되고요, 양파 자루에 담아 그늘에 말렸다가 가을에 다시 심으면 돼요. 아주 쉬워요!" 그래서 앞마당에서도 가장 눈에 잘 띄는 명당자리에 튤립 구근을 심었다. 물론 그 자리에 심어져 있던 초롱꽃은 방 빼라고 해서 모두 뒤편으로 이사를 보냈고. 화단이 작으니 하나를 심으려면 다른 하나를 캐내야 한다.     

    

그나마 지금은 작은 화단이라도 있으니 다행이지만 처음 집 짓고 나서는 화단을 만들 생각조차 하지도 못했다. 그냥 집 앞에 적당히 선을 긋고는 여기까지는 마당, 여기서부터는 텃밭이라고 정했다. 그리고는 마당에 해당하는 부분에는 자갈을 깔고 텃밭에 해당하는 부분에는 채소와 유실수를 심었다. 그 당시는 수확하는 재미에 맛이 들려 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꽃 가꿀 시간이 어디 있어?" 또 "꽃만 쳐다보고 있으면 쌀이 나와? 밥이 나와?" "화단 만들 땅이 있으면 차라리 밭을 만들고 말지!" 내가 아내에게 수차례 했던 말이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 제정신이 돌아오니 이웃집 화단에 핀 예쁜 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말을 바꿨다. "사람이 밥만 먹고사는 건 아니니까!" 뒤늦게 남들처럼 화단을 만들려 했지만 이미 커져버린 대추나무를 옮길 수도 없었다. 결국 마당과 밭 사이의 경계 부분에 (마당을 조금 줄이고) 좁은 폭의 기다란 화단을 만들게 되었다. 그 작은 화단은 이미 꽉 차 있으니 하나를 심으려면 다른 하나를 뽑아야 한다.


대추나무 앞으로 좁고 긴 화단이 있다. 천연 제초제를 뿌려 마당의 풀을 죽였다.


나무만 해도 그렇다. 처음에는 관상용 조경수도 몇 그루 심었었다. 그런데 열매도 열리지 않는 조경수를 왜 심어야 하는지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왕이면 조경수보다는 유실수가 더 낫지 않을까? 그래서 소나무 몇 그루 빼고는 유실수가 아닌 나무들은 모조리 퇴출시켜버렸다. 우리 집에서는 조경수란 곧 유실수를 의미한다. (이 부분은 우리 집이 사과 과수원이라 방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지 아무나 따라 해서는 안된다.) 아! 유실수라고 해도 맛이 없으면 그것도 퇴출 대상이다. 그렇게 키 큰 단풍나무도, 맛없는 살구나무도 뿌리째 뽑아버렸다.


하얀 사과꽃과 아로니아 꽃이 활짝 피었다.


봄이 되자 이웃집 정원에는 울긋불긋한 예쁜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났다. 우리 집에는 더 많은 꽃들이 활짝 피었다. 차이라면 다른 집은 자그마한 화단에 다양한 색상의 꽃들이 활짝 피었다면, 우리 집은 과수원 전체가 온통 하얀색 꽃들로 뒤덮여있다. 바로 사과와 아로니아 꽃! 지금은 사과 꽃 만개 시기이므로 흰 눈이 온 것처럼 온통 하얀색이다. 아로니아는 이제 막 흰 꽃이 피기 시작했고. 그렇게 온통 흰 꽃들과 초록색 풀들로 가득했는데, 갑자기 튤립이 꽃을 피웠으니 빨간색 꽃이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심어져 있는 나무라고는 온통 유실수뿐인지라 관상용 꽃을 구경하기 힘든 집인데, 갑자기 빨간 튤립이 나타났으니 동네 아주머니도 신기해하시는 것 같다. 운동하러 지나가시다가 빨간 튤립 앞에서 한참 동안을 쳐다보고 계셨다. 빨간 꽃을 보니 갑자기 잊혔던 기억이 떠오르신 건지도 모르겠다. 너무 깊게 생각에 잠겨 계셔서 선 듯 다가갈 수도 없었다. 그런데 바로 옆에 있는 노란색 수선화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으시는 것 같다 (노란색 수선화는 바로 그 아주머니 댁에서 얻어다 심은 수선화다).  

     

화단에 핀 튤립과 수선화. 빈자리가 많아 어째 엉성해 보인다.


화단의 꽃들이 예쁘긴 한데, 뭔가 좀 엉성해 보인다. 몇 포기밖에 되지 않아서 그런가? 지인 말마따나 마늘 캘 때쯤에는 튤립 구근이 많이 분화되어 있을 테니, 올 가을에는 좀 넉넉하게 튤립을 심을 수 있을 것 같다. 예전에 심은 상사화도 그랬었다. 구근 두 개를 심었는데 몇 년이 지나자 상사화가 10여 포기로 늘어나 있었다. 그때도 잎도 없이 꽃만 달랑 피어있는 짙은 주홍색의 상사화가 애처롭기도 하고 은근히 마음이 끌려 오가며 눈길을 주곤 했는데, 지금은 큼직한 빨간 튤립이 9 송이나 피어있으니 텃밭에서 일을 하다가도 자꾸 쳐다보게 된다. 잊고 있었는데, 꽃을 보니 마음이 포근해진다.

           

올해 살구나무를 캐다가 그 예뻤던 아이리스(붓꽃) 꽃밭을 망가뜨려버렸다. 어릴 적 두꺼운 화보집에서 본 고흐 (Gogh)의 아이리스란 그림에 매료되어 있던 터라 화단에 아이리스를 심었었다. 5월 중순이면 보랏빛의 어여쁜 꽃을 볼 수 있었는데, 올해는 굴착기에 파헤쳐져 듬성듬성 이 빠진 모양으로 자라고 있으니 제대로 꽃을 볼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해마다 반복되는 일이긴 하지만, 지난겨울을 지나며 화분에 있던 꽃들은 모조리 다 죽고 지금은 빈 화분만 남아 있다. 지난가을 화분을 비닐하우스로 옮기려다 너무 무거워서 포기했더니만, 겨울을 지내며 다 죽어버렸다. 다음 주 모종 사러 갈 때 예쁜 꽃도 몇 포기 사 와야겠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꽃을 키우려면 화분보다는 아무래도 화단을 좀 더 넓혀야 할까 보다. 화단에서는 웬만해서는 꽃들이 죽지 않으니까. 그런데 어디에 화단을 만들지? 생각이 많다.

      

내년에는 튤립도 훨씬 많이 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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